조선일보가 또 미국산 쇠고기를 노골적으로 홍보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23일 <이달 초 점유율, 호주산 제쳐… 대형 마트도 판매 ‘저울질’>(B3면)라는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지난 8월엔 냉장육 들어와… 추석 앞두고 수요 급증>이란 부제까지 붙여가며 노골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홍보’에 나섰다.
기사는 “그동안 미국산을 몇 번 사서 유치원 다니는 막내 손자까지 잘 먹였다”라는 한 70대 노인의 말을 인용한데 이어 “소비자들의 광우병 걱정이 많이 사라진 덕분으로 본다”는 쇠고기 수입업체 ‘에이미트’ 사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또 “미국산이라고 미리 말했지만 광우병을 걱정하는 친척은 아무도 없었다”, “광우병 발생이 없었던 호주산보다 미국산이 인기가 높다는 것은 광우병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줄어든 탓 아니냐”는 등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가 줄었다는 내용의 인터뷰가 대부분이다. ‘2, 30대 주부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아직 꺼린다’는 내용이 있지만 극히 일부였다.
나아가 기사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여론 눈치를 보며 아직 미국산 쇠고기를 취급하지 않고 있지만, 일부 업체는 판매 재개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다”고 전망하는 한편, “40~50대 주부들로부터 ‘미국산 쇠고기를 언제부터 팔거냐’는 문의가 많다”는 대형마트 관계자의 인터뷰를 실어 대형마트의 미국산 쇠고기 판매 움직임에 힘을 실어주었다.
추석을 앞둔 지난 9일에도 조선일보는 미국산 쇠고기 ‘홍보’에 열을 올렸다.
조선일보는 2면에 <‘추석특수’ 美쇠고기 판매 급증>이라는 기사를 통해 “추석을 앞두고 값싼 쇠고기를 구매하기 위해 차로 30분 되는 거리를 왔다”, “5년 만에 명절에 식구들과 같이 갈비를 먹을 수 있게 됐다”는 인터뷰를 싣고 소비자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많이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수입육협회와 미국육류수출협회가 지난 4일부터 무료 시식행사와 장바구니 증정 행사를 벌이고 있다”며 이들 업체들의 판촉행사를 알리고 미국산 쇠고기 가격까지 자세하게 소개했다. 기사는 특정 매장의 “미국산 쇠고기 하루 매출액이 평소 5배가 넘었다”며 미국산 쇠고기를 찾는 수요가 급증했다고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업체 직영매장의 상호들을 실명으로 노출하기도 했다.
덧붙여 “사회 분위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말은 못했지만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잠재 수요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올 추석을 계기로 미국산 쇠고기 판매가 크게 늘 것”이라는 한국수입육협회 김태열 회장의 인터뷰를 전했다.
한편 조선일보가 9일 미국 쇠고기 ‘홍보성’ 기사를 내기 직전 조선일보에는 미국 쇠고기 수입업체의 광고가 실렸다. 9월 3일 조선일보에는 미국산 쇠고기 직수입 전문업체 ‘에이미트’와 ‘그레이트 하이델’의 광고가 A24면과 B4면에 각각 실렸다. ‘추석을 맞아 LA갈비, 정육세트를 판매한다’는 내용이다.
‘에이미트’의 광고는 9일 동아일보에도 실렸는데, 다음날인 10일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매장이 부족하다’며 안타까워했었다. 동아일보는 <‘高물가 추석’에 미국산 쇠고기 매장 더 많았다면…>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이번 추석에 미국산 쇠고기 매장이 더 많았더라면 분명히 소비자 후생(厚生)은 증진됐을 것”이라며 “시장이 반 이명박, 반미 같은 것에 영향받아 왜곡되면 결국 피해자는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들”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조선일보가 몇 푼의 미국 쇠고기 수입업체 광고를 위해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 ‘백화점·대형마트의 미국 쇠고기 판매 가능성’을 보도한다고 믿고 싶지 않다. 설마 자칭 ‘1등 신문’ 조선일보가 그런 궁색한 이유로 기사를 만들어내겠는가? 조선일보가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신념’에 따라 기사를 썼다고 믿고 싶다.
조선일보가 이런 ‘신념’을 갖고 있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겠지만, 소비자들에게 미국산 쇠고기를 권하는 일만큼은 자제해주기 바란다. 조선일보가 미국 축산업자나 수입업자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면 이미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홍보성 기사를 쓸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점점 더 많은 소비자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즐겨먹고 있다면 더욱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다.
백화점과 유통업체에 판매를 권장하는 일도 참아주기 바란다.
조선·동아일보가 보도했듯 유명 백화점과 대형마트들은 아직 미국산 쇠고기를 판매하지 않고 있다. 굳이 광우병 우려가 아니더라도 소비자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한 달여 전에도 미국에서 병원성 대장균 감염을 우려해 한 육류업체의 쇠고기 분쇄육이 리콜 조치되었다.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미국산 쇠고기 판매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값은 싸지만 질이 나쁜 고기’를 판매했을 때 발생하는 유·무형의 손익을 따졌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런 ‘시장의 반응’을 존중해주기 바란다.
신문이 특정상품을 홍보할 수 있는 공간은 ‘광고’다. 기사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를 ‘홍보’하고 ‘판촉’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조선일보가 왜 이런 기사를 썼을까’ 하는 의구심만 키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