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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미국발 금융위기’ 관련 주요 일간지 사설에 대한 논평(2008.9.17)
등록 2013.09.25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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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제 경제에서 손을 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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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모든 주요 신문들이 미국발 금융위기를 사설로 다뤘다. 위기의 파장을 정확하게 예측하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신문들도 뾰족한 대책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신문마다 미국발 금융위기를 다루는 방식은 조금씩 달랐다.

한겨레신문은 우리 시장의 반응과 정부 발표를 짚어보고 앞으로 우려되는 상황과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과제를 정리하는 내용으로 사설을 썼다. 위기를 부풀려서는 안되지만 안이한 대응을 경계해야 한다며 유동성 안정과 시장의 신뢰회복을 위한 일관성 있는 대처를 주문했다.
경향신문은 한국 금융시장의 취약성을 지적하면서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장이 상당기간 가라앉지 않을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위기 대응시스템을 가동해 불안 요인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경향신문은 이번 미국 금융위기를 두고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거품이 파국적으로 꺼지는 것’,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의 파탄 가능성’ 등의 분석이 나온다며 이번 기회에 금융자유화의 본질과 한계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를 기대하기도 했다.

조선일보가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를 비판?
조선일보의 사설은 조선일보답지 않게 시종일관 ‘차분’했다. 정치적 반대 세력들을 공격할 때의 격렬하고 거친 표현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제목도 <월스트리트發 ‘금융 허리케인’의 진로>라는 건조한 표현을 썼다.
평소보다 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뉴욕, 유럽 증시의 폭락 상황을 전한 뒤, 월스트리트의 위기 전개 과정을 죽 훑었다. 그러면서 “서브프라임 사태는 금융당국의 적절한 감독과 통제 없이 수익률을 높이려는 ‘머니게임’에만 몰두해온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취약점을 드러냈다”는 분석도 내놓고,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전제 아래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위험 관리를 비롯해 금융시장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획기적 처방이 나와야 한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제목에 걸맞게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위기 분석과 전망’이 사설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이나 정부의 대응과 관련한 내용은 한 문단 정도다. “우리도 앞으로 월스트리트발(發) 금융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가는 국제 금융질서 속에서 가능한 최선의 자구책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주문을 내놨으나 ‘최선의 자구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가계부채 문제와 부동산시장의 불안정성 같은 우리 내부 위험요인에 대한 관리도 서둘러야 한다”거나 “월스트리트발 금융 허리케인의 진로에 눈을 떼지 않으면서 우리 내부의 허술한 부분부터 추슬러야 할 때”라는 정도다.

중앙·동아, “우리 금융사 괜찮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위기의 파장을 우려하면서도 우리 금융계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겨레신문이 정부나 금융위원회의 입장을 조심스럽게 전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중앙일보는 <불가항력적 고통의 터널, 참고 통과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사설의 분량은 평소 두 배에 가깝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중앙일보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크게 우려하면서도 “미국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기관의 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는 상황”이고, “우리 금융회사들이 치명상을 받을 위기는 결코 아니”라고 독자들을 안심시켰다. 문제는 ‘신뢰의 상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부가 중심을 잡고 각 경제주체들이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온 국민들에게 전 세계적 위기를 참고 견뎌내자고 호소할 필요도 있다”고 정부에 주문했다.
동아일보도 장문의 사설을 실었다. 사설은 미국발 금융위기의 파장을 예측하기 어렵고 전 세계적 불황의 단초를 제공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역시 중앙일보처럼 “한국의 금융회사들이 이번 사태로 입은 직접 손실은 자산 규모에 비추어 그리 크지 않다”, “국내 금융사의 자산 건전성을 감안하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전망했다. 우리 금융지표가 주요 선진국보다 더 동요하는 것은 “시장 참가자들이 외부 악재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대응해 피해를 실제 이상으로 키우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의 대응과 관련해서는 “이번 사태는 규제를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새롭게 재편될 국제 금융질서의 틀에 능동적으로 적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다소 뜬금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지만 ‘외화 유동성 확보’와 ‘시장의 신뢰 회복’이라는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조선일보의 ‘무기력한 사설’, 그래도 ‘엉터리 훈수’보다 낫다?
대부분의 신문들이 주장하듯 위기를 부풀려서는 안된다. 그러나 ‘한국 금융회사들의 리먼브러더스 직접투자 규모가 얼마되지 않는다’는 정도만으로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을 안심하고 있을 상황도 못된다. 또 그동안 오락가락 경제정책으로 시장의 불신을 초래한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면밀하게 분석하고 요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안 제시 측면에서는 대부분의 사설이 미진하고, 향후 전망에 있어서는 중앙·동아일보의 태도가 위험스럽다. 가장 ‘무기력한’ 사설은 ‘미국 금융자본주의 분석’에 초점을 맞춘 조선일보의 사설이었다.
사실 우리는 오늘 조선일보가 어떤 사설을 내놓을 것인지 무척 궁금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어제(16일) 리먼브라더스사의 파산 신청 사실이 알려진 후 조선일보의 과거 보도가 도마에 올랐다. 불과 3주일 전 조선일보가 경제부 차장대우의 칼럼을 통해 산업은행의 리먼브라더스사 인수를 적극 권유했기 때문이다. 2주일 전 사설에서도 리먼브라더스사 인수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네티즌들의 비난이 빗발쳤음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결국 ‘잘못된 훈수’로 홍역을 치루고 있는 조선일보는 이후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밋밋한’ 사설을 온갖 어려운 용어와 구체적인 수치를 동원해 그럴듯하게 포장해 내놨다. 불과 며칠 전 ‘9월 위기설’이 사실상 끝난 듯한 제목으로 1면 톱을 장식하던 ‘용기’는 간데없고 중앙·동아일보처럼 ‘국내 금융사들은 괜찮다’고 단언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지금 조선일보의 처지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독자들로부터 심각한 ‘신뢰의 위기’에 빠진 조선일보에게 이런 당부를 하고 싶다. 이제 적어도 ‘경제’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배놔라 감놔라 하는 엉터리 훈수를 두지 않기 바란다. 10년 전 IMF 직전에도 조선일보는 “한국경제 위기 아니다”라고 호언했다가 망신을 당한 바 있다. 조선일보는 ‘경제’를 전망하고 분석할 능력이 없다. 오늘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위기’를 분석한 사설을 보면 경제에 관한 지식의 부족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무엇이든 정략으로 접근하는 조선일보의 자세로는 경제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과 합리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 없다고 본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정권에 유리한 기사를 쓰겠다는 목적으로 어떻게 객관적인 기사가 나오겠는가? 리먼브라더스사의 인수를 촉구한 기사도 사실 경제기사라기 보다 정치기사에 가까웠다. 비록 부실해졌다지만 ‘미국’의 거대 투자은행을 우리가 인수할 수 있으며, 일본이나 중국도 하지 못한 금융세계화의 문을 열수 있다는 ‘설레임’에 들뜬 기사였다. 세계 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 속에 ‘위기설’까지 겪고 있는 우리의 경제 상황에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식의 선동에 가까운 기사였다.
우리는 오늘 조선일보의 사설을 접하며 앞으로 조선일보가 엉터리 훈수로 나라 경제를 흔드는 것보다 차라리 이런 무기력한 사설을 쓰는 것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능력 밖의 일에 안간힘을 쓰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경제 문제에서 아예 손을 떼는 것은 어떤가. <끝>

 



2008년 9월 17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