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새벽 벌어진 ‘안티이명박카페 회원 테러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 행태가 참으로 기막히다. 우리는 조중동 수구보수신문들이 이번 사건을 제대로 보도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 특히 공영방송 KBS의 보도 태도에는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느낀다.
이번 사건은 범행 과정이나 수법의 잔인함 등을 볼 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가해자 박 씨는 피해 시민들에게 접근해 ‘미국 쇠고기가 안전하다’며 시비를 걸었고, 시민들이 받아주지 않자 사라졌다가 2~3분 뒤 다시 나타나 회칼과 식칼로 시민들을 피습했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의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범행의 수법도 잔인하기 짝이 없다. 가해자는 피해자 한 명의 뒷목 부위를 찔러 쓰러뜨린 후 다시 이마를 칼로 찔러 중태에 빠뜨렸다. 또 다른 피해자는 눈 주위를 찔려 신경이 손상당하는 중상을 입었다.
한편 가해자가 사라진 뒤 2~3분 만에 회칼 등을 들고 나타난 점 등 풀어야 할 의문점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사건 전후 경찰의 태도 역시 논란거리다. 조계사 근처에서 근무 중이던 경찰들은 가해자가 범행을 저지르고 도망을 가는 상황에서도 수수방관했으며, 가해자가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으로 치부하고 있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도 방송 보도들은 이번 사건의 자세한 과정과 의문점, 의미 등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특히, KBS는 9일 저녁 메인뉴스에서 이 사건을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사회의 최대 이슈였던 미국 쇠고기 문제로 시민 3명이 ‘회칼테러’를 당했는데도, 이를 보도하지 않은 것은 공영방송으로서 직무유기다.
이날 KBS는 뉴스가 끝난 후 방송될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화’와 관련해서는 <최대 관심사 ‘경제’>, <잠시 후 생중계> 등 두 꼭지나 다뤘다. 특히 뉴스 후반부에 나온 <잠시후 생중계>는 대통령이 KBS에 도착해 이병순 사장 및 임원진과 인사를 하고 방송 준비에 들어갔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국민들의 생명이 위협받은 사건이 이 보도보다 뉴스가치없는 것인지 KBS에 묻지 않을 수 없다.
MBC와 SBS의 관련 보도 역시 미흡하기 짝이 없었다.
MBC는 이날 15번째 꼭지에서야 이 사건을 보도했다. 이 보다 앞서 나온 보도들을 살펴보면 <서울에 열대과일>은 한반도 온난화로 작물재배지도가 바뀌고 있다는 소식이고, <내일 남북대결>은 10일 중국에서 열릴 월드컵 축구대표팀이 북한과 경기를 치른다는 안내였다. MBC가 어떤 기준으로 뉴스가치를 정하는지 궁금한 대목이다. 보도 내용도 실망스러웠다. MBC는 <흉기 휘둘러 중태>에서 사건정황을 보도하며 피습당해 중상을 입은 윤 모씨의 주장과 가해자 박 씨의 주장을 나란히 실었다. 사건의 의문점 등을 제기한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피해자의 기자회견은 보도하지 않았다.
SBS는 10번째 꼭지 <‘쇠고기 논쟁’..중상>에서 이번 사건을 다뤘다. 이 보도 역시 박씨의 주장과 피해자의 반박을 나란히 실었다. 다만 안티이명박카페와 광우병대책회의 등이 경찰의 행태를 비판하고 이번 사건을 ‘공권력의 방조아래 일어난 정치테러’로 규정했다는 등의 내용을 담아 다른 방송사와 차이를 보였다.
시민 세 사람이 경찰 앞에서 ‘정치적 이유’로 테러를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방송은 이를 보도하지 않거나 사건 정황을 가해자측 주장, 피해자측 주장으로 나눠 단순보도하는 데 그쳤다.
우리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지금이라도 이번 사건의 의미와 의문점 등을 제대로 보도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명박 정부가 방송장악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지상파 방송사들의 보도 태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공영방송 KBS가 이명박 정권의 눈치를 보며 ‘땡전뉴스’로 회귀할 것인지 지켜보고 있다. 지금 시민들이 KBS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이유는 ‘KBS사원행동’을 비롯한 내부의 양심세력들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 방송’ KBS가 끝내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정권 눈치보기’로 나아간다면 그에 상응하는 심판이 뒤따를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시민을 향한 백색테러에 대한 방송사들의 적극적인 보도를 거듭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