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검찰이 정연주 KBS 사장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같은 날 서울행정법원은 정연주 사장이 낸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21일 동아일보가 3면을 털어 검찰과 법원의 주장을 대대적으로 부각하면서, 정연주 사장이 앞으로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될 것인양 몰아갔다.
기사의 제목은 <배임액수 커 5년이상 징역 ‘특경가법상 배임혐의’ 적용>. 검찰이 ‘업무상 배임’이 아닌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정 사장을 기소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정 사장의 죄가 무겁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작은 제목들도 <검찰, 정 전사장 기소 배경>, <“연임 욕심으로 세금환급 소송 서둘러 취하”>, <법원 “순수하게 법률적 판단”>, <“해임의 위법성 단정할 수 없어” 정부 손 들어줘> 등 검찰과 법원의 주장만으로 뽑았다. 기사 내용에서도 정 사장 측의 반론은 일체 없다.
검찰은 ‘정 사장이 2005년 6월 국세청을 상대로 제기한 법인세 부과 취소 소송 중 승소가 확실한 상황이었는데도 사장 연임 등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일부만 환급받기로 합의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2004, 2005년 KBS의 경영악화→2005년 7월 노동조합의 퇴진 압박→법인세 환급을 통한 2005년 사업연도 흑자전환’이 사장 연임을 위한 과정이라는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전하면서 “정 전 사장의 ‘고의적인’ 배임 혐의 입증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KBS가 국세청과 합의한 것이 법원의 권고에 따른 일이었다는 점, 법원도 KBS의 승소를 확신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점 등의 반론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동아일보는 검찰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사실까지 왜곡했다. 기사는 2005년 KBS 노사가 “적자 발생시 경영진이 총사퇴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썼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노사간의 합의 문구에는 “임원 전원이 사장께 사퇴서를 제출하며 올해 적자 발생시 4/4분기 내에 책임진다”고 되어 있을 뿐이다.
또 동아일보는 “2005년 12월 국세청으로부터 법인세를 환급받은 KBS는 그해 적자에서 벗어났으며, 정 전 사장은 2006년 4월 연임됐다”고도 했다. 국세청으로부터 서둘러 법인세를 환급받아 그해 KBS의 경영이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다음 해 4월 연임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2005년 KBS의 결산순이익은 576억 원이었다. 조정결과에 따른 법인세 환급액 556억원을 제외해도 경영수지는 20억 원의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이렇게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과 사실 왜곡 후에 동아일보는 “법원이 이 배임액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한다면 정 전 사장으로서는 중형이 불가피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법원의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 기각을 다룬 내용도 가관이다.
기사는 “서울행정법원 정형식 부장판사는 ‘해임이 정 전 사장에게 회복할 수 없을 만큼의 손해를 줄 정도로 위법하진 않다’고 판단했다”, “정 전 사장 측 변호인의 반대 논리가 해임의 위법성을 입증할 만큼 충분하지 못한 것도 기각의 주된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 사장 해임의 위법성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고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는 논리다.
행정법상 집행정지는 행정처분의 집행으로 인해 긴급하고도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예상될 경우 본안소송 판결이 나올 때까지 법원이 당사자의 신청 또는 직권으로 행정처분의 효력이나 집행을 잠정적으로 중지시키는 제도이다. 그런데도 서울행정법원은 ‘위법성’ 여부를 언급하며 그동안 법원이 취해온 일반적인 태도와 관례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내렸다.
동아일보는 이런 결정을 부각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재판부가 ‘현재까지 제출된 자료로 볼 때 해임이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태’라고 밝힌 것은 해임처분 무효소송의 향방을 엿볼 수 있는 대목”, “해임처분을 뒤집기가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부분”이라며 향후 법원이 정 사장이 낸 해임처분 무효확인 청구 소송에서도 정부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상 사법부를 향해 판결을 ‘주문’하고 있는 꼴이다.
이제 수구보수신문은 사법부마저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겠다고 작정한 모양이다.
지난 8월 13일과 14일, 조선일보는 기사와 사설을 통해 촛불시위 주도 혐의로 구속 기소된 광우병대책회의 안진걸 조직팀장에게 보석결정을 내린 판사를 향해 “옷을 벗으라”는 극언을 퍼붓기도 했다. 특히 <불법시위 두둔한 판사, 법복 벗고 시위 나가는 게 낫다>는 제목의 14일 사설에서는 해당 판사의 발언 하나하나를 꼬투리잡아 비아냥대더니 마지막에는 “가뜩이나 사법부가 목소리 큰 사람들에 의해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요즘이다. 이 판사는 자신이 그 동안 촛불시위에 나가지 못하게 했던 거추장스러운 법복을 벗고 이제라도 시위대에 합류하는 게 나을 것이다”라는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았다. 판사를 향해 이런 모욕을 퍼부을 수 있는 세력이 한국 사회에 얼마나 될까. 조선일보의 행태는 ‘제 세상 만났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수구보수신문이 정치권력을 등에 없고 사법부까지 제 뜻대로 ‘길들이겠다’고 나섰음을 보여준다. 이런 조선일보의 재판부 공격에 힘을 얻었는지 18일 검찰은 재판부에 안씨의 보석취소를 청구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담하다.
사법부에 촉구한다. ‘그래도 사법부는 법률에 따라 옳고 그름을 판단해 줄 것’이라는 국민의 기대를 더 이상 배반해서는 안된다. 사법부의 독립성, 법관으로서의 자존심과 명예를 버리고 정치권력과 수구보수신문의 눈치나 살필 것인가?
정치권력-수구보수언론-검찰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으로도 부족해 사법부까지 이 ‘민주주의 파괴 동맹’에 뛰어든다면 사법부도 국민의 버림을 받을 것이다. 지금 검찰이 국민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보라. 사법부마저 조중동 지면에 따라 움직이는 ‘영혼 없는 집단’이 되지 않기 바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