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경찰의 촛불집회 진압 행태는 독재정권 시절을 무색케 했다.
경찰은 촛불집회가 열릴 예정이었던 서울시청 광장을 일찌감치 경찰버스로 봉쇄해 버렸다. 집회장소가 원천 봉쇄되자 시민들은 을지로 부근에 모였고, 집회가 시작되자마자 경찰은 푸른색 물포를 쏘며 집회 참가자들을 연행했다. 어떤 폭력 행위도 하지 않았던 집회 참가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물포를 쏘고, 폭력적으로 연행하는 장면을 목격한 주변 시민들이 경찰에 거세게 항의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경찰은 막무가내였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이른바 ‘사복체포조’를 시민들 사이에 몰래 투입해 푸른색 얼룩이 묻은 사람들은 시위 참여 여부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 연행하기도 했다.
색소를 섞은 물포 난사, 사복체포조 투입, 무차별 연행으로 집회를 봉쇄하려는 경찰과 이를 피해 집회를 열려는 시민들이 시내 곳곳에서 대치했으며, 이 과정에서 150여명의 시민이 경찰에 연행됐다. 평화적인 집회를 원천봉쇄한 이 같은 경찰의 과잉 대응은 16일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한 방법으로 맞서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그러자 조중동은 15일 촛불집회를 경찰이 어떻게 과잉 진압했는지, 집회가 왜 격렬해지고 있는지 등등 전체 맥락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시위의 ‘폭력성’만을 집중 부각했다. 이들 기사에서는 집회 참가자들의 반론이나 주장을 담는 최소한의 ‘기계적 균형’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15일 경찰의 과잉진압을 ‘적극적 시위 대응’으로 다뤄
조중동은 15일 촛불집회를 다룬 16일 보도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지적이 없었다.
16일 조선일보는 <‘건국 60주년’ 도심 점거한 ‘100번째 촛불’>(10면)에서 ‘촛불시위대가 서울 도심을 점거하고 불법시위를 벌였고, 이를 진압하는 경찰에게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등 폭력 양상을 보였다’는 요지로 보도했다. 경찰의 색소 물포 난사와 ‘사복체포조’를 동원한 무차별 연행 등에 대해서는 “색소가 묻은 시위자의 경우 인도까지 쫓아가 현행범으로 연행했다”고만 전해 정당한 법집행인 양 표현했다.
동아일보도 <야간시위 경찰차 4대 파손…140여명 연행>(10면)에서 경찰이 ‘폭력시위’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도했다.
기사는 “(경찰은) 초반부터 적극적인 검거 작전을 펼치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 같은 적극적인 진압에 시위대는 … 수 백명씩 흩어져 게릴라성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가 이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경찰은 전·의경들을 대거 투입해 시위대를 인도로 몰아냈고 저항하는 시위대는 연행했다”는 등으로 전하며 경찰의 과잉진압을 효과적인 시위 해산 작전인 양 다뤘다.
또 경찰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과정에서 경찰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차도를 점거하는 등 불법시위를 기획하고 주도한 핵심 지도부를 검거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배후에서 시위를 선동하고 조종한 ‘몸통’을 검거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경찰청 관계자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중앙일보 역시 <‘100번째’도 불법 얼룩…사복 체포반 첫 투입>(10면)을 싣고 경찰이 ‘불법시위’에 ‘엄정대응’한 것으로 보도했다. 시위대에 대해서는 “밤늦게까지 도심을 휘젓고 다니며 시위를 했다”, “도심 곳곳에서 감자기 도로를 점거하는 바람에 극심한 교통 체증이 빚어졌다”, “일부 시위대가 경찰관이 타고 있는 경찰 발전차령의 헤드라이트와 문을 부수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는 등 폭력 행위와 시민불편을 부각한 반면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이 ‘해산 작전’으로만 다뤘다.
나아가 중앙일보는 <‘PD수첩’ 방영 후 점화…초기 촛불은 순수 / 폭력 변질 뒤론 재야단체 ‘깃발’만 나부껴>라는 중간 제목을 달아 그 동안 촛불집회의 양상을 정리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초기에는 중고생, 가족단위 등 촛불이 순수했으나 불법시위로 변질되고 경찰이 강력대응 하면서 축소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조선일보, ‘10대 연합’에 대한 악의적 편집
16일 집회에 대한 조중동의 18일 보도는 시위대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으로 가득하다. 조중동은 <‘촛불’은 없고…꾼들의 ‘비열한 폭력’>(조선 10면), <경찰에 투석…또 폭력시위>(중앙 10면), <꺼져가는 촛불 ‘전투같은 시위’>(동아 10면) 등의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 16일 집회의 ‘폭력성’만을 집중 부각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복면의 시위대들이 공권력을 상대로 전쟁놀이를 하는 듯한 상황이 벌어졌다”며 이들의 폭력 행위를 자세히 묘사했다. 또 이들이 “‘반정부’ 구호만 외치는 전문 시위꾼”, “악성 시위꾼”이라며 몇몇 단체를 거명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일보는 ‘10대 연합’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지목해 “촛불시위가 과격해진 5월 말 이후 본격적으로 시위 현장에 등장, 과격 시위 때마다 모습을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카페의 카페지기가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경찰에게 신상 정보 등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10대 연합을 공식해체하고 앞으로 비밀 단체, 비공개 단체로서 활동한다”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전했다. 이 보도만 보면 이 카페가 더욱 ‘과격한 활동’을 하기 위해 비밀 단체로 전환하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그러나 이 글 전체를 읽어보면 카페지기가 투석과 같은 폭력적인 시위에 반대하고 있으며, 폭력적인 시위를 자신들의 행위로 몰아가는 데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이 카페를 ‘악성 시위꾼’들인 양 교묘하게 몰아간 것이다. ‘10대 연합’ 카페지기의 글은 중앙일보도 인용했으나, 중앙일보는 ‘투석전’에 대한 반대 의견으로 이 글을 소개했다. 조선일보의 악의적 편집 행태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동아일보도 그동안 검거된 ‘과격시위자’들과 16일 시위의 과격 양상만을 자세히 보도했다. 이어 기사 마지막에 진보연대 한상렬 공동대표가 17일 구속됐다며 그가 “불법시위를 이끈 혐의를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격시위 양상을 집중 부각한 뒤 이들 시위와 아무 관련도 없는 한상렬 대표의 구속 사실을 이어 보도한 것은 악의적인 편집 태도다.
중앙일보 역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15일 100회를 기점으로 소수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시위대가 투석전으로 폭력시위를 계속했다”며 16일 집회의 폭력 양상을 전했다. 또 “경찰은 이날 촛불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된 한상렬 진보연대 상임대표를 구속했다”면서 이어 의경의 옷을 벗기는 등 ‘과격시위’로 검거된 사람들과 그 혐의를 나열했다.
조중동의 ‘균형상실 보도’, 이명박 정권에도 ‘독’
촛불집회의 방식에 대해 일부 시민들이 이견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평화집회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촛불만 들어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고 반박하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촛불집회의 기조는 언제나 ‘평화집회’였다. 대다수 시민들이 평화집회를 지지해 왔고, 광우병대책회의도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평화집회를 강조해왔다.
그러나 경찰은 시민들의 평화적인 집회를 폭력·과잉진압 해왔고, 일부 단체가 폭력시위의 배후인 양 몰았다. 조중동 역시 극소수의 참가자들의 폭력적인 경향을 촛불집회의 ‘변질’로 부각해 시민들의 참여를 차단하려 했다. 그러더니 올림픽으로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린 15일 경찰은 ‘인간사냥’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촛불집회를 과잉 진압해 평화적인 시위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경찰의 이런 태도야말로 ‘촛불만으로는 안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16일 집회가 투석 등 격렬한 양상을 보인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언론이 이와 같은 집회 방식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룰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동안 촛불집회에 대응해온 정부와 경찰의 태도가 합당했는가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 없이, 집회가 왜 이런 양상을 띠게 되었는지 최소한의 반론도 없이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매도하는 행태는 부당하다.
지금까지 경찰이 촛불집회에 대응해온 태도는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이명박 정부의 전형적인 국정운영 방식을 보여준다. 수 백만 명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을 때에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대국민 사과 등을 내놓다가, 촛불이 줄어들자 ‘불법’, ‘변질’ 등의 딱지를 붙여 공권력을 총동원해 촛불을 꺼버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촛불끄기에 일시적으로 성공할지는 모른다. 그러나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공권력을 동원한 7·80년대 식 탄압으로 국민 여론을 억누르는 것은 장기적으로 더 큰 저항과 분노를 일으킬 뿐이다. 또 조중동이 아무리 여론을 호도하려 해도 정부의 객관적인 실정을 가리고 두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 ‘친이명박 신문’ 조중동이 이명박 정부의 공권력을 총동원한 촛불끄기에 무조건 힘을 보태자는 식으로 나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공권력의 남용 없이도 작동할 수 있는 정상적인 정권이 될 수 있도록 국민과 소통하게 만드는 것이 조중동이 해야 할 일이다. 지금처럼 정권의 편에 딱 붙어 서서 정부에 비판적인 국민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일에만 몰두한다면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 국민이 모두 불행해진다. 최소한의 균형보도는 이명박 정권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언제쯤 깨달을 것인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