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가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에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이 탄 차를 검문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29일 낮 경찰은 조계사 앞에서 지관스님이 탄 차를 검문했으며, 이 과정에서 총무원장이 타고 있다고 밝히자 “총무원장일수록 검문을 제대로 해야 한다”며 내부를 확인하고 트렁크까지 검색했다고 한다. 분노한 조계종 관계자들이 종로경찰서를 방문해 강력하게 항의하는 등 파문이 커지자 김석기 서울경찰청장과 우문수 종로경찰서장이 이날 저녁 조계사 호법부장을 만나 유감의 뜻을 전했지만 불교계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 시절 독재정권도 명망 있는 종교계 인사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종교계가 갖고 있는 권위와 사회적 영향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종교는 세속적 기준을 떠나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피신처’가 되어 왔고, 종교의 이런 역할을 존중하는 일반의 정서를 공권력도 쉽게 거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조계사에 피신해 있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사람들을 잡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종교계 수장을 범죄자 취급하는 모욕을 저질렀다. 불교계가 ‘불교폄훼’라고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명박 정부가 종교의 권위를 짓밟으면서까지 공안탄압에 골몰한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공안탄압을 부추겨 온 조중동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보도 태도를 보였다.
조선일보는 30일 8면 <경찰·조계종, 총무원장 차량 검문 마찰>이라는 제목의 2단 기사에서 “경찰이 서울 조계사 입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의 차량을 검문하는 과정에서 양측이 갈등을 빚어, 경찰 고위간부가 조계종 측에 공식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경찰의 검문을 조계종과 경찰 간의 ‘갈등’, ‘마찰’ 정도로 다룬 것이다.
중앙일보는 31일 11면 <“총무원장 범죄자 취급…불교 폄훼”>에서 조계종의 30일 기자회견을 전했다. 총무원장 검문에 대해서는 “경찰은 전날 촛불시위 관련 수배자가 피신 중인 조계사 입구에서 지관 총무원장의 차량을 막고 차 안과 트렁크를 검색했다”고만 보도했다.
동아일보도 31일 10면 <“총무원장 차를 수색?” 성난 불심(佛心)>에서 30일 조계종 기자회견을 보도하면서 “경찰은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입구에서 밖으로 나가던 지관 스님의 승용차를 제지했고 이어 총무원장 신분을 확인한 뒤 차량의 트렁크를 검색했다”며 경찰의 검문 사실을 간단하게 언급하는데 그쳤다.
반면 경향신문은 30일 9면 기사 <지관스님 차량 과잉검문 ‘파문’>에서 경찰의 검색 과정과 그 파장을 다뤘다. 이어 31일 2면 기사 <불교계 “정부 종교편향” 반발 확산>에서는 30일 열린 조계종 기자회견과 △정부차원의 사태 진상조사·관계자 처벌 △어청수 경찰청장 사퇴 등 불교계의 요구,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에 항의하는 범불교도 시국법회나 항의집회 검토 등 불교계의 대응 움직임도 함께 전달했다.
또 31일자 사설 <검문·검색 당한 한국 불교>에서는 총무원장에 대한 검문을 “한국 불교가 검문·검색을 당한 셈”이라며 “조계종 총무원장이 이 같은 수모를 당한 것은 지난 신군부세력이 저지른 법난 이후 처음”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경찰 4명이 집단으로 검문 검색을 한 점은 이번 사건을 우발적으로 보기 어렵다”며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아울러 불교계에도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 엄정하게 대처할 것”을 당부했다.
한겨레도 30일 2면 <경찰, 조계종 총무원장 차량 검문검색 파문>에서 사건의 전개과정과 불교계의 반발을 보도했다. 31일에는 1면에 조계종 소속의 스님과 신도들이 경찰청을 항의 방문한 사진을 싣고, 4면에는 <“이명박 정부의 불교 폄훼 드러내 아무리 찾아와도 사과받지 않을것”>이라는 제목으로 불교계의 반발과 △어 청장 퇴진 △조계사 주변 경찰병력 철수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 마련 등 불교계의 요구를 전했다.
같은 면 기사 <다음 ‘총무원장 검문 기사’ 삭제 논란>에서는 “포털사이트 <다음>의 인터넷 토론방에서 총무원장 차량 검문·검색을 보도한 <불교방송>기사를 퍼온 글이 게시되자마자 잇따라 삭제된 것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저작권 문제 때문에 삭제했다는 <다음> 측의 해명과 ‘누리꾼의 의견이 들어간 조계종 검문 관련 기사가 삭제된 경우가 많았다’는 등 누리꾼들의 반박을 함께 전했다.
종교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가 특정 종교에 편향되어 다른 종교를 폄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끊임없는 ‘종교편향’ 논란을 일으켰고, 불교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총리까지 나서 이를 수습하려 했다.
경찰의 총무원장 검문 사건은 총리의 유감 표명을 무색하게 하고 그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만들었다. 나아가 이명박 정부의 공안 탄압이 종교계의 반발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야말로 ‘막나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조중동이 이를 경찰과 종단 사이의 ‘마찰’이나 갈등 정도로 취급하거나 단순 사건보도로 다루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감추고 이명박 정부를 두둔하는 태도다. 종교 분야에서까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종교의 권위를 짓밟은 이명박 정부의 잘못을 따끔하게 지적하고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것이 이 정부를 돕는 길이다. 거듭 말하지만 조중동의 두둔이 이명박 정부를 더욱 망가뜨리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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