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이명박 대통령과 장차관 및 각 지자체장 등의 관권선거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논평(2008.4.7)
등록 2013.09.2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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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를 ‘브레이크 없는 정권’으로 만들 셈인가?
- ‘관권선거’ 수수방관 하는 보수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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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정부 여당 인사들의 움직임이 관권선거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식목일 이명박 대통령은 식수 행사에 참여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재오 한나라당 후보가 출마한 은평구의 뉴타운 건설현장을 방문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은평뉴타운 방문에서 선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면서 “대통령의 일상적 국정 활동을 정치적 공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굳이 선거를 앞둔 시기에 일정에 없던 ‘깜짝 방문’에 나선 것은 석연치 않다.
이재오 후보는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대운하 전도사’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징적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에 밀려 고전하는 것으로 나타나 정부에 부담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깜짝 방문’은 그 자체만으로 유권자들에게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주는 일이다. 설령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런 사실을 몰랐다해도 선거 시기에 관권선거 논란을 초래한 책임이 있고, 알면서 그랬다면 명백한 관권선거다.
대통령 보다 앞선 장차관들의 행보도 관권선거 논란을 가열시켰다. 지난 3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정종환 국토부 장관을 비롯한 이 정부의 각급 장차관들이 줄줄이 인천을 방문, ‘인천신항 건설을 예정대로 추진할 것’을 약속했다. 이에 대해서는 중앙선관위가 “고위 공직자가 특정 지역을 연이어 방문해 지역개발 및 예산지원을 거듭 약속하는 것”은 선거법위반이 될 수 있다며 ‘선거중립 의무 준수’를 요청하는 공문을 국무총리에게 보냈다. 대통령의 은평뉴타운 방문 하루 전의 일이다.
여당 소속 지자체장들도 관권선거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김성식 한나라당 후보 지지 동영상을 촬영한 것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을 뿐 아니라, 정몽준 한나라당 후보가 “오 시장이 동작(사당)뉴타운에 확실하게 동의해줬다”고 주장함으로써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한 상태다.
이밖에도 노재동 서울 은평구청장이 TV토론에서 은평뉴타운 개발방식을 비판한 야당 후보들을 찾아가 격렬하게 항의한 데 이어, 최선길 도봉구청장은 한나라당 유세복장과 같은 색의 점퍼를 입고 한나라당 유세 현장에 나타났다고 한다. 또 박희태 한나라당 선대본부장이 하남 선거유세 과정에서 ‘경기도가 하남시 광역화장장 건설을 포기할 방침’이라는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말’만으로도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고 탄핵 당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 대통령과 장차관, 지자체장들의 부적절한 처신은 선거에 끼치는 영향 측면에서 훨씬 ‘구체적’이며 ‘실천적’이어서 권위주의 시절의 관권선거 구태가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한다. 그런데도 보수신문들은 이 정부 인사들의 부적절한 처신을 제대로 비판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보도 자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신문들은 이 정부 장차관들의 줄지은 인천방문으로 관권선거 논란이 불거지는데도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장차관들의 관권선거 논란은 4월 3일 한겨레가 <‘초접전 지역’ 인천신항에 달려간 장·차관들>에서 보도함으로써 알려졌다. 이 보도 이후 선관위가 국무총리에게 ‘선거중립 의무 준수’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보수신문들은 이 사실조차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5일 중앙일보는 <“앞 정부서 임용된 분들 많은데 공기업들 총선 개입 주의해야”>라는 제목으로 노무현 정부 때 공기업에 임용된 사람들의 ‘총선 개입 우려’를 보도했다. 구체적 사례도 없이 그저 청와대 관계자가 꺼낸 말만으로 만들어진 기사였다.
조선일보도 같은 날 <노(盧)직원 사표안내고 총선운동 청와대 “공명선거 저해” 경고>라는 제목으로 “청와대에서 일했던 일부 인사들이 사표 안내고 총선 운동한다는 보도가 있고, 실제로 정부투자기관, 공단, 공사 등 공기업이 많은데, 총선에 개입하거나 지원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키로 했다”는 청와대 입장을 보도했다.

이 대통령의 은평뉴타운 방문에 대해서도 정치권의 논란을 단순 전달하는 데 그쳤다.
7일 조선일보는 <‘MB 은평뉴타운 방문’에 야 반발>에서 “복지 중에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를 갖게 해주는 것” 등 이 대통령의 발언을 자세히 전했다. 관권선거 논란에 대해서는 “야권은 일제히 공세를 펼쳤다”며 그 내용을 전하고,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반박을 같이 실었다. 덧붙여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려면 선거운동 목적으로 특정 지역을 지속적으로 방문해 지지를 호소하는 등 선거 관련 활동을 해야 하는데 이 대통령의 은평뉴타운 방문은 선거법 위반으로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는 선관위 관계자의 발언을 전했다.
동아일보도 <이대통령 ‘은평 방문’ 시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5일 서울 ‘은평뉴타운’ 공사 현장에 들른 것을 두고 관권선거 논란이 일고 있다”며 이 대통령 발언, 야당의 반발, 청와대의 입장, 선관위 관계자의 의견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

같은 날 중앙일보 기사 <MB ‘은평 뉴타운 방문’ 논란>는 동아, 조선일보 보다 자세하게 관권선거 논란을 다뤘다. 그러나 이 기사 바로 밑에 청와대 출입기자가 쓴 <대통령 집무실 의자에 안 앉는다는 MB>는 관권선거 논란에 사실상 ‘물타기’를 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해 “취임 1개월이 넘도록 청와대 본관의 ‘대통령 의자’에 앉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 가운데 “갑작스러운 현장방문 결정도 많다. 5일 대통령의 은평 뉴타운 방문은 ‘깜짝 방문’이었다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말했다”, “앞으로는 토요일마다 청와대를 벗어날 계획이다. 주말은 국민과의 소통의 날이란다”는 등의 설명을 끼워 넣었다. 대통령의 은평 뉴타운 방문이 ‘일상적인 현장 방문’이라는 점을 자연스럽게 강조한 것이다.
이날 중앙일보 사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맨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이 5일 서울 은평뉴타운 건설 현장을 방문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며 “투표일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대통령의 행동은 불필요한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해 조선·동아일보와는 달랐다. 하지만 중앙일보의 지적은 “오해”를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정도에 그쳤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각각 1면 기사 <관권·금권선거 ‘얼룩’ ‘후퇴하는’ 선거문화>와 <‘관권 선거’ 논란 막판 쟁점>와 관련 기사, 사설을 통해 이 대통령의 은평뉴타운 방문 등 관권선거 움직임을 비판적으로 다뤘다.
한겨레는 사설 <대통령이 부추기는 관권선거 논란>에서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대통령이 이 지역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어떤 정치적 의미가 있는지는 삼척동자도 안다”며 “대통령부터 선거법의 조항뿐 아니라 정신까지 엄격하고 철저하게 준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관위에 대해서도 “고질적인 관권선거 논란을 차단하려면 선관위가 적극 나서야 한다”며 “강력한 조처를 취해야지 권력의 눈치나 살펴서야 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도 사설 <대통령에서 행정관까지 나서는 관권선거>에서 최근 선거개입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례들을 하나하나 제시하며 “이쯤되면 총체적 관권선거라고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4년 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개입 발언을 빌미로 탄핵까지 받았으며, 그 탄핵을 몰아붙인 주역이 바로 지금의 여당인 한나라당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즉각 선거개입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선관위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명백한 관권 선거에 대해서도 ‘지지를 호소하지도 않았고 선거관계자를 만나지도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면죄부를 발부한다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질타했다.

우리사회는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끔찍했던 ‘관권선거의 기억’을 갖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여당의 선거운동 기관이었고, 군대에서는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부정투표가 자행돼 이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군인도 있었다. 관권선거를 고발하는 양심선언이 나와도 양심선언자들을 탄압하는 적반하장의 사태가 벌어졌다. 여당 후보의 금품살포, 흑색선전, 정치폭력에 무력한 선관위는 ‘여당 들러리’에 불과했다.
지금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금품 제공’, ‘흑색선전’ 등의 구태가 벌어지고 있지만, 노골적인 관권선거를 몰아내고 이 정도 수준의 선거문화를 만들기까지 우리 사회는 많은 희생을 치렀다. 이명박 정부가 관권선거를 통해 선거문화를 퇴행시키는 것은 우리사회 민주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다.
지금 정부 여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자신들의 무리한 정책을 강행하기 위해 벌이는 선거개입의 불행한 결과는 언젠가 부메랑이 되어 이명박 정부에게도 돌아갈 것이다. 수구보수신문들에게 거듭 촉구한다. 이명박 정부를 ‘브레이크 없는 정권’으로 만들 셈인가? 지난 대선 보수신문들은 이명박 정부의 ‘킹메이커’ 노릇을 했다. 이제 집권에 성공했으니 무엇이 ‘우리 정부’를 진정으로 돕는 길인지 성찰해보기 바란다.
<끝>
 


2008년 4월 7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