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정몽구, 김승연 회장 판결’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9.14)
재판부와 보수언론, 재벌총수에게는 왜 이렇게 관대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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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에 이어 한화 김승연 회장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재벌 봐주기’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만인의 법 앞의 평등’이란 대전제가 또 한번 무너지는 사건이었음에도 보수언론은 법원판결을 비판하기 보다는 ‘재벌 감싸기’에 급급한 태도를 보였다.
보수언론, 법정판결에 대한 비판 형식적 수준에 그쳐
지난 6일 서울고등법원은 900여억 원 대 회사자금을 횡령 등(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회장에게 개인 재산 8,400억 원의 ‘사회공헌약속’ 이행을 전제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또한 실형 선고 대체의 사회봉사활동으로 준법경영을 주제로 한 전국경제인연합회 강연과 언론기고를 명령했다. 한편, 1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는 보복폭행 혐의로 기소됐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에게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선고했다.
정몽구 회장에게 적용된 죄명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으로 최저 형량이 5년이다. 범죄로 인한 이득액이 50억 원 이상일 경우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무기징역의 형이 선고된다. 그럼에도 1심 재판부는 집행유예가 가능한 징역 3년형을 선고했고, 2심 재판부는 끝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동안 법원은 고위층의 경제범죄 판결마다 지나치게 관대한 법 적용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이번 정몽구 회장에게 실형선고 대신 부과된 사회봉사명령은 전례 없는 선고로 형벌의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의심케 한다. 재판장은 “감옥 보내는 게 능사가 아니다”며 정 회장에게 ‘사회공헌약속’ 이행을 지키고, 준법경영 강연과 신문기고를 하라고 명했다. “재능과 재력이 있는 피고인은 그 같은 재능과 재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라는 이유도 덧붙였다.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세간의 법에 대한 냉소적 체념을 법원이 스스로 확인시켜 준 꼴이다.
폭행혐의로 기소된 김 회장 역시 1심의 1년 6개월 징역형 선고를 깨고, 항소심에서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을 조건으로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김 회장의 공소사실 여섯 가지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지만 부정(父情)을 근간으로 벌어진 사건이며,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는 재판부가 1심에서 밝힌 “이 사건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조직적으로 이뤄졌고 대단히 폭력적인 범죄”라는 판결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김 회장이 구형받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에 의하면 최소 5년 이상의 징역을 언도 받게 된다. 그럼에도 김 회장에 대한 이례적인 집행유예 판결은 형법에서 매우 중시하는 ‘형평성의 원칙’을 깬 것이다.
이와 같은 법원의 ‘재벌 봐주기’ 판결은 ‘항소하면 집행유예 가능’이라는 등식을 확인시키며 법원 스스로의 권위를 약화시킨 것이다. 이번 판결에 대해 외신들은 “10억 달러의 자유”, “한국 재벌총수들은 곤란할 때마다 휠체어를 탄다”(파이낸셜타임스), “사법부의 부패 척결 의지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화이트칼라 범죄에 관대한 한국 사법부의 풍토가 재확인됐다”(월스트리트저널)며 쓴 소리를 했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두 재벌회장에 대한 격려와 ‘재벌 봐주기’ 판결을 옹호하는 보도태도를 보였고, 그나마 이에 대한 비판 기사들은 대부분 외신의 비판을 전해주는 수준에 그쳐 ‘구색 맞추기’에 가까웠다.
중앙일보는 정 회장 판결에 대해 긍정의 시선을 보였다. 8일 사설 <정몽구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의 뜻>에서는 “국민들의 감정은 ‘유전무죄’에 대한 반감보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릴 기회를 주자는 현실론으로 기울었다”고 주장하며 “이것을 면죄부나, 재벌회장에 대한 특혜로 여겨서는 안 된다”며 판결에 대한 문제점을 물타기했다.
같은 날 칼럼 <“감옥 보내는 게 능사 아니다”>는 “법원의 결정이 ‘재벌 봐주기’로 돌을 맞아야 하는 것일까. 아마도 재판장에게 박수를 보낸 사람도 많을 것으로 믿는다”고 주장했다. 한편 “재벌 총수니까 엄벌해야 한다는 역차별의 정서는 해당 기업은 물론 한국 경제를 망치는 독버섯으로 자랄 수 있다”며 “기업이나 자본이 역차별을 당하는 현실은 고쳐야 한다”고 적반하장 식 괴변을 늘어놓았다. 칼럼은 김승연 회장에 대해서도 “폭행사건은 쌍방 간 합의가 있으면 실형을 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재벌총수라는 점 때문에 더 엄한 처벌을 받은 셈이다”라고 1심 판결을 비난했다. 그러나 김승연 회장은 여섯 가지 항목에서 유죄가 인정되었으며, 이는 단순 폭행죄가 아닌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상의 폭행죄로 반의사불벌죄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김승연 회장의 폭력사건을 단순 폭행사건에 비교해 표현한 것은 ‘친기업적 재벌 봐주기’ 속셈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조선일보는 8일 사설 <현대차 경영진은 판결의 뜻 깊이 새겨야>에서 “눈과 귀가 밝은 재계·정부·국민의 상당수가 오래전부터 정 회장 스타일의 경영 행태에 많은 우려를 표명”해 왔지만, “경영 파탄이 몰고 올 파장을 우려, 정상적인 경영 궤도에 하루속히 진입하기만을 안타깝게 기다려 왔다”며 재판부의 판결에 대한 환영의 뜻을 비췄다. 더불어 “정 회장과 현대자동차그룹 경영진은 이번 판결을 한국 사회로부터 받는 ‘마지막 집행유예’라고 생각, 경영 투명화, 회계와 인사의 정상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판결에 대한 비판에 나섰다.
한겨레는 7일 사설 <봐주기 판결로는 기업범죄 못잡는다>에서 법원이 ‘현대차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판결의 주요 배경이 된 데 대한 비판을 냈다. 사설은 “법원이 기업인 범죄에 유독 관대하다는 사실이 거듭 확인되면서, 대법원장의 ‘화이트칼라 범죄 엄단’ 의지도 빈말이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도 같은 날 사설 <사법정의와 거리 먼 ‘정몽구 판결’>에서 “재판부는 종전의 집유 선고와 다른 엄벌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강조하고 싶겠지만, 국민의 눈에는 돈 가진 사람에게 유리한 또 하나의 ‘유전무죄’ 선고일 뿐이다”라고 꼬집었다.
한겨레는 12일 사설 <또다시 재벌 봐주기인가>에서도 김 회장 판결에 대해 “법에 의한 지배는커녕 법을 경시하는 풍조가 더욱 확산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김철환 아주대 교수의 기고 <또 사법의 건망증이 도지는가?>에서는 더욱 신랄하게 이번 재벌관련 판결에 대해 비판했다. 칼럼은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가 가장 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경제 민주화를 뒷걸음치게 만들었다”며, “무지는 용서받을 수 있지만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은 용서받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조·중·동, 황제경영에 대한 문제제기 없어
한편, 이번 판결은 회사경영을 총수와 일원화하는 이른바 ‘황제경영’의 폐단을 사법부가 용인해준 것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깊다. 그러나 보수언론들은 ‘황제경영’의 폐해에 대해 지적하지 않은 채, 이번 판결이 그룹경영과 경제적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점만을 부각했다. 특히 정 회장의 경우는 회사의 자금을 횡령하는 등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행위로 구속됐다. 정 회장이 돌아가야 회사가 잘 된다는 식의 회사내의 반응과 판사의 사고는 이상한 것인지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사회 감시 기능을 수행해야할 언론이 앞장서서 이런 논리를 설파하고 있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조선일보는 7일 b04면 <정몽구 회장 항소심 집행유예 선고/ 현대차 ‘글로벌 경영’ 속도 올린다>와 12일 B03면 <김승연회장 집행유예 ‘경영 정상화’ 설레는 한화>에서 각각 “경영 불확실성 해소…해외 성장동력 찾아내기 위해 추석 후 현장 발걸음 빨라질 듯”, “김승연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한화그룹은 경영정상화를 기대하고 있다”등 두 회장이 바쁘게 경영일선에 투입됨을 강조했다.
중앙일보 또한 7일 6면 <세 가지 걸림돌 일단 치운 현대차>에서 소제목으로 “글로벌 전략, 가속페달 밟는다”라며 낙관적 전망을 담았다. 기사는 “정 회장에 의존 시스템 이번 기회 싹 바꿔야”라는 재계 관계자의 발언을 굵은 글씨로 부각시키긴 했으나 기사 본문에서는 단편적 인용에 그쳤다. 12일 <한숨 돌린 한화 “글로벌 경영 재시동”>에서는 “김승연 회장 집행유예 … 주가도 강세로”라며 한화 측의 축제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한겨레 7일 3면 <‘회장 구속되면 부도 위기’ 재계 논리 치우쳐>는 이재홍 부장판사가 밝힌 “현대차의 부도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집행유예 사유에 대해 “(이러한)논리는 ‘황제경영’의 폐해를 그대로 인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기사는 “올 상반기 매출과 이익이 지난해보다 각각 6.1%, 15%씩 증가한 상황에 비춰볼 때 ‘정 회장 재판에 따른 경영공백 위기’는 앞뒤가 안 맞는다”고 반박했다. 같은 날 정 회장의 향후 행보를 담은 17면 <‘투명 경영’ 난제 싣고 ‘현장 경영’ 속도 낼듯>에서도 “후진적 지배구조에서 비롯된 ‘황제 경영’의 폐단을 없애는 일에서부터 ‘투명 경영’과 ‘사회책임경영’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것까지 그 앞에는 결코 만만찮은 과제가 쌓여 있다”며 보수언론들의 무조건적인 경영 낙관론과는 다르게 기업에 대한 경고를 표했다.
12일 사설 <또다시 재벌 봐주기인가>에서는 “김 회장이 비난을 받은 큰 이유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제왕적 기업운영 행태를…일인지배 체제에선 당연시됐던 행동양식이 우리 사회의 상식과 충돌한 셈”이라며 “황제경영은 이제 통할 수 없게 됐다”고 꼬집었다.
경향신문도 7일 사설 <사법정의와 거리 먼 ‘정몽구 판결?gt;에서 재판부의 “경제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는 집행유예 사유에 대해 “정 회장이 한동안 기업 활동을 못한다고 해서 우리 경제가 위험에 처할 까닭이 없다”며, “납득할 수 없는 논리”라고 비판했다.
판결에 대한 한겨레의 ‘쓴 소리’, 당연하다
보수언론은 재벌총수들에 대한 사법부의 심판으로 세간의 이목이 됐던 이번 판결에 대해 소극적으로 보도했다. 기사의 내용 역시 심층적인 분석이나 비판이 전무하다시피했다. 정 회장에 대한 판결은 주요 외신들의 비판과 검찰의 상고 등으로 그나마 보도가 이어졌지만 김 회장 판결 관련한 첫 보도가 있었던 12일에도 판결내용에 대한 스트레이트 기사만 있었을 뿐이었고 그나마 13일에는 단 한건도 보도하지 않았다.
정 회장 판결의 경우, 조·중·동은 판결 관련 첫 보도가 있던 7일은 판결에 대한 평가를 담은 사설조차 내지 않다가 외신의 비판 이후에야 소극적인 비판 행태를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한겨레는 두 번의 판결 이후 보도량과 기사의 질에서 차별성을 보였다. (<표1>참조)
<표1> 정몽구·김승연 회장 판결 이후 첫날 보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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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겨레는 다른 신문에서 접근하지 못한 심층적이고 예리한 분석을 내놓았다. 정 회장의 집행유예 배경에는 재판과정에서 1조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이 크게 작용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8,400억 원만을 명했다. 이에 대해 7일 4면 <재판부 ‘출연규모 8400억’ 거론은 계산착오?>는 현대차그룹 쪽의 “1조원 상당의 사회 환원 약속에는 변함이 없다”는 인터뷰를 담아 사회적 책임을 확인시켰다. 또한 같은 날 4면 <글로비스 주식 환원 ‘1년 전 약속’ 얼버무려>에서는 “정 회장은 약속한 1조원의 출처나 구체적인 출연 일정을 확정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된 정몽구 회장의 ‘사회봉사명령’에 대한 비판도 한 발짝 더 나갔다. 7일 3면 <신문 기고…강연…‘이상한’ 사회봉사명령 논란>은 “재판부는 8,400억 원 가운데 집행유예 기간인 5년 동안 6천억 원만 출연을 강제하고 나머지 2,400억 원은 ‘담보’없이 성실히 출연을 이행하라”는 판결을 냈다며, 이는 “집행유예가 끝난 뒤 개인사정 등을 들어 출연을 거부할 수 있는 빌미를 남긴 셈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한겨레의 보도는 다른 신문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예리한 분석과 다양한 접근으로 언론의 의제 설정과 감시기능을 드러낸 좋은 보도였다.
재판부와 보수언론, 재벌총수도 법 앞의 평등한 국민임을 잊지 말길
법관의 재량으로 인한 ‘양형참작’ 사유가 유독 고위층에게만 관대하게 적용되는 것은 개선돼야 할 사회적 문제이다. 그럼에도 정몽구 회장과 김승연 회장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재벌총수와 일반 국민의 처벌은 불평등하다’라는 세간의 공식을 한 번 더 확인시켜 준 부끄러운 일이다. 또한 재벌 회장이라는 지위는 경제사범을 더 중히 처벌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입법 취지와 형법이 중시하는 형평성의 원칙마저 무력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 개탄스러운 판결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법원 판결에 대해 “한국 법원은 재벌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 어떤 일을 하든 경영을 계속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는 것 같다”며 “그러나 재벌들이 제대로 행동하고, 모든 국민에게 공평한 사법체계를 갖추는 게 국가 이익에 더 부합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이러한 사안에서조차 제대로 된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친재벌적인 행태를 보인 보수신문은 그들 스스로 대다수 서민들을 위한 신문이 아님을 증명한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재벌 편들기’에 몰두하는 보수신문이 기업에 대한 건강한 감시·비판 기능이 있기는 한 지 의심스럽다. 사회에 대한 감시기능이 없는 언론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 우리는 이번 판결을 통해 다시 한 번 법원의 평등한 사법정의 실현과 보수신문의 환골탈태를 촉구한다.
<끝>
2007년 9월 1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