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_
2차 남북정상회담 관련 주요 신문의 ‘NLL 보도’에 대한 민언련 모니터보고서(2007.9.4)
2차 남북정상회담 관련 주요 신문의 ‘NLL 보도’에 대한 민언련 모니터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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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실체 외면하고 억지주장 늘어놓는 수구신문
Ⅰ. 들어가며
북의 ‘큰물 피해’라는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10월 2일로 연기된 2차 남북정상회담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처음 남북 당국의 8월 28일 개최 합의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냉전수구신문들은 ‘시기·장소·절차·방법론’, ‘북핵우선론’, ‘뒷거래 의혹’, ‘퍼주기’ 등 온갖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2차 정상회담을 흠집냈다. 이들은 또 수해로 인한 회담 연기에 ‘음모론’을 제기하며 ‘회담 차기정부 이관’ 등 사실상 ‘정상회담 무산론’까지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냉전수구신문들의 주장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지향하며 2차 정상회담 개최를 지지하는 여론을 이기지 못해 별 다른 힘을 갖지 못했다. 이에 냉전수구신문들은 ‘아리랑축전’ 개최에 딴지를 걸거나, 탈북자 단체의 목소리에 비중을 싣는 등 빌미가 생길 때마다 우회적인 방법으로 정상회담 개최와 정상회담 의제에 대한 흠집내기를 산발적으로 벌이는 한편, NLL(서해북방한계선, Northern Limit Line) 논란을 집중 부각해 마치 정부가 정상회담에서 영토를 북에 내어줄 것으로 몰아붙이면서 정상회담을 흔들어댔다.
우리 단체에서 2차 정상회담 개최 발표 다음날인 8월 9일부터 8월 28일까지 20일 동안 5개 일간지(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한겨레신문·경향신문)를 모니터링한 결과 냉전수구신문들은 이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NLL 논란’을 부추겨왔고, 날이 갈수록 그 강도가 더 높여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표1] 8월 9일~28일 동안 5개 신문의 NLL 관련 기사 현황
신문사 |
기사 제목 |
계 |
조선일보 |
정부, 군축·NLL 해법 검토 전문가들 “핵 해결없인 위험”(8/11, 1면) |
총 17건, 사설 2건, 칼럼·기고 1건 |
핵 제치고 NLL로 무슨 요술 부리려나(8/13,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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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박 “정상회담서 NLL 재설정 논의 말라”(8/13,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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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NLL 재설정땐 군사충돌 위험 커져”(8/13, 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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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권, NLL 재설정 협상론 확산(8/13, 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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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은 영토 문제…정상회담 의제에 포함시켜선 안된다”(8/20, 조성태 전 국방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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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은 타협 대상 아니다(8/14, ‘시론’ 박용옥 전 국방차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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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NLL 어떻게 한다는 얘기?(8/14,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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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통일 “서해교전, 방법론서 반성해봐야”(8/17, 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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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의 정체는?(8/18, B1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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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통일장관은 서해교전 순국장병을 모독했다(8/18,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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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장관이 북한 대변자냐” 각계 분노(8/18,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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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방 “이통일 ‘서해교전 발언’ 납득 안돼”(8/22, 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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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변경이 안보위협 그런 주장에 동의 못해”(8/23,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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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가족 “이통일 집앞에서 매일 시위”(8/23, 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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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남북정상회담 테이블 올리기?(8/24, 8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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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남북정상회담 의제 포함않기로(8/28, 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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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NLL보다 공동어로수역 논의가 현실적이다(8/13, 사설) |
총 22건, 사설 4건, 칼럼·기고 2건 |
NLL 의제포함 여부 벌써부터 시끌(8/13, 1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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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정원장 “NLL, 영토주권 개념”(8/14, 1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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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개념 NLL, 위험천만한 발상”(8/15, 8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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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재설정은 한국안보에 중대한 도전”(8/16, 브루스 벡톨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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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통일 “서해교전은 반성해봐야 할 과제”(8/17, 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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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은 한국 방어 생명선(8/18, ‘릴레이 시론’ 차영구 전 국방부 정책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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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서 ‘NLL 의제’ 띄우기?(8/18, 8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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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친북성향 장관 보고 안받겠다”(8/18, 8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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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장관이 할 소리인가”(8/18, 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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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이재정 씨 해임해야(8/18,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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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왜 중요한가?(8/18, 8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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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방 “NLL문제, 장관급서 논의해야”(8/22, 8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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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전방위적 군 흔들기에 말려들지 말아야(8/23,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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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문제 남북간 협의 외면 말아야”(8/23, 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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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의 NLL 인식 미심쩍다(8/24,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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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없으면 인천-연평도 사이 북잠수함 드나들 것”(8/27, 박승춘·한철용 대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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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철폐땐 수도권 안보빗장 풀려”(8/27, 박승춘·한철용 대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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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언급 자체가 정상회담 끌려간다는 증거”(8/27, 3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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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켜 낸 NLL인데…(8/28, ‘기자의 눈’ 윤상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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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자문기구 동북아위 “NLL침범 단호한 대응해야”(8/28, 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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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방침과 다른 주장 기고 논란(8/28, 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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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
NLL 훼손 절대 용납 못한다(8/11, 사설) |
총 12건, 사설 3건, 칼럼·기고 3건 |
“NLL, 영토개념 아니다” 이재정 통일/“김정일이 원하는 발언” 한나라 비판(8/11, 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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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NLL을 평화공동수역으로”(8/13,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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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문제 얼마나 양보하나…군 속앓이(8/14,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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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군부는 생각을 바꿔라(8/16, ‘시론’ 임을출 경남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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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도 우리가 반성해야 한다니…(8/17,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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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NLL 논란…이재정 본심은(8/17,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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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은 반성할 과제”(8/17, 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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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당치 않은 통일부의 NLL 흔들기(8/24,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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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NLL 때문에 연기”(8/24, 8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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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NLL 논쟁인가(8/27, ‘노트북을 열며’ 이철희 정치부문 부장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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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문제 국방부에 맡겨라(8/28, ‘칼럼’ 김규 재향군인회 안보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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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공동어로·평화수역’ 등 NLL 우회로 모색(8/13, 6면) |
총 8건, 사설 1건, 칼럼·기고 1건 |
‘기본합의서’ 실질적 이행이 신뢰구축 ‘열쇠’(8/13,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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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최대난제 NLL 될듯”(8/13, 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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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 진전이 두려운 사람들(8/15,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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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한계선, 논쟁 피하고 실무회담 넘겨야”(8/16, 임동원·문정인 대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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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수 국방장관 “NLL 논의땐 먼저 장관급회담서”(8/22,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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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서 NLL 논의해야” 잇단 제기(8/23, 2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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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수역 평화정착 노력해야(8/28, ‘기고’ 서주석 전 청와대 안보수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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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NLL 수정’ 논란 불거진다(8/11, 1면) |
총 8건, 사설 2건 |
‘군사신뢰’ 받침돼야 경제협력 탄력(8/14, 4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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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NLL 혼선’(8/14, 1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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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LL 논의, 기존 남북 합의가 출발점이다(8/15,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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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하지말란 소리” 노 ‘NLL협상 불가론’ 일축(8/15, 3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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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 안보 방법론에서 반성 필요”(8/17, 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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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장관 발언 무겁고 정교해야(8/18,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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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대화 걸림돌 안돼야” “양보할 수 없는 영토문제”(8/22, 이장희·홍관희 토론) |
- 8월 내내 NLL로 정상회담 흔든 냉전수구신문
이 기간 동안 동아일보가 모두 22건의 NLL 관련 기사를 내보내 가장 많은 양을 보도했고, 조선일보가 17건, 중앙이 12건, 경향은 8건, 한겨레는 8건 보도했다. 동아는 사설에서도 가장 많은 4건을 썼고, 칼럼이나 기고는 2건이었다. 중앙은 사설과 칼럼·기고가 각 3건씩이었고, 조선은 사설 2건, 칼럼·기고 1건이었다. 총 67건의 NLL 관련 기사 중 동아가 무려 1/3을 차지했고, 조·중·동을 합칠 경우 51건으로 무려 77%나 차지했다. 그만큼 냉전수구신문들이 집요하게 NLL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특히 이들 신문은 군 출신 인사들의 기고, 인터뷰, 대담이나 사설을 통해 ‘NLL은 생명선’, ‘NLL 논의는 곧 영토를 내어주는 것’, ‘NLL 없으면 북 잠수함 드나들 것’ 등 NLL에 대한 논의 자체를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몰아가면서 ‘NLL은 정상회담에서 논의해서는 안 되는 사안’으로 만들어갔다.
하지만 냉전수구신문들의 이 같은 주장은 NLL의 탄생배경과 실체, 역사적 진실, 국제법 등 어느 것 하나에도 합당하지 않는 생떼나 다름없는 억지 부리기다. 그러다보니 이들 신문의 주장에는 ‘NLL은 논의하면 안되는 것’, ‘NLL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 그대로의 주장만 있을 뿐, 그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나 논리는 허약하기 짝이 없었다. 심지어 스스로 논리적 일관성을 잃고 맹목적인 주장만 앞세우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아일보의 8월 27일자 NLL 관련 대담 기사다. 박승춘 전 합참정보본부장과 한철용 전 대북감청부대장의 ‘지상대담’ 형식으로 게재된 이 기사는 1면 <“NLL 철폐땐 수도권 안보빗장 풀려”>와 4면 <“NLL 없으면 인천-연평도 사이 북잠수함 드나들 것”> 등 2개면에 걸쳐 주요하게 다뤄졌다. 동아는 두 예비역 장성들이 “NLL 문제는 철저히 안보군사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NLL을 양보하면 인천과 수도권의 ‘안보 차단막’이 사라지게 된다”는 이들의 경고를 덧붙였다. ‘NLL이 안보 문제’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하지만 두 예비역 장성의 주장에서 ‘안보’ 문제를 중요하게 부각했던 동아일보는 그에 앞서 8월 10일 이재정 통일부장관이 국회에서 “NLL은 영토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안보적 개념으로 존재한다”고 한 발언을 두고는 “논란이 일고 있다”며 ‘파장’으로 묘사했다. 또 8월 15일 <“안보개념 NLL, 위험천만한 발상”>에서 “NLL과 관련해 안보 개념을 강조하는 것은 조정이 가능하다는 뜻인데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는 김희상 전 대통령 국방보좌관의 NLL 관련 발언을 부각시킨 바 있다. 같은 ‘안보’를 이야기하더라도 이재정 장관이 말하면 ‘위험천만한 발상’이 되고, 전직 군 장성들이 말하면 ‘우국충정’이 되는 것이다.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주장과 논리만 끌어다가 여론을 호도하려 한 냉전수구신문의 모습은 이밖에도 NLL 관련 보도에서 무수하게 찾을 수 있다. 특정인의 발언을 부풀리거나 앞뒤를 잘라내 문제발언으로 몰아붙이는 식의 과장왜곡보도 또한 판을 쳤다. 이 보고서에서는 NLL과 관련해 이들 냉전수구신문들이 ‘NLL은 양보할 수 없는 영토’라는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어떤 식으로 논리들을 바꿔 갔는지, 이 과정에서 과장왜곡은 어떤 식으로 나타났는지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Ⅱ. NLL의 진실
먼저 NLL이 어떤 선인지, 이를 두고 ‘영토’나 ‘생명선’이라고 주장하는 게 과연 타당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냉전수구신문들의 NLL에 대한 주장들을 살펴보면, NLL의 탄생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과정 전체에 대한 철저히 일방적인 내용들로 점철되어 있고, 극심한 사실 왜곡이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군관계자나 이른바 ‘전문가’를 동원해 쏟아내는 주장들이 사실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NLL의 진실’을 우선 짚고 넘어가야 했다.
NLL을 따져보기 위해서는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관 및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하 정전협정)을 검토해야 한다.
1. 정전협정을 토대로 한 NLL 검토
정전협정 제1조(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1항과 2항에 의하면 육상 군사분계선은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각기 2킬로미터식 후퇴함으로써 적대군대 간에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인정한다”며 위치를 지도상에서 명확히 규정했다. 이것이 바로 MDL(Military Demarcation Line, 육상군사분계선 즉 휴전선)이다.
하지만 해상 군사분계선은 그렇지 못했다. 정전협정 제2조(정화 및 정전의 구체적 조치) 13항에 의하면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모든 섬 중에서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및 우도 등 국제연합군총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남겨두는 도서군들을 제외한 기타 모든 섬들은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군사령원의 군사통제하에 둔다’고 되어 있고, “한국 서해안에 있어서 상기 경계선 이남에 있는 모든 섬들은 국제연합군총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남겨둔다”고 되어 있다. 즉,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 북쪽과 서쪽에 있는 모든 섬 가운데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5개 섬은 연합군총사령관 통제에 두되, 나머지 모든 섬은 북한의 통제에 두고, 도계선 이남의 섬은 연합군총사령관의 통제로 둔다는 것이다. 정전협정에서는 이 규정을 지도에서도 분명히 표시했다.(참조 [그림1])
[그림1]에서 ‘A-B’로 표시된 선 이외에는 한반도 서해와 관련해 어떤 선도 정전협정에서 규정되거나 표시된 적이 없다. 그저 정전협정 제1조 5항에서 “한강하구의 수역으로서 그 한쪽 강안이 일방의 통제하에 있고 그 다른 한쪽 강안이 다른 일방의 통제하에 있는 곳은 쌍방의 민간선박의 항행에 이를 개방한다”며 ‘A-B’선을 사이에 둔 남북에 걸친 한강하구수역의 관리와 통제권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A-B’선은 예성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강화도 부근에서부터 출발해 30km 정도 서쪽에 있는 우도 근방까지만 그어져 있을 뿐 백령도까지 아우르는 선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정전협정에서는 “본 정전협정에 대한 수정과 증보는 반드시 적대 쌍방사령관들의 상호합의를 거쳐야 한다”며 “본 정전협정의 각 조항은 쌍방이 공동으로 접수하는 수정 및 증보 또는 쌍방의 정치적 수준에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적당한 협정 중의 규정에 의하여 명확히 교체될 때까지는 계속 효력을 가진다”고 못박아두고 있다. 즉, ‘쌍방’(북·중국과 유엔군)의 ‘상호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고서는 수정이 이뤄질 수 없으며, 평화협정 수준의 규정에서 명확히 교체될 때까지 효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전협정에서는 13항과 관련해 ‘주’까지 달아 지도에 표시된 선과 구역들을 더욱 분명히 했다. [그림1]에서 백령도 등의 외부에 표시된 사각형의 그림에 대해 정전협정은 “각도서군들을 둘러싼 장방형의 구획의 목적은 다만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남겨두는 각도서군들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방형의 구획은 아무런 다른 의의가 없으며 또한 이에 다른 의의를 첨부하지도 못 한다”고 되어 있다. 즉 섬을 둘러싼 선들이 어떤 ‘구역’이나 ‘영역’, ‘통제범위’를 표시하는 게 아니라 그저 서해5도 그 자체를 표시하기 위한 선일뿐이라는 것이다. 서해5도 외에는 ‘A-B’선(황해도-경기도 도계선) 서북부의 그 어떤 수역이나 영역도 쌍방이 합의하여 규정한 것은 없다. 정전협정 당시 북은 ‘A-B’선을 서쪽으로 연장해서 ‘서해해상경계선’을 긋자고 주장한 반면 연합군 측은 서해5도를 포함하는 경계선을 주장해 쌍방이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2. ‘클라크 라인(Clack Line)’에 대해
그렇다면 논란이 되고 있는 NLL은 도대체 무슨 선인가. 이미 알려졌듯 NLL은 이른바 ‘클라크 라인’이다. ‘클라크 라인’에 대해서는 몇 가지 주장이 있다. 먼저 1953년 8월 30일 당시 유엔군총사령관인 마크 클라크(Mark Wayne Clark)가 서해상에서 남북한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설정한 선이라는 주장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국방부 등에서 당시 클라크가 이 선을 설정한 뒤 북측에도 통보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북에 ‘통보’된 증거나 정황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뿐더러 단지 유엔군 내부적 ‘교전규칙’의 일환으로 설정해 북측에 아무런 통보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더욱 근거를 가지고 있다. 정전협정 당시 정전을 반대했던 남한 이승만 정부가 정전협정을 무력화하기 위해 북에 대한 무력 사용을 할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유엔군총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유엔군 이하 남한 해군에 지침으로 내린 선이라는 것이다. 즉 남측이 클라크 라인을 넘어 북쪽으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한 것 일뿐 북측이 남쪽으로 침범하는 것에 대해서는 애초 만들어질 때부터 아무런 쌍방의 합의와 통보가 없었다.
이에 대해서는 유엔사측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2003년 3월 9일 방송된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편에서 유엔사 고위장교는 NLL과 관련된 비공개 인터뷰를 통해 “NLL을 설정한 것은 유엔군사령부 아닌가?”라는 질문에 “그건 우리측 배가 넘어가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제는 남과 북이 풀어야 한다”고 대답했고, “북한 선박이 NLL을 넘어오면 정전협정 위반인가?”라는 질문에도 “NLL은 휴전선이 아니다. 적대행위를 할 경우에만 정전협정 위반이다”고 대답했다.
또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1993년 국방부가 발간한 ‘군사정전위원회 편람 제2집’에서 “NLL은 유엔군 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지정한 선으로 해상 군사분계선이 아니다”고 적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1989년 메네트리 당시 유엔군사령관이 이상훈 국방부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북한 선박들이 단순히 북방한계선을 월선한 데 대해 유엔군 사령부는 항의할 권한이 없다”고 말한 사실도 밝혀냈다.
원래 클라크 라인 자체는 정전협상 도중인 1952년 9월 27일에 만들어졌다.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는 1999년 <“북방한계선”은 합법적 군사분계선인가?>라는 논문에서 클라크가 정전협상에서 북측을 압박하기 위한 ‘대북 해안봉쇄’ 차원에서 이 선을 설치하고, 유엔총회에서 통과시키려 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며 이 같은 사실을 밝힌 바 있다.
리 교수는 또 ‘해안봉쇄’용이었던 클라크 라인은 정전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본 정전협정은 적대중의 일체 해상군사력에 적용되며 이러한 해상군사력은 비무장지대와 상대방의 군사통제하에 있는 한국(조선) 육지의 인접한 해면을 존중하여 한국(조선)에 대하여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한다”는 정전협정 15항 규정에 의거, 협정체결 한 달 뒤인 1953년 8월 27일 클라크가 스스로 철폐를 발표했다고 주장했다.
클라크가 스스로 없앤 선이 NLL로 대체된 것에 대해서는 리 교수 역시, 이승만 정부가 정전협정을 파기할 목적으로 일방적인 대북 군사행동을 감행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이는 NLL이 1953년이 아니라 1958년에 설정됐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앞서 언급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전 유엔사 특별고문이었던 이문항 씨는 유엔사와 남측이 57년부터 시작된 남측 어부들의 납북을 막기 위해 어로저지선을 설치하고, 북한 해군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NLL을 설정했다고 주장했다. 이문항 씨는 58년 이전에는 ‘그 어느 문서에서도 NLL을 본 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여러 주장들을 종합해보건대, NLL은 정전협정과는 무관하게 유엔사 내지 남측에서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3. 북은 NLL을 인정한 적이 있나?
NLL을 ‘영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북측이 73년 전까지 혹은 1992년 남북합의서 채택 전까지, NLL에 대해 문제 삼지 않고 사실상 ‘해상분계선’으로 인정해놓고 이제와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NLL이 어떻게 그어졌던 남측이 NLL 이남 바다를 ‘실효적’으로 지배해왔기 때문에 ‘영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 역시 수많은 근거에 의해 반박되고 있다. 50년대 중후반 북에서 해군이 창설된 이후 연평도 등 NLL 부근 해상에서는 남한 어부들이 북측에 의해 납북되는 일이 잦았다. 북측이 NLL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넘어왔다는 것이다. 이후 73년에는 북한 함정이 십여차례 NLL을 집중적으로 넘어온 적이 있었고, 그 이후부터 2002년 2차 서해교전과 그 이후까지 북측은 거의 매년 NLL을 넘어오거나 ‘남의 집 마당에 일방적으로 그은 비법선’이라고 문제제기해왔다. 특히 73년 12월에 있은 군사정전위원회에서 북측은 “서해 5도는 유엔사 관할이나 섬 주변의 물은 한 방울도 손 못 댄다”며 NLL에 강한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아울러 50~60년대 어민들의 납북 등과 관련한 신문기사를 보면 ‘NLL’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고 ‘어로한계선’ 등의 명칭이 등장한다. 연평도 등에서 수십년 어업을 해온 어민들도 NLL이란 용어 자체를 1차 서해교전(1999년) 당시 처음 들었다는 증언을 내놓기도 한다. 즉 남측 역시 NLL 설정 이후 수십년 동안 NLL을 국경선이나 해상군사분계선 등으로 인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따라서 NLL 이남 해역을 두고 ‘북한이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해왔기 때문에 우리 영해’라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4. 남북기본합의서와 NLL
냉전수구신문 등 수구우익집단들은 1991년 12월 31일 남북 사이에 체결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이하 남북기본합의서)의 11조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 7월 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는 규정을 두고 ‘북이 NLL을 인정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또한 ‘NLL 이남을 남측이 지금껏 관할해왔다’는 사실에서 근거한다.
남측이 NLL을 지켜 온 것이야 사실일 수 있지만, ‘쌍방’이 관할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북은 이제껏 단 한 번도 NLL을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기본합의서 11조에 규정된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이란 정전협정 당시 그어졌던 육상분계선과 앞의 지도에서 봤던 한강하구의 ‘A-B’선을 사이에 둔 남북 지역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남북기본합의서 관련 ‘남북불가침 부속합의서’는 제10조에서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했던 것이다. 이는 정전협정에서 차후 협의 과제로 남겨뒀던 해상경계선을 92년 이전까지도 남북이 ‘협의’해왔고, 앞으로도 ‘협의’할 대상이라는 점을 밝혀둔 것이다.
5. 기타 냉전수구세력의 주장에 대한 반박
이밖에 수구세력들은 북이 1959년 스스로 만든 ‘조선중앙년감’의 지도에서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표시했다며 ‘북이 NLL을 인정한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중앙일보는 8월 28일 김규 재향군인회 안보국장의 기고
하지만 실제 ‘조선중앙년감’ 59년판 254쪽에 게재된 지도([그림2])를 확인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