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12일 동아일보 사설 ‘KBS는 누구를 닮아 신문 때리기에 혈안인가’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6.13)
동아, 자발적 충성 반성한 방송프로그램까지 정치공세에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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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는 12일 사설 <KBS는 누구를 닮아 신문 때리기에 혈안인가>에서 9일 방영된 KBS <미디어포커스> ‘6·10항쟁 20주년 특집 2부작-(1편) 각하, 만수무강하십시오!’(이하 <만수무강하십시오>)를 폄훼하며 ‘KBS 때리기’에 나섰다.
동아일보는 <만수무강하십시오>를 거론하며 KBS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이 “권력의 방송이라는 틀 안에 안주하고 있다”며 “권력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과거를 반성하는 프로그램 한두 편 방영하고는 새 권력의 품에 안기기를 반복했다”, “민주화 20년 보도 홍수 속의 구색 갖추기일 뿐”이라고 사실을 호도하고 폄훼했다. 심지어 “시대착오적 좌파이념이나 친북반미의식을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는 색깔공세를 펴기도 했다.
<만수무강하십시오>는 5공 시절 방송사들이 전두환 정권에게 어떻게 ‘충성’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자신의 과오를 반성한 프로그램이었다.
일례로 MBC는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지 불과 일주일 후, 연예인을 동원해 전두환을 위한 보안사령부 위문공연을 마련하고, TBC 방송사는 80년 5월 광주를 피로 진압한 지 3주 만에 열린 ‘국보위 파티’에서 자사 관현악단을 활용해 흥을 돋았다. 또 방송사들은 전두환의 생일파티, 장녀의 결혼식 등 전두환 개인의 대소사까지 기념비디오로 제작해 상납했고, KBS는 대통령이 편리할 때 방송프로그램을 보도록 방송사 영상자료실을 가동하기도 했다. 당시 국립영화제작소는 대통령 찬양 영화를 2편이나 제작해 전두환을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해낸 영웅으로 칭송하기까지 했다.
80년대 ‘권력의 나팔수’였던 방송의 부끄러운 과거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만수무강하십시오>는 방송사 내부 관계자만이 알고 있는 ‘비공개 자료’까지 공개하며 전두환 정권과 유기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충성경쟁을 벌였던 방송의 참담한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고 반성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KBS의 ‘자발적 반성’에 대해 평가하기는커녕 이를 빌미로 저급한 ‘KBS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동아일보가 KBS를 비판할 자격이나 있나? 그동안 동아일보는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 진심으로 반성해본 역사가 없다. 심지어 동아일보는 독재정권에 맞서 언론의 양심을 지키려고 고군분투 해온 동아일보 해직기자들의 활동마저 ‘동아일보의 역사’로 치장하는 뻔뻔한 작태까지 보여 왔다. 이런 동아일보가 타사의 자성과 성찰을 본받고, 독재정권을 찬양하고 민주시민들을 폭도로 몰았던 과거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기는커녕 이를 정치공세에 이용한 것이다.
또한 동아일보가 “정권이 바뀌면 또 반성 프로그램 한두 번 내고 ‘주군(主君)’을 바꿔 모실 심산인가” 운운하며 <미디어포커스>를 비난한 것도 어처구니없다. 6월 항쟁과 민주화 과정을 ‘주군의 교체’ 정도로 천박하게 보고 있는 동아의 인식도 한심하지만, KBS가 내놓은 일련의 ‘개혁프로그램’을 ‘새로운 주군’에 대한 ‘충성가’로 몰아간 것도 어이없다.
독재정권에 과잉 충성했던 방송의 뼈아픈 반성이 ‘새로운 주군에 대한 충성가’라면 ‘독재 주군’을 그대로 찬양하라는 뜻인가. 언론들이 독재정권의 강요로 보도지침을 그대로 베껴 쓰고 과잉충성을 했던 과거에서 언론이 가장 많은 자유를 누리는 현재로 시대가 변했음에도 동아일보는 애써 시대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언론의 변화를 정치공세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매체 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 포커스>에서 신문비평을 하는 것에 대해 “메이저 신문 때리기에 힘을 쏟는다”고 주장하는 것도 지나치다. ‘매체 간 상호비평’은 신문, 방송, 인터넷미디어 등 각종 미디어가 서로 다른 매체에 대해 생산적인 비평을 하는 것으로, 이러한 작업을 통해 매체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것은 곧 자기 발전의 지름길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상업방송을 근간으로 하는 미국에서도 방송의 논설이나 정치비평, 다른 미디어에 대한 상호비평은 자연스러운 기능의 일부로 인정되고 있다.
그럼에도 동아는 사설에서 ‘뉴라이트 폴리젠’이 개최한 세미나 발제를 인용, “<미디어포커스> 올해 1월~5월 프로그램의 62.6%가 조중동 3개 신문에 대한 비난이었다”며 이를 ‘메이저 신문 때리기’라고 주장했다. 매체 간 비평프로그램을 통해 많은 비판을 받은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못할망정 사실을 호도하고 잘못을 은폐하려는 동아일보의 행태가 한심하다.
우리는 동아일보가 이제라도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민주화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언론의 반성을 폄훼하고 ‘KBS 때리기’를 위한 정치공세에 이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동아일보가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6월 항쟁을 맞아 지난 민주화과정에서 자신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돌아보고 가만히 있는 것이 그나마 동아일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성’일 것이다. <끝>
2007년 6월 13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