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강동순 녹취록 파문’ 관련 주요 일간지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4.9)
‘강동순 파문’, 소극보도·물타기보도로 덮을 수 없다
.................................................................................................................................................
방송위원회 강동순 상임위원이 지난 해 11월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 신현덕 경인TV 전 대표 등과 만난 자리에서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를 위한 ‘방송대책’을 제안 하는 등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강 위원은 이 자리에서 “호남 사람들은 김정일이 내려와도 우리 동네에는 포 안 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한나라당 의원들보다 강성이다. 좌파들 몰아내지 않으면 우리가 못산다”, “정권 찾아오면 방송계는 백지에 그려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강 위원은 ‘사석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 정도로 문제 발언을 합리화 하려 들지만 녹취록의 내용은 그의 이런 주장을 무색케 했다. 강 위원은 방송위원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해 실제로 정치적 중립성을 던져버린 부적절한 행동을 ‘실천’했거나 앞으로 대선국면에서 편향된 정치활동을 할 계획임을 곳곳에서 드러냈다.
일례로 지난 해 10월 북한 핵실험 이후 KBS와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조총련계 재일교포인 김명철 조미평화센터 소장의 인터뷰를 둘러싼 논란에 관한 내용을 들 수 있다. 2006년 10월 17일 우익단체 자유시민연대와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이들 프로그램을 방송위원회에 ‘시청자불만처리’ 사안으로 접수했고, 국회 방송위원회 국감에서도 이 프로그램이 논란이 됐다. 10월 20일 방송위원회 ‘보도교양심의위원회’는 김명철 소장 인터뷰 방송에 대해 ‘문제없음’을 내렸지만 강동순 위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시청자불만처리위원회’는 보도교양심의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는 관례를 깨고 이 사안을 방송위원회 전체회의에 넘겼다. 당시 한 인터넷 언론은 강 위원이 각계 인사로 구성된 ‘시청자불만처리위원회’ 위원들에게 “거의 반강제에 가깝게 전체회의로 이 사안을 끌고 갔다”는 관계자 전언을 실었다.
녹취록에는 강 위원이 당시 상황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는데 그는 “말도 안 되는 방송을 뭐 국가기간방송이라는 KBS에서 나갔는데도 좌파들은 여당대변인은 문제없다고 그러고”, “사실 있을 수가 없는 것이 나갔는데도 그걸 시민단체도 모니터도 안하고. 그렇지 않아요?”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또 “보도자료심의위원회(보도교양심의위원회를 말함)를 존중해서 우리도(방송위원회 전체회의) 무혐의처리를 한다 하는 경우에는 사실은 우익 시민단체에서 그걸 와서 시위를 해야 돼요”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김명철씨 인터뷰에 대해 ‘방송위원’으로서 그리고 ‘시청자불만처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중립적인 일처리를 한 것이 아니라 우익세력들과 함께 공영방송 흔들기에 앞장섰음을 드러낸 것으로, “모니터도 안하는” 우익단체들의 ‘시청자불만처리’ 접수가 과연 자발적으로 이뤄졌는지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또한 그는 방송위원회 전체회의가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결론을 내렸을 때 우익세력들이 방송위원회를 공격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나아가 강 위원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모니터그룹이 없어 소용이 없다. 우익 시민단체에 모니터하는 팀이 있어야 하거든. 내가 우익 시민들, 몇 사람한테 얘기해 ‘모니터 그룹을 만들어라’고 했다”고 말해 우익단체들에게 대선을 대비한 ‘정략적인 방송모니터 운동’을 부추겼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방송의 공적 책임 실현에 앞장서야 할 방송위원이 특정 정당의 집권을 위한 전략과 ‘방송 활용’을 논의했다는 자체가 ‘방송위원’으로서가 아니라 한나라당 집권을 위해 ‘정치인’으로 뛰겠다는 것임을 분명히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조선일보 등은 이번 파문을 ‘불법 녹음’ 문제로 몰아가거나 침묵하는 방식으로 ‘강동순 감싸기’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7일 6면에 <‘강동순 술자리 발언’ 몰래 녹음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강 위원의 발언이 담겨있는 녹취록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며 “본인 동의 없이 술자리 대화 내용을 몰래 녹음해 이를 공개한 것은 법적·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 비밀 보장 원칙에 따라 이른바 도청물이나 불법 녹취물은 재판이나 징계 증거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는 한나라당 장윤석 의원의 발언과 같은 당 최구식 의원 그리고 익명의 열린우리당 율사 출신 의원, 하창우 서울변호사협회 회장의 발언을 인용해 ‘불법 녹음’을 쟁점으로 부각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반면 강 위원의 문제 발언들에 대해서는 기사말미에 “(한나라)당에서 방송에 관심을 가져달라 우익 단체들이 방송회관에 와서 ‘이렇게 하려면 문 닫아라’라고 시위를 해줘야 한다”, “우리가 정기적으로 만나서 얘기를 해야한다”는 등의 내용이 있었다고 무비판적으로 언급하는데 그쳤다.
또 6일 국회 문화관광위에서 여러 국회의원들이 강 위원의 부적절한 처신과 문제 발언을 비판했는데도 이런 목소리는 싣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 8면 <강동순 방송위원 ‘특정지역 비하 발언’ 논란>을 통해 “강동순 방송위원의 호남 관련 발언 녹취 내용을 두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설전을 벌였다”며 ‘호남 비하 발언’과 여야 공방에 초점을 맞췄다.
중앙일보는 아예 관련 기사를 싣지 않았다.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기사와 사설을 통해 강 위원의 ‘망언’을 강하게 질타하고, ‘사퇴’를 촉구했다.
한겨레신문은 7일자 6면 <강동순 방송위원 한나라 편향발언 물의>라는 기사에서 강 위원이 “방송위원으로서 도를 넘어서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며 강 위원의 발언을 다뤘다.
나아가 <강동순 방송위원, 차라리 정치를 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강 위원의 사퇴를 촉구했다. 사설은 강 위원이 “특정 정당 의원을 만나, 대선 전략과 방송 활용방안을 조언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비록 한나라당 추천으로 방송위원이 됐지만, 언론인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방송을 선거전략 차원에서 이용하라고 조언할 수는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강 위원 본인을 위해서나, 방송과 방송위원회를 위해서나, 방송위원을 그만두고 정치에 뛰어드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경향신문은 7일 9면 <“대선서 우파가 지면 김정일 세상…김대중은 치매 영감”/방송위원 ‘막말’ 파문>이라는 기사에서 강 위원이 “특정 정당의 대선 승리를 지지하고, 호남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내용의 발언을 한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강 위원의 문제 발언을 소개했다.
9일 경향신문은 <강동순 방송위원은 ‘망언’ 책임지고 사퇴해야>라는 사설을 실었다. 사설은 강 위원의 발언이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 “특정 지역에 대한 악의적인 편견과 방송을 집권의 수단으로 여기는 위험한 인식으로 가득차 있다”고 질타했다. 경향신문은 강 위원이 깊이 반성해야 한다면서 “가장 확실한 사과는 즉각 방송위원을 사퇴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일부 수구보수신문들이 ‘불법 녹음’을 부각하거나 침묵으로 강동순 씨를 감싸고도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려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문제의 녹취록은 경인민방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불거진 이른바 ‘스파이 논란’의 진위를 가리는 과정에서 검찰이 수사 자료로 제출받은 것으로, 대화의 한 당사자인 신현덕 씨가 스스로 녹음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제3자가 아닌 대화 당사자가 녹음한 것은 불법 녹음으로 볼 수 없으며, 이를 보도하는 것 역시 불법이 아니다’라는 법률적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이런 논란 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녹취록이 담고 있는 내용이다. 강동순 씨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으로서 정치권, 언론계 등 각계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한나라당 대선 승리를 위한 방송전략’을 전파하고 실질적인 활동을 조직화하려 들었다. 이는 ‘사석에서 개인적 견해를 밝힌 것’으로 합리화하고 넘어갈 수 없는 심각한 문제로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일부 신문들이 이런 심각한 문제를 외면하거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가?
방송을 ‘집권의 수단’으로 여기고 국민을 상대로 얕은 수를 쓰려 든 강 위원도 문제지만, 방송위원으로서 크나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그를 감싸려 하는 일부 언론의 행태 역시 ‘정략적 행위’로 비난받지 않을 수 없다. <끝>
2007년 4월 9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