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한미FTA협상 타결 관련 주요 신문 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4.3)
수구보수신문 ‘FTA 찬양’, 최소한의 균형도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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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가 타결되었다. 한미FTA의 최종 성적표는 예견했던 대로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많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애초 정부가 큰 성과를 얻을 것으로 내세웠던 무역구제, 섬유, 자동차, 전문직 비자쿼터 등에서 기대했던 ‘실익’은 크지 않다. 무역구제는 미국이 ‘국내(미국) 법을 개정할 수 없다’고 버티는 바람에 결국 실효성이 의문스러운 무역구제협력위원회를 설치하는데 그쳤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의 FTA에서는 내줬던 전문직 비자쿼터도 얻지 못했다. 섬유 부분의 핵심 요구사항이었던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은 협상 이후로 넘어갔다. 게다가 섬유수출시 기업의 경영정보를 미국 세관에 제출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 세관이 사전 고지 없이 현장조사를 할 수 있는 ‘현장 동의제’를 수용하기로 해 수출업체들의 부담을 키우게 됐다는 지적이다. 가장 ‘실익’이 크다고 내세운 자동차 부분도 한국이 요구했던 ‘관세철폐’는 3000cc 미만차종에만 적용된다. 반면 그 대가로 한국은 자동차 세제 개편,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 예외를 인정했다.
농업분야에서는 쌀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품목이 개방됐고, 미국 측이 섬유 분야에서 일부 요구를 수용해주는 조건으로 유전자 조작생물체에 대한 한국 내 안전검사를 생략하도록 하는 등의 조항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한미FTA의 의제가 아닌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위생 조건도 5월 국제수역사무국의 총회 이후 개선을 약속해 광우병 위험이 있는 ‘뼈있는 쇠고기’까지도 연내에 수입하게 되었다. 투자자-국가소송제도 ‘조세·부동산’을 원칙적으로는 제외했지만, “드문 경우에 한해서는 간접수용에 해당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 향후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심지어 미국 의회는 협상이 체결된 뒤에도 자국에 불리한 내용에 대해서는 수정할 것이라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신문의 눈에는 이런 한미FTA 협상의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이들 신문은 한미FTA 협정이 타결되자 일제히 ‘제3의 개국’, ‘경제-안보 동맹’ 운운하며 한미FTA 타결에 따른 ‘의미’를 부여하는데 급급했다. 집권기간 4년 내내 말꼬리 하나하나까지 트집잡고, 조금이라도 개혁적인 정책이 나오면 온갖 왜곡된 논리로 비난해 왔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180도 돌변해 ‘찬가’를 불렀다. 협상 내용의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조선일보, “한미FTA 안보적 가치” 부각
조선일보는 3일 사설 <대한민국, 기회와 도전의 바다로 나서다>에서 한미FTA 체결로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국가 경제가 성장할 기회를 얻었다며 ‘장밋빛 미래’를 그렸다. 그러나 이번 협상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사설은 한미FTA 체결로 “한·미 안보동맹 위에 한·미 경제동맹이 겹쳐졌다”, “경제동맹은 안보동맹을 강화시키는 효과를 갖게 되고 안보동맹은 경제동맹을 뒷받침하는 기반을 제공한다”면서 한미FTA의 ‘안보적 가치’를 강조했다.
이어 “선진화를 달성한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 일본과 선진화의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중국 사이에 끼여 ‘샌드위치’가 돼가던 한국 경제가 한·미 FTA를 통해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며 관세부담이 줄고, 투자가 늘고, 수출이 늘고, 일자리가 늘며, 값싼 쇠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미FTA체결에 따른 문제에 대해서는 “경쟁력이 약한 산업과 기업은 쉽게 바람을 탈 것”이라며 “이에 따른 사회적 대립과 마찰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한국 경제를 선진화의 길로 이끌기 위한 한·미 FTA가 산업간·계층간 갈등을 키울 수도 있다”고 언급하는데 그쳤다. 또 교육·의료 등이 거론된 “88개 서비스 업종이 시장개방에서 제외”된 것을 거론하며 “FTA에 대한 반대 여론을 무마하고 협상을 시한 내 마무리 짓기 위해 미국과 덜 주고 덜 받는 식의 작은 거래(small deal)를 한 것”을 문제점인 양 지적했다.
동아일보, 낯 뜨거운 노 대통령 찬양
동아일보는 한미FTA 체결을 성공시켰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을 찬양하고 나섰다.
사설 <노 대통령의 ‘FTA 리더십’ 높이 평가한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의 제1주역은 노무현 대통령”이라며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한미 FTA는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제2의 성장전략’이라는 소신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극찬했다.
이어 “신념으로 국익을 위한 결단의 리더십을 보여 왔다”, “일본 정치지도자들은 용기를 내지 못했다”, “노 대통령처럼 농민을 향해 ‘이제는 농업도 시장원리에 지배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지도자가 없었던 것”이라고도 추켜세웠다.
또 “개헌이나 대선 같은 정치적 정파적 현안들은 잊어버리고 퇴임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 주기 바란다”며 FTA에만 ‘매진’할 것을 주문했다.
또 다른 사설 <한미 FTA, 선진화의 발판 삼자>에서는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려 선진국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날”, “우리는 개방과 국제화를 향한 의지를 거듭 분명히 했고, 초강대국 미국의 긴밀한 경제 파트너로서 우뚝 설 것임을 내외에 천명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미FTA 체결의 문제에 대해서는 “넓은 시장과 좋은 일자리를 챙길 것인지, 아니면 갈등과 미국화(化)의 부작용에 시달릴지는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며 “경제와 사회제도 전반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고치고 바꿔야 한다. 이에 필요한 구조조정 노력도 게을리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2012년 이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따라 크고 작은 허점이 생길 한미 군사동맹을 ‘경제동맹’으로 보완함으로써 양국 관계를 한 차원 높은 ‘포괄적 동맹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는 ‘희망사항’도 내놓았다.
한편 한미FTA 반대여론에 대해서는 “국가 선진화의 발목을 잡지 말아야 한다. ‘FTA 이후’를 준비하는 일만도 벅찬 상황인데, 파괴적 반대투쟁으로 국력을 낭비할 것인가”, “대선주자들을 비롯한 정치권은 표(票)를 의식해 진실을 호도하고 민심을 교란하며 국론을 분열시키는 잘못을 더 저질러서는 안 된다”며 질타했다.
중앙일보, ‘제3의 개국’으로 극찬
한미FTA를 ‘제3의 개국’으로 추켜세운 중앙일보는 <한·미 FTA 갈등을 넘어 미래로 나가자>에서도 한미FTA 체결을 극찬하고 나섰다.
사설은 “세계 제1의 경제·외교·군사 강국과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중 하나인 한국 사이에 무역 빗장이 풀린 것”, “한국은 구한말 개국과 60년대 수출입국에 이어 ‘제3의 개국’에 해당되는 대외개방으로 나아가게 됐다”며 한미FTA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많은 전문가는 잉크로 찍힌 협정의 문구보다는 잉크 밑에 숨어 있는 ‘개방의 잠재 이익’에 주목해야 한다”, “FTA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앞으로 우리가 하기에 달렸다”며 이번 협상의 본질적 문제를 흐렸다.
노 대통령에 대해서는 동아일보와 마찬가지로 “FTA 성사에는 무엇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결단과 지도력이 중요한 역할”, “정경유착의 해소, 권력기관의 독립, 권위주의의 청산 등과 함께 한·미 FTA는 노 대통령의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한껏 띄웠다.
반면 반FTA 진영에 대해서는 “FTA 반대세력은 그동안 근거 없는 불안의식과 논리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고 비난하고, “의원들은 지역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떠나 나라의 미래를 개척하는 장도에 용감하게 동참해야 할 것”이라며 FTA에 반대하고 있는 의원들과 농촌을 지역구로 하고 있는 의원들을 겨냥해 ‘국회 비준’에 동의할 것을 촉구했다.
나아가 “FTA로 일부는 고통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전체 공동체가 살아나가야 할 길이라면 그 고통은 역사의 비료가 될 것”이라며 개방으로 인한 피해를 ‘전체’를 위한 ‘일부’의 희생으로 몰면서 ‘고통을 감수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한겨레·경향, 협상 문제점 지적
반면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이번 협상의 문제점을 지적해 차이를 보였다.
한겨레신문은 이번 협상이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많다’며 한미FTA에 대한 국회비준 동의에서 국회의원들이 실익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설 <한-미 FTA 타결안 그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타결안은 걱정했던 대로 얻은 것은 별로 없고 미국 요구가 대부분 관철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며 “국익을 우선하겠다는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결안에 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자동차, 섬유, 무역구제 등은 ‘실익’이 없었고, 대신 협정 체결 대가로 쇠고기와 농산물, 문화산업, 투자자-국가 소송제, 제약 부문에서는 너무 많이 내줬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사설은 한미FTA가 “서비스와 제도를 개혁하고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 세계 10위권 이내의 경제대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취지”였다며 “이번 협상 결과가 그런 도약의 계기가 될지 의문”이라고 애초 협상 목표를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또 다른 사설 <역사적 책임, 국회 어깨에 놓였다>에서는 국회의원들에게 “양국 의회의 비준을 통과해 정식 발효되면 무려 백 가지가 넘는 국내법을 고쳐야 할 정도”라며 국가 운영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만큼 국회가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을 다루는 데서 “역사적 책임의식을 무겁게 느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한·미 FTA 협상의 타결 이후>에서 협상과정과 내용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사설은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은 이유가 개방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의 무분별한 개방의 결과로 양극화 등 갈등 구조가 더 심화하고 고용 없는 성장의 가속화로 성장의 지속가능성이 저해되고 있는” 때문이라며 “이를 ‘쇄국이냐 개방이냐’의 이분법적 선택 논리로 몰아붙이는 것은 상황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한미FTA 찬양 주장들을 꼬집었다.
이어 한미FTA 체결 내용이 “많은 부분이 농민과 의약품 소비자 등 국민생활과 밀접하고 취약계층의 부담을 늘리는 것들”이고 “투자자 국가소송제나 쇠고기 검역완화, 자동차 세제개편 등은 상당 부분 관련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향후 있을 다른 국가들과의 FTA 협상에서도 선례가 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도 “이번 협상과 같은 국가적 비상상황에서 정치권이 뒷짐을 지고 있었던 것은 국민의 대표로서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며 “우선 협상 과정과 내용을 국민 앞에 숨김없이 공개하고, 국회는 협상에 따른 경제·사회적 득실과 분야별 영향을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낱낱이 검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미FTA가 체결 이후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보수신문이 보여준 ‘찬양’ 일변도의 행태는 참으로 낯 뜨거운 수준이다. 이들 신문은 협상 체결의 문제점은 꼼꼼하게 지적하지 않은 채, 한미FTA 체결에 따른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노 대통령을 추켜세우는데 급급했다. 심지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협상의 성공 여부는 ‘우리하기에 달렸다’며 협상 내용의 본질적 문제를 흐렸다. 이것은 ‘FTA 찬반’을 떠나 최소한의 균형감각을 상실한 태도다. 도대체 한미FTA 체결 과정의 졸속성과 균형상실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이 이들 신문에게는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우리는 참여정부가 밀어붙인 졸속협상의 결과에 대해 국회의 비준 거부를 촉구한다. 수구보수언론의 ‘FTA 찬양’에 현혹되어 한미FTA의 실체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책무다. <끝>
2007년 4월 3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