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재경부의 ‘한-싱가포르FTA 발효이후 경제교류 동향’ 관련 동아·중앙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3.2)
‘퍼주기 협상’은 안보이고 ‘재경부 통계놀음’만 보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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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8차 협상을 앞두고 재정경제부가 ‘한-싱가포르 FTA 체결 후 무역흑자가 급증했다’는 발표를 내놓자 일부 수구보수신문들이 반색하고 나섰다. 이들은 재정경제부 발표를 무비판적으로 부각하는가 하면 한미FTA도 같은 효과를 낼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지난 1일 재경부는 ‘한-싱가포르 FTA 발효이후 경제교류 동향’이라는 자료에서 대 싱가포르 무역수지 흑자가 FTA 발효 이전에 비해 56.2%나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한-싱가포르 FTA 발효 전 10개월(2005년 5월-2006년 2월)의 수출액 67억5700만 달러에 비해 이후 10개월(2006년 3월-12월) 동안의 수출액이 81억200만 달러로 19.9% 증가한 반면 수입액은 FTA 발효 전 47억 3400만 달러에서 발효 후 49억 4300만 달러로 4.4% 느는데 그쳤다는 것이다.
그러나 싱가포르와의 FTA체결로 무역수지 흑자가 늘었다고 해서 미국과의 FTA도 국익에 기여할 것이라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미국은 경제 규모, 외교력 등 모든 면에서 싱가포르와는 완전히 다른 협상 상대이다.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협상 내용에서도 차이가 있다. 한-싱가포르 FTA에서는 개성공단 생산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았고, 무역구제 분야에서도 ‘제로잉 금지’와 ‘최소부과 원칙’이 포함되는 등 한국 측에 어느 정도의 ‘실익’이 보장되었다. 반면 한미FTA의 경우 한국 정부는 자신들이 ‘핵심’으로 내세웠던 요구사항들을 하나씩 포기하면서 미국의 요구는 다 들어주는 ‘퍼주기 협상’ 행태를 보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싱가포르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가 늘어난 것이 FTA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지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인터넷신문 <이데일리>에 따르면 대 싱가포르 수출이 늘어난 데에는 싱가포르의 경제호황(2006년 실질GDP증가율 7.9%)과 반도체와 철강, 선박 등의 수출이 급증했기 때문이며, 오히려 무역흑자 증가 폭은 FTA 체결 이전에 비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싱가포르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 증가 폭을 연간으로 따져보면 2006년 무역수지 흑자 증가폭은 전년 대비 72.3%가 증가했지만, 2005년 증가율에 비해 2.9%포인트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한-싱가포르 FTA가 체결되기 전인 2005년 대 싱가포르 무역수지 흑자는 20억9000만달러로 전년대비 75.2% 증가했고, 2004년에는 11억9300만달러로 전년대비 118.5%나 급증하기도 했다. 대 싱가포르 수출 증가율도 2006년에는 28.1%가 증가했지만, 2005년에는 전년도 대비 31%로 증가폭이 더 컸다.
그럼에도 일부 수구보수신문들은 재경부의 발표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부각했는데, 특히 동아일보는 재경부 발표를 한미FTA와 연결시켜 협상을 체결하기만 하면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얻을 것처럼 호도하고, FTA체결에 반대하는 것은 국가발전에 역행하는 행위인 양 매도했다.
2일 동아일보는 4면 <FTA의 힘>과 사설 <FTA반대를 ‘진보’라고 우기는 수구 좌파>에서 재경부의 주장을 다뤘다. <FTA의 힘>에서는 “한국-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싱가포르에 대한 한국의 수출이 크게 늘고 대 싱가포르 무역흑자도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FTA 체결’의 ‘성과’를 부각했다.
사설 <FTA반대를 ‘진보’라고 우기는 수구 좌파>에서는 한 술 더 떠 한-싱가포르 FTA를 근거로 한미FTA 체결을 종용하고 나섰다. 사설은 재경부가 발표한 한국-싱가포르 FTA 수치를 들먹이며 “세계 제1의 경제대국 미국과 FTA를 맺으면 다른 FTA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마디로 교역과 개방을 통해 국력을 키우고 민생을 살찌울 수 있다”며 ‘한미FTA’를 체결하기만 하면 ‘한-싱가포르 FTA’처럼 큰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FTA반대는 역사 발전과 변화에 역행하려는 수구좌파의 퇴행적 행태”라며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해서라도 FTA를 적극 활용해 해당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타 산업에서의 고용 기회를 늘려 국가의 부를 축적함으로써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대안 없는 반대는 이들을 빈곤 상태에 묶어두거나 더 가난하게 만드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한미FTA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을 비난했다. 이어 “미 의회의 무역촉진권한(TPA) 기한에 맞추려면 이달 말이 사실상 협상시한”이라며 “근거 없는 반대 주장이나 불법 시위에 더는 끌려 다닐 여유가 없다”고 ‘묻지마 타결’을 종용했다.
중앙일보도 e2면 <무역흑자 32억 달러…56% 늘어/수입액 4.4%↑ 수출액은 20%↑>에서 “한·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FTA) 발표 이후 한국의 대싱가포르 무역흑자 규모가 크게 늘어났다”며 재경부 발표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보도했다.
한미FTA 8차 협상을 앞두고 재경부가 ‘대 싱가포르 무역수지 흑자’를 발표한 의도가 무엇인지는 뻔하다. 한미FTA의 장밋빛 미래를 내세워 협상을 강행했지만 국민들에게 내놓을 협상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못해 ‘퍼주기’, ‘쪽박’ 등의 평가를 받고 있으니 교묘한 ‘통계 놀음’을 통해 ‘FTA=국익’으로 현실을 호도하는 것 외에는 국민을 설득할 별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태로는 한미FTA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발을 결코 누그러뜨릴 수 없으며,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도 없다. 협상의 진실이 알려질수록 참여정부의 졸속·굴욕협상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지금 국익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선택은 ‘퍼주기 협상’을 중단하는 일임을 참여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동아일보를 비롯한 수구보수신문들에게도 경고한다.
한미FTA체결이 한국의 국익을 증진시키는 길이라고 주장하려면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협상의 구체적인 ‘손익계산서’부터 제시하라. 엉뚱한 자료를 끌어다 한미FTA 체결을 주장하거나 “세계 제1의 경제대국 미국과 FTA를 맺으면 다른 FTA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따위의 막연한 주장은 오히려 한미FTA 협상의 빈곤한 내용을 반증해줄 뿐이다. <끝>
2007년 3월 2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