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27일 열린우리당·한나라당의 사학법 등 회기 내 처리 합의 관련 방송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2.28)
백년대계를 망가뜨리는데, ‘단순전달’만 할텐가
- 한나라당의 ‘사학법 무력화’ 시도, 제대로 보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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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원내대표 및 정책위의장 연석회의를 열어 사학법과 주택법 등을 이번 임시국회 회기 내에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이 ‘합의’는 열린우리당이 사학법의 핵심 조항이었던 개방형 이사제 추천과 관련해 ‘종단’을 개방형 이사 추천 주체로 추가하는 ‘양보안’을 내놓은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학교운영위원회와 대학평의회로 되어있는 개방형 이사 추천 주체 조항에 ‘등’자를 추가해 종단 뿐 아니라 동창회, 학부모 등으로 넓히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양 당의 ‘협의’ 과정에서 개정 사학법이 얼마나 더 개악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볼 때 열린우리당의 양보안만으로도 개정 사학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개방형 이사제 도입의 취지는 심각하게 훼손되는 것이다. 이 안에 따르면 학교운영위원회(또는 대학평의회)가 추천하는 개방형 이사는 전체 이사의 1/8로 줄어들고 종교 사학재단은 기존 이사와 차별성이 없는 이사를 한 명 더 추가할 수 있다.
이조차 거부하고 개방형이사의 추천 주체를 무한대로 넓히자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사학재단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개방형 이사를 임명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개방형 이사제의 무력화’, ‘개정 사학법의 무력화’를 의미한다.
개정 사학법의 취지는 사학재단의 전횡을 막고, 사학의 투명한 운영을 보장하는 데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온갖 왜곡된 주장을 펴면서 사학재단의 기득권을 옹호하고, 국회를 파행으로 몰아왔다. 그리고 이런 한나라당의 ‘생떼’에 대해 정부여당은 무기력한 모습만 보이다가 결국 스스로 ‘개악안’을 내놓고 한나라당과 ‘협상’을 시도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그러나 사학법을 둘러싼 이와 같은 정치권의 파행적인 행보에 대한 방송보도는 참으로 실망스럽다. 방송들은 누가 사학법을 정치쟁점으로 만들어 국회를 파행으로 이끌었는지, 그들의 요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등 ‘개정 사학법 흔들기’의 본질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못했다.
27일 방송 3사의 관련 보도들은 정치권의 사학법 개악 시도에 대해 ‘회기 내 처리합의’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으며, 쟁점 사안을 ‘양당의 이견’으로 간단히 전하는 데 그쳤다. 반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내놓고 있는 개악안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개악안을 적용했을 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사학법 개악을 주택법 통과와 연결시켜 이른바 ‘빅딜’을 저울질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무비판적으로 다뤘다.
27일 KBS <회기 내 처리 합의>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1년이 넘게 끌어온 사학법을 비롯한 주택법 등 민생법안을 2월 회기안에 일괄처리하기로 했다”며 양당의 합의 사실을 전했다.
이 보도는 “이념과 노선 때문에 고칠 수 없다는 고답적 자세를 보이는 것이 국민 입장에서 우려”된다는 김형오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발언만을 인터뷰로 내보냈다. 그의 이런 주장은 그동안 사학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국회를 파행으로 몰아간 한나라당의 무책임한 행태를 합리화하는 한편, 여당이 ‘이념과 노선 때문에 고쳐야 할 사학법을 고집하는 것’이라고 사태를 호도하는 것이다. 방송보도가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한나라당의 일방적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내보낸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이 보도는 “합의에서 배제된 통합신당모임과 민주노동당 등은 밀실야합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어 민생법안 처리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해, 마치 통합신당모임과 민주노동당이 사학법 개악을 반대해서 ‘민생법안’ 처리가 지연될 것처럼 표현하기도 했다.
MBC <일괄처리 합의>도 두 당의 합의 내용을 간단히 전하고, “사학법 개정문안을 놓고 절충에 들어갔다”며 열린우리당 안과 한나라당 요구를 전했다.
이어 양당의 ‘빅딜’ 배경이 “한나라당으로서는 민생법안 처리가 지연될 경우 제1당으로서 비판에 직면할 것이고 열린우리당도 산적한 정부추진법안을 관철해야 한다는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하고 “양당 지도부가 타협에 이르더라도 당내 반발은 물론 민노당이나 통합신당모임의 반대도 만만치 않아 최종 타결까지는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전하는 데 그쳤다.
SBS는 <쟁점법안 처리 합의>에서 “사립학교법과 주택법,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팽팽히 맞서온 대표적인 법안인데, 앞으로 일주일 남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두 당의 ‘합의’에만 주목했다.
이 보도는 이날 처리하기로 한 법안을 나열한 후 사학법과 관련해 열린우리당이 내놓은 안을 소개하고, 주택법에 대한 양당의 이견차를 간단히 보도했다.
이어 “회기 중에 마무리하겠다는 뜻이지 사학법과 또 다른 법안의 빅딜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빅딜’을 부정하는 김충환 한나라당 공보부대표의 인터뷰를 내보내고, 열린우리당 교육위원들이 사학법 재개정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혀 “협상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데 그쳤다.
그동안 사학재단의 전횡과 비리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그로 인해 학생과 학부모들이 당한 피해가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런 폐단을 견제할 최소한의 장치조차 없었다. 개정 사학법의 개방형 이사제는 사학재단의 전횡에 대응한 최소한의 견제장치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개정사학법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정치권이 사학법을 개악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우리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사학법 개악에 대한 야합 행태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백년지대계인 교육 문제는 정치적 흥정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국민들이 안겨준 과반 의석의 힘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채 한나라당의 횡포에 휘둘리더니, 국민 대다수가 지지하는 ‘주택법’조차 강력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한나라당의 ‘협조’를 구하겠다며 개정사학법 무력화 요구를 받아주려 하고 있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이것으로도 부족해 자신들의 요구를 한 치의 양보 없이 관철시키겠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방송 보도들이 사학법 문제를 ‘여야 공방’의 차원에서만 다루는 것은 교육정책에 대한 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다. 사학법의 본질에 대한 ‘상식적 판단’이 있다면 사학재단-한나라당-수구보수신문들의 ‘사학법 무력화’ 시도를 비판적으로 다뤄야 한다. ‘공방보도’로 그치기에는 사학법이 갖는 의미가 너무나 무겁다. 최소한 교육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무엇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인지를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다뤄주기 바란다. <끝>
2007년 2월 28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