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노무현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방통융합’ 관련 발언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1.25)
방송민주화의 성과까지 망가뜨리겠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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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방송통신융합의 조속한 추진’을 강조하면서 방송과 방송통신융합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우리는 ‘방송’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하면서, 한편으로는 참담하고 한편으로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은 방송통신융합기구 설치법의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며 “대통령의 방통위원 임명권이 문제라면 그 부분은 국회에서 시행시기를 다음정권부터 적용하도록 해도 할 수 있다”, “(방통융합기구는)국가의 행정작용이기 때문에 국가행정작용의 해당되는 것은 합의제관청을 두더라도 그것은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책임지는 정부에 속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방통위 설치법에 반대해 온 방송위원회를 겨냥해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고 정통성에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도 불투명한 기관이 책임 없이 이런 일들을 표류시켜서는 안 된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밝혀왔듯 우리가 현재의 방통위 설치법을 반대한 이유는 ‘위원구성의 방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방통위원회 설치의 가장 큰 원칙은 방송통신 영역의 공적 가치를 보호할 수 있는 독립적인 합의제행정기구이다. 그러나 국무조정실이 밀어붙여 만든 현행 법안은 이 같은 원칙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경제 관료들이 장악한 독임제 부처에 방송통신 관련 모든 정책권을 부여하는 안’이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와 언론단체들이 반대하는 것이다.
“방통위원 임명이 문제라면 다음 정권부터 적용해도 된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그가 시민사회가 현행 법안을 반대하는 이유조차 파악하지 못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에 의한 방송통신위원회 구성’을 반대한 것이 아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방송통신위원회가 독립성을 보장받고 방송통신의 공적 가치를 지키면서 정책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국조실 법안에 반대했다.
따라서 ‘다음 정권’ 운운한 대통령의 발언은 자신이 ‘정략적 의도’가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시민사회의 뜻을 폄훼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방송위원회를 ‘정통성이 불분명한 기구’로 폄훼하면서 방송통신위원회가 사실상의 정부 부처로 설치돼야 한다는 발언은 더욱 충격적이다.
대통령은 정말 방송위원회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단 말인가? 방송위원회는 참여정부와 ‘뿌리’가 같은 국민의 정부 시절 ‘방송개혁위원회’라는 사회적 논의 절차를 밟아 어렵사리 제정된 방송법에 근거해 만들어진 기구다. 좀 더 큰 틀에서 보면 우리 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킨 결과로 획득한 ‘방송정책결정과정의 민주화’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정파적 나눠먹기’의 측면이 있고 이로 인한 비효율성 등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지만, 고도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하는 방송정책을 행정부처가 아닌 합의제기구에 맡긴다는 근본 취지는 결코 훼손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와 같은 방송위원회의 근본 취지와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민주주의의 성과를 폄훼하는 발언을 했으니 그야말로 ‘제 발등찍기’다. 또 ‘합의제행정기구’는 합의제의 취지를 살리되 광의의 정부 기구로 책임성을 갖는다. “대통령이 책임지는 정부에 속하게 해서” 여타의 행정 부처처럼 지휘·통제 하겠다는 대통령의 생각은 방송통신의 특수성을 외면하는 것이며, 정권에 의한 방송통신장악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방송위원회가 방송통신위원회로 개편되더라도 합의제 기구로서의 근본은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방송위원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은 합의제 기구의 근본정신을 지키는 틀 안에서 극복해가야지 그 틀 자체를 깨버린다면 국민의 정부 아래 어렵게 만든 민주화의 성과를 참여정부가 망치는 셈이다.
대통령은 “방송통신융합산업이 날개를 달고 훨훨 국제경쟁에 날아갈 수 있도록 해주자”, “방송계에서도 너무 방송의 주도권, 방송의 논리만 너무 내세우지 말고 해결하자”는 요지의 발언도 했다는데 이 역시 본말이 전도됐다.
방송통신융합의 목표는 ‘산업적 경쟁력 강화’만이 아니다. 기술발달이 가져온 방송과 통신의 융합 상황에서 산업적인 경쟁력을 키우면서도, 방송과 통신의 공공성을 지키고 공적 서비스가 위축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방송통신융합 논의가 오직 산업 경쟁력 강화의 논리로 전개된다면 방송통신 영역에서 거대자본들이 이윤추구를 위해 각축을 벌이는 데 정부가 들러리 서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는 민주적 논의 절차가 배제된 채 성장논리가 관철되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거듭 확인해 왔다. 참여정부가 내세운 BT산업 육성의 결과나 한미FTA의 중간 결과는 섣부르고 일방적인 성장논리의 참담한 사례들이다. 방송통신융합 정책마저 충분하고 민주적인 논의 없이 밀어붙인다면 시민사회와 언론계의 거센 저항만 초래할 뿐이다.
지금 방송통신위 설치 법안은 국회로 넘어가 방송통신융합특별위원회의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방송통신융합 논의를 가장 효과적으로 앞당길 수 있는 방법은 대통령의 독촉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 과정을 충분히 거치는 일이다. ‘졸속’과 ‘강행’이야말로 부작용과 비효율의 다른 이름이다.
한편, 대통령은 “정 생각이 다르면 국회에서 다른 방법으로 하더라도 이 법을 빨리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통령의 말대로 우리는 ‘국회에서 다른 방법으로’ 이 법안이 처리되기 바란다. 우리는 국회에서 민주적 여론수렴을 통해 합리적인 법안을 만드는 것이야 말로 법안 처리를 서두르는 가장 좋은 ‘다른 방법’이라고 본다.
이미 우리 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언론단체들이 일정하게 공감하고 있는 대안들이 있는 만큼 국회가 민주적 절차를 제대로 밟아간다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희망하는 개선의 방향은 방송위원회 구성에서 국회 추천 몫을 보장해 최소한의 국민 대표성을 반영하고, 우정업무 등 방통위원회의 불필요한 기능은 배제하되 합의제 행정기구로서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 등이다.
아울러 방통위 설치 논의가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가는 다른 한 편에서 ‘방송의 무료보편적 서비스 제고’를 비롯한 방송통신융합의 큰 원칙과 방향이 사회적으로 합의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노 대통령이 ‘방송통신융합을 서둘러야 한다’는 조급증에 사로잡혀 더 이상의 무리수를 쓰지 않기를 바란다. 아울러 방송 및 방송위원회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드러내는 섣부른 발언은 시민사회와 언론계의 반발만 초래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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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25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