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19일 동아일보 기사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1.19)
동아일보는 미국의 ‘축산신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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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과 미국이 ‘뼛조각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위해 ‘비밀협상’을 가졌다고 한다.
1월 17일자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맥스 보커스 상원 재무위원장을 비롯한 6명 이상의 미 상원의원들과 이태식 주미한국대사가 워싱턴에서 ‘비밀회의’를 진행했고, 협상 이후 보커스 의원은 기자들에게 “한국의 고위급과 협의된 쇠고기 협상 관련 ‘기술적인 해결 방안’을 새롭게 제안하는 동시에 이에 대해 신속히 조치하겠다고 말했다”며 회의결과에 대해 ‘고무적(encouraging)’ 또는 ‘긍정적’ 이었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광우병 위험 쇠고기’의 수입검역과 관련된 사안을 ‘비밀’리에 해결하려 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그것도 공공연하게 ‘뼈까지 수입하라’고 주장하는 미국의 정치인들을 주무부처인 농림부도 아닌 주미한국대사가 만났다는 점에서도 어처구니가 없다. 도대체 쇠고기 수입검역 조건을 얼마나 양보하려고 애초 예정되었던 ‘한미 쇠고기 검역에 대한 기술협의’가 아닌 ‘비밀협상’을 택한 것인가?
상황이 이런데도 동아일보는 정부의 ‘비밀협상’을 두둔하며 노골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를 앞장서서 주장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19일 2면 <“현대차 한 대라도 하자 땐 전량 반송”>이라는 제목으로 이태식 주미한국대사와 미국 상원의원들의 ‘비밀협상’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기사는 이 대사와 미 상원의원들의 ‘비밀협상’을 ‘의회 초청’으로 포장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미국 의원들은 “2003년 12월 불거진 광우병 파동 이전 상황, 즉 LA갈비처럼 뼈가 붙은 고기까지 수입하던 ‘이전 상태’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으며 “뼈 포함 여부나 소의 나이와 무관하게 수입이 재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FTA를 지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동아일보는 “AFP통신은 이 발언을 ‘(11인의)최후통첩’이라고 묘사했다”면서 미 의원들의 주장을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무비판적으로 전했다.
뿐만 아니라 이 기사는 한국의 철저한 검수절차에 대해서는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한 워싱턴 소식통”의 발언을 인용해 ‘국제관행’을 거스르는 잘못된 행동이었던 것처럼 몰았다. 기사는 이 소식통이 “한국의 주장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담긴 ‘무리한 문구해석’과 다름없다”며 “뼈 없는 쇠고기란 뼈를 떼어냈다(boneless)는 의미인 만큼 뼛조각이 ‘한 조각도 없다(bone free)’라는 뜻으로 무리하게 해석해 국제관행에 어긋나게 하지 말라”고 “은연중 촉구하는 뜻”을 비쳤다고 전했다.
또 바이런 도건 상원의원이 ‘비공개 석상’에서 “현대자동차 수입물량인 70만 대의 안전성을 전수 조사한 뒤 한 대라도 문제가 있으면 전량 반송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격앙된 미 의회의 기류를 반영한 발언”이라고 무비판적으로 다뤘다.
한발 더 나아가 동아일보는 ‘정치적 타협’을 통해 ‘광우병 위험 쇠고기’의 수입을 재개하라며 촉구하기도 했다.
기사는 “분명한 것은 한국 정부의 주무부처 차원에서 협상을 타개하기엔 사안이 너무 커졌다는 점”이라며 “워싱턴에서도 ‘결국 행정(관료)보다 정치(정치지도자)의 힘을 통해 풀 사안’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면서 사실상 고위층의 협상을 통해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한다는 뜻을 비쳤다.
이어 “그러나 한국 정치권에서 ‘국제관행에 부합하는 이성적 협상’을 거론하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배경에 반미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데다 ‘위험할 수 있는데 수입하자는 말이냐’는 반론까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함으로써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재개 하는 것이 ‘이성적 태도’인 양 호도하기도 했다.
기사 말미에도 ‘한 소식통’의 말을 빌어 “정치인에게 ‘국제관행을 따르자’는 의견 표명은 당장 표 손실로 이어지겠지만, 한국 사회도 이성을 되찾고 꼼꼼히 따져 본다면 국제협상의 합리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며 쇠고기 수입에 정치인들이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거듭 말하지만 미국산 쇠고기가 반송된 것은 한국의 책임이 아니다. 한국 측은 ‘30개월 미만의 뼈 없는 살코기’라는 애초 양국의 합의에 따르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발견된 ‘뼛조각’의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한국 측의 검수를 문제 삼고, 한미FTA의 공식 의제도 아닌 쇠고기 수입 문제를 끌어들여 압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태도는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다. 아직도 동물성 사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광우병 검사도 0.1%의 쇠고기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위험한 미국산 쇠고기를 어떻게 검수조차 제대로 하지 말고 사먹으란 말인가? 3차 검역분에서는 인체에 해로운 발암물질인 ‘다이옥신’까지 다량으로 검출되지 않았는가?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부당한 압력과 정부의 ‘비밀 협상’을 비판하기는커녕 미국의 요구를 ‘이성적인 태도’로 들어주라는 동아일보는 또 뭔가? 동아일보에게는 미국의 횡포보다, 한국 정부가 ‘광우병 위험 쇠고기’의 수입재개를 비밀리에 협상했다는 사실보다, 미국 국회의원들의 ‘격앙된 기류’가 더 중요하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비밀협상’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뼈까지 수입하라’, ‘현대자동차도 전수조사 해 한 대라도 문제 있으면 전량 반송하라’ 운운하는 미국 정치인들의 압박을 당연한 것처럼 보도할 수 있나? 동아일보는 자동차와 쇠고기를 비교하는 이런 황당 주장이 그럴듯해 보인단 말인가?
우리는 그동안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재개에 발 벗고 나서 온 수구보수신문들의 행태를 비판하며 최소한 국민건강에 미칠 영향이라도 생각하고 보도하라고 충고해 왔다. 그러나 ‘비밀협상’도 아랑곳 않고 미국 국회의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동아일보를 보니 네브래스카나 몬태나 주(州)의 ‘축산신문’이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다. 동아일보의 정체는 무엇인가?
아울러 우리는 ‘비밀협상’으로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면서까지 무지막지하게 한미FTA를 밀어붙이는 정부에 대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참여정부는 ‘비밀협상’에서 도대체 무슨 ‘거래’가 오갔는지 명명백백 밝혀야 할 것이다. 만약 정부가 국민의 건강까지 아랑곳 하지 않고 미국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한미FTA를 구걸했다면 시민사회의 거센 저항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끝>
2007년 1월 19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