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16일 노무현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7.1.18)
‘수구언론의 흔들기’와 ‘비판적 보도’는 구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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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언론을 강력 비판하며 외교부와 국정홍보처에 ‘각국의 기자실 운영과 기사 획일화 및 담합 실태’에 대한 조사를 지시해 논란을 빚었다.
이날 노 대통령은 15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가비전 2030 건강 투자 전략’에 대한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어제 TV에 나올 때는 단지 그냥 ‘출산 비용 지원’ ‘대선용 의심’ 이런 수준으로 폄훼하고 말았다”, “참 한심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기자실이란 것이 이런 기사를 획일화하는 부작용이 있다”, “그냥 몇몇 기자들이 딱 죽치고 앉아 기사의 흐름을 주도해 나가고 만들어 나가는, 있는 것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고 보도자료들을 자기들이 가공하고 만들어 나가고 담합한다”며 각국의 실태조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해 보건복지부 출입 기자들은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고, 결국 17일 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초청 오찬에서 기자실을 ‘죽치고 앉아 담합하는 곳’으로 평가한 데 대해 “사례가 부적절했다”며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
노 대통령이 유감의 뜻을 나타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통령의 이번 발언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거친 표현으로 언론을 비판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불만이 완전히 근거 없는 것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참여정부 집권 초부터 수구보수신문들은 개혁정책 흔들기, 악의적인 왜곡을 저질러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번 ‘담합 발언’은 수구보수신문들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구보수신문에 대한 누적된 불신이 언론 전반에 대한 불만으로 바뀌어 객관적 근거를 상실한 채 표출된 것이다.
과거 노 대통령의 언론 비판이 주로 일부 신문들의 개혁정책 흔들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이번 발언은 정부 정책을 ‘정부의 뜻대로’ 보도해주지 않는 데 대한 감정적 불만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구체적으로 거론된 불만의 대상도 방송보도였다. 우리는 “담합”이라는 표현이 나온 배경에 ‘수구보수신문 뿐 아니라 방송도 다를 것이 없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울러 대통령이 방송보도에 대해서 이런 인식을 갖게 된 이유가 일부 방송프로그램들이 한미FTA를 비판적으로 다룸으로써 여론의 향배를 바꿔 놓은 데 대한 불만 때문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만약 우리의 판단이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하고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대통령과 참여정부 인사들이 정부 정책을 ‘흔드는 것’과 ‘비판하는 것’을 혼동하고, 정당한 언론의 문제제기까지 흔들기로 몰아간다면 스스로 내세워온 권력과 언론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부정하는 셈이다. 게다가 참여정부는 한미FTA를 놓고 수구보수신문들로부터 비판은커녕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 아닌가? 참여정부가 언론의 ‘흔들기’와 ‘비판’을 혼동하는 데서 나아가 혹여 두 가지를 뒤집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것이다.
우리가 비판해 온 수구보수신문들의 개혁정책 흔들기는 ‘정략적 목적에 따른 사실 왜곡과 편파 보도’를 통해 이뤄진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객관적 사실을 꼼꼼하게 살펴보지도 않고 자신들의 정치적 목표 달성에 대한 유불리만으로 언론 보도를 비판한다면 수구보수신문들의 행태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
노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정책에 대한 언론 보도를 “담합”으로 표현했지만 주요 언론보도들을 꼼꼼하게 살펴봤다면 이런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16일 신문들은 <태아 양수검사서 노인 치매까지/정부, 평생 건강관리 해준다><연령별 건강 설계 도움…재원 마련이 숙제>(중앙일보), <아동·청소년·노인 등 생애주기별 건강투자/출산전 필수검사 전액 무상><예산 4년간 1조…또 ‘담뱃값 인상’ 타령>(경향신문), <임신서 출산까지 국가가 무상지원?>(동아일보), <복지부 “내년 임심부터 출산까지 무상지원”>(한겨레신문), <‘임신-출산’ 필수 의료비 무상 지원/예산조달 계획 없어 선심성 논란>(조선일보) 등의 관련 기사를 실었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은 ‘국민건강 증진’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고, 다른 세 신문은 ‘임신·출산 정책’에 초점을 맞췄다. 또 모든 신문들이 재원 조달 문제를 지적했지만 ‘대선용’으로 폄훼하지는 않았다.
방송의 경우 3사 모두 ‘임신·출산 정책’에 초점을 맞췄지만, SBS는 “담뱃값 인상을 추진하기 위해 장밋빛 청사진만 제시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고 했으며, KBS와 MBC는 ‘대선용 선심성 정책이라는 지적이 있다’고 문제점을 보도했다.
이 정도의 보도를 두고 ‘기자실 담합’, ‘획일화’라는 것은 무리하고 섣부른 평가다. 우리는 도대체 대통령이 언론 보도에 대한 최소한의 객관적 판단조차 하지 못하고 모든 언론을 싸잡아 불신하게 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각국의 기자실 운영과 기사 획일화 실태’까지 조사하라고 나선 것도 매우 부적절한 처사다. 정부 정책에 대해 언론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언론들이 비슷한 문제제기를 했다고 다른 나라의 기사 획일화 실태를 조사하라고 나선 것은 언론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용렬함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우리는 참여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수구보수신문의 개혁 정책 흔들기는 ‘상수(常數)’로 놓고,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데 매진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것이 수구보수신문의 부당한 흔들기를 무력화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수구보수신문과 겉으로는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실제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는 번번이 그들의 흔들기에 발목 잡혔고, 한미FTA와 같은 핵심적인 현안에 대해서는 수구보수신문들과 입장을 같이 하더니 마침내 어떤 언론을 대상으로, 어떤 내용에 대해 맞서야 하는지 조차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헤매는 형국이 되었다.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지금이라도 자신들의 대 언론 행보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객관적으로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언론에 문제가 많다고 해서 모든 것을 언론의 탓으로 돌리고 섣불리 감정적 불만을 표출해서는 지금의 난국을 풀 수 없다. <끝>
2007년 1월 1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