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반FTA 시위자 구속 영장 기각」관련 주요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12.14)
조중동, ‘구속수사 남발’ 조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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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법원은 지난 6일 ‘한미FTA 저지 제3차 범국민 총궐기’ 시위 과정에서 연행된 7명에 대해 검찰이 낸 구속 영장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영장 기각 이유로 “시위 과정에서 폭력에 가담한 정도가 중하다는 부분에서 ‘중한 가담’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고, (함께 검거된 나머지 12명과 비교해)구속 여부를 가를 정도로 큰 차이가 없어 형평에 반할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수구보수신문들은 법원의 결정에 대한 검찰의 반발을 부각하면서 법원의 영장 기각을 비난하고 나섰다.
가장 거세게 반발한 신문은 중앙일보다.
중앙일보는 13일자 1면에 <“죽봉 안 나왔다고 기각하다니”/ “불법 폭력시위 조장할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구속 영장이 기각된 7명을 제멋대로 ‘시위주동자’로 단정하고, “법원의 영장 기각이 폭력시위를 엄단해야 한다는 국민의 법 감정을 외면했다”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영장 기각을 비난하는 평화시위연대의 성명과 일부 학자의 발언, 네티즌 의견들을 자세하게 전달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안을 법원·검찰의 ‘영장 갈등’이 재연된 것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반면 법원의 영장 기각 이유에 대해서는 기사 말미에 간단히 언급하는데 그쳤다.
같은 날 사설 <불법시위 관대한 법원, 누가 법치 세우나>는 영장이 기각된 7명이 경찰에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붙잡힌 ‘현행범’이고, 이들 중 4명은 집시법 위반 등의 전과가 있다며 “그럼에도 법원은 증거 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없다고 했으니 불법 시위에 대한 구속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다그쳤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법원이 영장을 기각한 이유가 단지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이들이 폭력시위를 했다는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쏙 빼버렸다.
동아일보도 기사와 사설을 통해 검찰의 반발을 전하며 구속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13일 14면 <反FTA 시위 7명 영장기각/ 검찰 반발 “증거보완 재청구”>에서 법원의 결정에 대해 검찰이 “영장 재청구 방침을 밝히는 등 반박하고 나섰다”고 전했다. 이어 <사법부가 엄정해야 시위문화 바꿀 수 있다>는 사설에서 구속영장 기각 이유로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것만을 간단히 언급하는데 그쳤다.
또 영장이 기각된 사람들이 “차로를 점거한 채 과격 시위를 벌이다가 현장에서 체포됐다”, “진압 경찰의 헬멧을 뺏는 등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이 카메라에 채증”되었다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영장 기각의 부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법원의 영장 기각이 “‘사법의 예방기능’을 소홀히 본 것 같아 유감”이라며 “사법부가 ‘소수에 의한 법질서 파괴와 다수의 피해’를 가볍게 여긴다면 누구를 위한 사법부인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질타했다.
조선일보는 13일자 10면 <법원, 反FTA 폭력 주동자 7명 영장기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법원의 결정에 대해 “검찰이 재청구 방침을 밝히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며 “올 들어 불법·폭력 시위대에 대한 구속영장이 2건에 1건 꼴로 기각되고 있는 추세여서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검찰은 “7명 중 상당수가 시위 전력이 있거나 유사한 사례로 처벌 받은 전과가 있어 영장 발부 조건을 충족했는데도 법원이 기각했다고 반박”하고 있으며, 한 검찰 관계자가 “특히 상습적인 집시법 위반 사범에 대해서도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지키는 것은 불법 시위를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발언을 기사 말미에 붙여 검찰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한편 조선일보도 영장이 기각된 7명을 ‘시위 주동자’라고 규정했다.
경향신문은 13일 10면 <FTA시위자 7명 영장기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는데,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영장기각을 둘러싼 검찰과 법원 갈등이 재점화될 조짐”이라며 법원과 검찰간의 ‘영장갈등’ 차원으로 접근했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13일자 8면 <시위자 구속에 목매는 수사기관들>이라는 기사에서 법원의 영장 기각은 “검·경의 무리한 구속 요구에 법원이 제동을 건 셈”이라고 평가하고, 검찰의 구속수사 관행이 “불구속 재판의 원칙은 온데간데없이, 인신 구속을 불법집회 예방 수단쯤으로 여기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수구보수신문들은 영장이 기각된 7명이 ‘폭력시위’를 한 것으로 기정사실화 하거나 ‘시위주동자’로 몰면서 이들에 대한 구속 수사를 주장하고, 그래야만 ‘폭력시위’를 근절할 수 있는 것처럼 법원을 질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제시한 혐의는 단지 미신고집회 참가, 일반교통방해, 특수공무집행방해(다중의 위력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였을 뿐 이들의 ‘폭력’을 휘둘렀다는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들은 연행 당시 각목이나 쇠파이프를 소지하고 있지 않았고, 대부분이 차로가 아닌 인도에서 연행돼 검찰도 ‘폭력시위’의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정도의 혐의가 ‘구속’ 사유가 된다는 검찰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
또 영장이 기각된 7명이 과거에 집시법 위반 전력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 수사를 진행해야한다는 주장도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훼손하는 위험한 주장이며, 이들이 지방의원 보좌관, 시민단체 활동가, 학생 등 신분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구속 수사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들을 구속하는 것은 미신고집회의 책임을 집회 주최자가 아닌 단순 참가자들에게 지운다는 측면에서도 무리가 따른다.
뿐만 아니라 집회를 철저히 봉쇄하고 시위자들을 ‘엄단’하면 폭력시위를 근절할 수 있다는 논리야 말로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는 무책임한 주장이다. 거듭 지적하지만 어떤 집회나 시위가 격렬해지는 것은 그 주장이 합리적으로 소통되고 수용될 제도적 공간이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간과하고 ‘불법시위 엄단’, ‘구속수사’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일부 신문들의 태도는 ‘불법시위’를 근절하기는커녕 분노만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
그동안 검찰의 구속수사를 남발은 개선이 필요한 대표적인 법조계 관행으로 꼽혀왔다. 따라서 엄정한 잣대에 따라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의 결정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일부 신문들이 이를 두고 ‘불법시위에 관대하다’고 몰아가는 것은 이들 신문의 사고체계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조직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법원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법원도 ‘불법시위’의 증거를 인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부 신문들은 무엇을 근거로 영장이 기각된 7명에 대해 폭력시위를 단정하고, ‘시위주동자’로 몰아가는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함부로 피의자의 혐의를 단정하고 여론재판을 시도하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부 신문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끝>
2006년 12월 14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