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민주노총·한국노총 집회 불허' 관련 동아·중앙·한겨레신문 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11.8)
동아·중앙, 민주노총 밉다고 기본권까지 뺏자는 말인가
-'기본권제약' 주장, 언론이 할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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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경찰청은 오는 12일과 25일로 예정되어 있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집회를 불허한다고 밝혔다. '교통 혼잡'이 우려된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자 일부 신문들이 경찰청의 조치를 "환영"하고 나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도심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을 때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은 집회를 여는 측이나 경찰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통 혼잡'과 같은 이유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기 시작하면 민주주의의 근간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군가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불편을 겪거나 권리와 권리가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런 경우 어떤 권리를 우선하여 보호할 것인가 하는 기준은 특정 집단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보편적 원리와 그것을 명시해 놓은 헌법이 되어야 한다.
집회·결사의 자유는 우리 헌법(21조 1항)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며, 민주주의 국가라면 예외 없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언론을 통해 반영되지 않을 때 누구나 이 권리를 적극 행사함으로써 자신들의 주장을 표출할 수 있다. 물론 그 주장이 민주주의 가치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통 혼잡'이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약한다면 앞으로 어떤 종류의 집회라도 이 정도의 근거로 제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교통 혼잡'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피해를 국민 누구나 겪게 된다.
지금 우리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은 다양한 이유로 각종 집회와 시위를 벌이고 있고, 누구나 집회와 시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주장에 동의하느냐 동의하지 않느냐를 떠나 타인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것은 결국 '나의 권리'를 보장받는 일이 된다.
우리는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상식'을 경찰과 일부 언론들에게 말해야 한다는 현실 자체가 안타깝다. 특히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신장시키기 위해 앞장서야 할 언론이 시민의 표현의 자유를 위축하는 경찰의 결정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동아일보는 7일 <경찰이 오죽하면 노동단체 도심시위 불허할까>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사설은 "서울 도심이 각종 집회시위로 인한 무법 무질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돼 다행스럽다", "늦었지만 경찰의 이번 집회 불허를 환영한다"면서 "행여 양대 노총이 당일 집회를 강행하려 한다면 경찰은 단호한 공권력 행사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고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또 경찰이 "관련법에 의해 집회 금지는 물론 불법 시위자의 현장 체포, 무기사용 등 폭넓은 권한이 주어졌으나 거의 쓰지 않았다", "'무석무탄'이나 여성 경찰관 전면 배치 등과 같은 '포용정책'에 매달려 있는 듯한 인상"이라며 그동안의 대응 방식을 질책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도 8일 사설 <도심 집회 불허, 늦었지만 잘했다>에서 비슷한 주장을 폈다.
중앙일보는 "노무현 정부 들어 도로·거리 시위가 부적 늘면서 주말이면 서울 도심은 각종 대규모 시위로 난리법석이고, 교통지옥으로 변하기 일쑤"였다며 "서울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혼란 공화국'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사회에선 누구나 집회하고 시위할 권리가 있다"면서도 "다른 시민에게 폐해를 끼쳐선 안된다"는 논리를 폈다.
더 나아가 사설은 "경찰이 뒤늦게 정신 차린 것 같지만, 시작에 불과하다. 지방에서도 같은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시위금지 조치 확대를 요구했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8일 사설 <집회 자유가 교통 편의에 우선한다>에서 경찰의 집회금지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신문은 경찰의 이번 조치에 대해 "민주주의의 기본 권리인 집회의 자유보다 주말의 교통 소통이 더 중요하는 소리"라며 "참으로 한심하고 천박한 인식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이 자유롭게 집회를 열 권리는 경찰의 자의적 판단으로 제약해도 될 만큼 하찮은 것이 아니다"라며 "경찰은 정당한 대회 개최의 권리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집회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언론의 자유를 대체·보완하는 권리"라며 "언론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자신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이들이 집회를 벌이는 건 언론의 자유만큼이나 존중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본권을 제약하는 경찰의 결정을 환영하는 동아일보와 중앙일보의 행태야말로 그들이 입만 열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언론 자유'의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 신문이 민주노총을 얼마나 '적대시'하는지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들이 반대하고 비판하는 집단의 권리조차 옹호해주는 것이 진짜 민주주의이며, 그 권리가 침해받았을 때 함께 싸워주는 것이 민주사회의 언론이 할 일이다. 백번 양보해 이들 신문이 시위로 인한 교통체증과 시민불편을 우려하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교통체증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거나 주최 측의 노력을 당부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집회의 권리 자체를 제약하자고 나서서는 안된다. 민주주의는 때로 불편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그 근본 취지를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경찰의 집회 금지를 환영하기에 앞서 자신들의 주장이 민주사회에서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노동자 등 집단들의 요구 표출을 공권력으로 제약했을 때 그 부작용은 또 얼마나 심각할지부터 따져보기 바란다.
아울러 그동안 자신들이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들, 사회적 약자들의 주장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보도해주었는지도 되돌아보기 바란다.
<끝>
2006년 11월 8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