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주요 신문의 ‘남북경협에 대한 미국고위관리 발언’ 관련 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10.19)
경협중단 요구하는 조선·동아,
내정간섭 시도하는 네오콘과 코드맞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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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 고위관리들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 사업에 대해 잇따라 부정적 의견을 쏟아내면서 우리 정부의 대북 압박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7일 크리스토퍼 힐 국무차관보는 기자들에게 “개성공단 사업은 북한 개혁 측면에서 이해하지만 금강산관광 사업은 그만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사견임을 전제로 “개성공단은 인적자본을 대상으로 한 장기투자를 위해 고안된 것 같고, 금강산관광은 그보다는 북한 정부 관계자들에게 돈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고 발언했다. 18일에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까지 나서 “금강산 관광사업과 개성공단사업을 더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송민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실장은 18일 브리핑에서 “운용방식이 유엔 안보리 결의나 국제사회 요구와 조화되고 부합하도록 필요한 부분을 조정 검토할 것”이라고 ‘조정’의사를 밝히면서 “한국이 결정을 하는 거지 다른 나라가 이것을 이렇게 저렇게 적용해야 된다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미국 관료들의 요구에 선을 그었다.
남북경협에 대한 미국 고위관리들의 발언은 남북경협을 대북 압박의 수단으로 삼기 위해 ‘동맹국’에 대해 외교적 무례도 서슴지 않는 처사다.
남북경협은 그동안 실질적인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 냈으며,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 이 시점에서 남북경협 사업마저 중단하는 것은 북한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음으로써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미국의 대북압박 정책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해 실패로 드러났다.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북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은 ‘대화’라며 부시 행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미국이 진정으로 사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남북경협을 꼬투리 잡을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책부터 점검 할 일이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 사업을 문제 삼는 이유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확대를 압박하기 위한 ‘카드’라고 분석하고 있다. 미국은 대북압박을 위해 ‘경협중단’과 ‘PSI참여확대’라는 꽃놀이패를 들고 한국 정부에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눈에는 동맹국에게 대한 미국 고위 관료들의 부당한 압박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보수 신문은 이들의 발언에 ‘호기’라도 잡은 듯 송민순 실장의 발언을 비난하고, 금강산 관광 등 남북경협사업 중단을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의 압박 무조건 수용하라는 조선·동아”
조선일보는 금강산 관광비용의 ‘군사비 전용’을 기정사실화 하며 중단을 주장했다. 또한 송민순 실장의 발언을 꼬투리잡아 왜곡하는 데 급급했다.
19일 사설 <금강산 관광을 국가 존립과 바꿀 수는 없다>에서 조선일보는 금강산 관광 비용을 받는 ‘아태평화위원회’가 “북한 노동당 대남사업부서인 통일전선부 산하조직이고, 노동당이 받은 돈은 통상 김정일 비자금을 담당하는 ‘38?39호실’에서 관리한다”며 “선군정치 속에서 핵무기 개발에 사활을 걸어온 김정일이 그 돈을 과연 어디에 썼겠는가는 물어보나마나”라고 자신들의 추정을 기정사실화했다.
조선일보는 19일 또다른 사설 <청와대 사람들, 도대체 제정신이 박혔나>에서 송 실장의 발언을 비난했다. 송 실장은 “국가의 탄생과 생존의 역사에서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전쟁을 한 나라이고, 전쟁이 날 때 가장 큰 피해자는 안보구조의 부조리에 처해 있는 우리 한국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을 잘 조화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한다. 북핵사태로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한미간에 조율을 잘 해나가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송 실장의 이 발언을 “이 정권 사람들은 ‘미국은 전쟁광 나라인 만큼 괜히 전쟁에 말려들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또한 송 실장이 “북한이 협상을 통한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말로만 해도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움직일 수 있다”고 발언했다며 “북한은 실제 핵을 포기하지 않고 그저 협상장에 나와서 시늉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모르고 제재를 당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송 실장은 “북한의 행동이 아닌 말 하나에도 부시 행정부의 정책은 움직일 수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해, 북한의 태도변화를 촉구한 것으로 읽힌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송실장이 “북한의 안전은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교류협력을 많이 하는 데 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북한을 못 친다. 미국이 칠 수 있겠느냐”며 적극적으로 남북교류에 임하라고 주문한 발언마저도 “북한에 핵 포기를 당당한 논리로 설득하는 대신 대한민국을 방패막이로 이용할 꾀를 일러준다는 말”이라고 해석했다. 자신들의 맘에 들지 않는 발언은 무조건 비뚤어지게 해석하는 조선일보의 ‘능력’이 참으로 놀랍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사설 <핵실험은 북이 했는데 노정권은 미국과 맞서니>에서 미국의 부당한 압력을 당연시 하며 우리 정부를 공격하고 나섰다.
동아일보는 라이스 장관과 힐 차관보의 발언에 대해 “동맹의 ‘과실(果實)’만 따먹고 북에 뒷돈 대며 국제 공조를 흔드는 행동을 계속하려면 ‘안보버스’에서 내리라고 한국 정부에 통고한 셈”이라며 당연한 요구처럼 받아들였다. 이어 구체적 근거조차 제시하지 않은 채 “관광수입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용될 수 있다”는 미국의 항의가 “점차 사실로 드러났다”며 ‘관광수입=무기전용’을 기정사실화 했다.
나아가 동아일보는 “노무현 정부는 핵실험까지 한 김정일 집단을 감싸지 못해 안달”, “DJ 정부의 계승 세력을 넘어 한 술 더 뜨는 형국” 등 색깔론까지 동원해 한국 정부를 비난한 후, “한국 정부가 국제 공조를 깨뜨리면서까지 북을 위해 독자행동을 하겠다는 판국에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한국을 지키기 위해 무조건 피를 흘리겠는가”, “국제 공조 정신을 훼손하는 행위를 삼가야 한다”고 미국의 부당한 압력을 순순히 받아들이라는 식의 주장을 폈다.
한겨레·경향, 미국의 외교 결례 비판
반면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미국의 외교적 결례를 지적했다. 특히 한겨레는 남북경협사업을 지속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겨레신문은 19일 사설 <미국의 그릇된 금강산관광·개성공단 공격>에서 미국의 주장이 “그릇된 인식에 기초한 월권적 태도”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경협을 통해 북한으로 가는 돈이 핵 개발에 쓰였다는 주장은 북한의 모든 대외 경제관계를 봉쇄해 붕괴시켜야 한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며 “이것은 외교가 아니라 군사적 대결로 이어질 수 있는 전주곡”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대북 경협은 북한을 대화로 불러내는 지렛대가 될 수 있지만, 중단할 경우 우리 손실은 큰 반면 제재 효과는 거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북한이 플루토늄을 본격적으로 재처리 한 것이 2003년 초라며 “돈보다는 미국이 만들어준 명분이 핵 개발에 쓰인 것”이라고 꼬집으면서 “미국이 지금 대북 경협사업의 조정 또는 중단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는 데는 자국의 정책 실패를 호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안보리 결의와 미국의 조급증>에서 “우방국 사이에 정책 협의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업무 협의 이상의 압력 행사는 안보리 결의 정신을 명백히 위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미국 고위관리들은 줄세우기식 발언으로 사실상 스스로 그토록 거부하고 있는 양자구도를 조장하고 있다”며 미국이 ‘자가당착’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경향은 “각국이 상호 존중을 전제로 진지하게 협의할 때 평화적 북핵 해결이 한층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라이스 장관이 새삼 기억해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PSI참여확대나 경협중단과 같은 대북제재 강화는 지금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미국은 한국 정부에 둘 중에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는 식의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런 부당한 압력에 대해 조선·동아일보는 한 마디 비판은커녕 이들의 주장을 당연한 요구인 양 적극 옹호하며 포용정책과 남북경협 비난에 활용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미국 정부의 압력마저도 한국 정부가 수용해야 한다는 이들 신문의 주장은 ‘북한 핵실험에 대한 대처’와 남북경협을 별개로 생각하는 국민들의 인식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난 14~15일 진행된 내일신문과 한길리서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 등에 대해 61.8%가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고 한다. 대북포용정책에 대해서도 ‘방향 유지하되 일부 수정’이 73%로 포용정책의 폐기를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이른바 ‘메이저신문’이라는 조선·동아일보가 국민 일반의 정서조차 따라가지 못한 채 오직 미국 관료들의 입만 쳐다보고, 그들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념을 떠나 최소한 ‘메이저 신문’이라면 그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고 신중하게 처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조선·동아의 행태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한국 사회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이 미국을 등에 업고 정적이나 공격하겠다는 천박함의 극치다.
<끝>
2006년 10월 19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