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주요 신문의 ‘북한 핵무기 보유’ 오보 및 사과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
등록 2013.08.2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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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북 핵무기 오보’,
확실한 재발방지책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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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주요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른바 ‘강석주 핵무기 발언’이 오보로 밝혀져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대부분의 신문들은 <강석주 “북외교는 추락하는 토끼”>(동아 1면), <“북미관계 사망…건설적 길 되돌아갈 희망 없어”>(동아 3면), <북 강석주 “핵무기 5~6개 보유”>(경향 1면), <“강석주 외무성 부상 7월 평양 공관장회의서 북 핵무기 5~6개 보유 발언”>(중앙 4면), <“북, 핵무기 5~6개 이상 보유”>(조선 6면), <강석주, 핵무기 5~6개 보유 비쳐>(한겨레 2면)에서 북한 외무성 강석주 제1부상이 지난 7월 평양에서 열린 재외공관장회의에서 ‘북한이 현재 5~6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발언 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들 신문은 미 중앙정보국과 국무부 정보조사국에서 오랫동안 북한을 담당했던 로버트 칼린이 이 같은 내용을 입수해 14일 브루킹스연구소 학술대회에서 언급하고, 미국 노틸러스 연구소 홈페이지에 게재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칼린의 글 원문은 ‘창작한 글’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어 신문들이 어이없는 오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 부상의 발언’을 최초로 보도했던 연합뉴스는 25일 새벽 뒤늦게 ‘이 보도를 전면 취소한다’고 밝혔으며, 대부분의 신문들은 오늘(26일) 지면에 사과문을 실었다. 


이번 오보 사고는 우리 신문들의 잘못된 관행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에도 북한 관련 보도에 있어 일부 신문들의 ‘미국발’ 정보 의존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들은 미국 정부의 ‘익명의 관계자’, ‘고위 관계자’, ‘전직 관료’, ‘전문가’ 등의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쓰기해 왔으며, 때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에 맞는 인물을 골라서, 입맛에 맞는 발언을 부각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보도행태는 당연히 통일·외교·안보 분야 보도의 질을 저하시키고 언론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18일 우리 단체가 주최한 국제 심포지움에 참석했던 크리스토퍼 넬슨씨는 미국의 대외 정책 결정자, 전문가 등이 한국 언론의 보도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부끄러운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또 함께 방한했던 스티브 코스텔로씨는 ‘노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방미 중에 폴슨 재무장관을 만나 대북금융제재를 풀어달라고 부탁 했나 안했나’를 놓고 한국의 보수신문들이 청와대와 이태식 주미대사 사이의 ‘진실게임’ 양상으로 대서특필한 데 대해 “헨리 폴슨은 미국의 대외 정책을 바꾸는 데 어떤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는 인물”이라며 “그와의 대화 내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미국 관료의 권력 실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언론들이 한반도 평화와 직결된 남북문제, 미국의 대북 정책을 다루는 데 있어서 철저한 사실 확인 능력, 정보의 진위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시각, 그리고 신뢰할만한 취재원을 분간할 수 있는 전문성 등에서 얼마나 취약한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오보를 낸 신문들은 26일 사과문을 실으면서도 이번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자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결과적 오보’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막판까지 기사의 진의를 확인하려고 노력했으나 마감시간에 쫓겨 기사를 실었다는 변명도 실었다. 심지어 동아일보는 “최고의 북한 분석가가 쓴 상당히 진지한 글”, “서울과 평양에서 진지하게 읽어야 할 글”이라는 노틸러스 연구소 헤이스 국장의 언급을 소개하며 비록 오보였지만 그 취지는 정당했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들 신문의 변명은 구차하기 짝이 없다.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면 기사화해서 안된다는 것이 기사작성의 기본임을 모른단 말인가?


더욱이 이 보도 내용이 미칠 파장을 생각했다면 더욱 신중했어야 했다. ‘북이 핵무기를 5~6개가 갖고 있다’는 내용을 사실 확인도 미처 끝내지 못한 채, 다른 언론이 실었다고 마감시간에 쫓겨 그대로 보도했다는 것이 어떻게 면피가 될 수 있는가. 


진보적인 성향의 일부 신문 역시 오보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다른 언론들이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기준으로 진위가 의심스러운 기사를 싣는다면 수구보수언론들의 의제설정에서 자유로워지기 어렵다. 이번 오보 사고를 계기로 수구보수언론의 대북 관련 보도와는 차별화된 독자적인 의제설정과 외신 보도에 대한 사실 확인 시스템, 신뢰할 만한 정보원 확보 등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끝>

 


2006년 9월 26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