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포항지역 건설노조 파업 관련 주요 신문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7.20)
여론몰이만 판치는 '포스코보도', 사태 악화시킨다
.................................................................................................................................................
포항지역 건설노조의 파업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노조원들이 13일부터 포스코 본사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자 경찰은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 포스코 사측은 단전조치까지 취하는 등 대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정부도 '불법을 엄단하겠다'면서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 대부분의 신문들은 예의 이번 파업 사태를 '노조의 폭력성', '파업으로 인한 피해'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이런 신문만 본다면 독자들은 노조가 왜 파업에 나서게 되었는지, 왜 원청업체인 포스코 본사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게 되었는지, 노조의 요구 사항이 무엇이며 그것이 얼마나 합당한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가 없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벌어질 때마다 반복되는 신문들의 이 같은 보도 행태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데 일조한다는 점을 거듭 지적해왔다. 대부분의 신문들은 노동자들이 '점거농성', '폭력시위'와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할 때까지 노동자들의 처지와 요구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다가 사태가 악화되면 드러나는 '현상'을 전하는 데에만 몰두해 왔다.
이런 보도 경향은 자신들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사회적 수단이 없는 노동자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 사태를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일 뿐 아니라 언론이 민감한 사회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사실보도도 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그동안 신문들이 파업보도에 있어 노동자들의 요구를 꼼꼼하게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사측이 입을 '피해'만 부각하는 것은 편파보도의 전형으로 끊임없이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조선, 중앙, 동아일보 등 수구보수 신문들은 포항 건설노조의 '폭력성'을 집중 부각하면서 사측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나아가 정부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며 더욱 강경한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14일 <억류 직원 600명 10시간만에 풀려나>, 15일 <포스코 포항본사 업무 올스톱> 기사를 통해 "포스코 직원들의 출근을 저지하면서 본사업무가 전면 중단", "차세대 신제철 공법을 적용한 파이넥스 공장등 20여개 공장의 건설 전면 중단, 지연", "외부인 출입 전면 차단한 채 바리케이드·쇠파이프·각목·소화전 등으로 무장", "경찰과 대치 교통 늦게까지 마비" 등 점거농성으로 인한 '피해'와 노조의 '과격함'을 집중 부각했다.
19일 <건설노조 장기파업…속타는 포스코> 기사를 통해서도 "세계 철강업계에서 포스코의 위상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주요 프로젝트들이 노조 파업에 발목이 잡힌 셈"이라는 포스코 관계자의 말을 그대로 전하며 다시 한번 '피해'를 강조했다.
18일 사설 <노조, 포항에선 불법시위, 울산에선 배부른 투정>에서는 노조가 "노사교섭 대상도 아닌 포스코 본사로 밀고 들어갔다"며 "법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하청업체 직원들의 임금 복지 문제까지 공사를 발주한 원청업체더러 책임지라는 불법요구를 하고 있다"고 노조를 비난했다. 또한 노조원 "17일 하루에만 350명이 포스코 농성장을 이탈"했다며 노조의 농성이 흔들리는 것으로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포항 건설노조 비난에 앞장을 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은 14일 <포항 포스코 본사 점거 농성>이라는 제목으로 "포스코 직원 600여명 한때 감금 당했다", "왜 3자인 발주사서 농성하나" 등 포스코 사측의 입장을 부각시켜 보도했다.
이어 15일 <포스코 본사 마비>라는 기사에서도 "본사 행정업무 마비", "건물 곳곳에 설치된 폐쇄회로 TV를 테이프로 막고 건축용 쇠파이프 각목을 준비하는 등 공권력 투입에 대비" 등 노조의 '폭력성'을 강조했다.
이날 사설 <억지와 생떼, 자해공갈식 노동운동>은 "경제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가운데 일부 노조의 무분별한 행태가 도를 더하고 있다", "억지와 생떼, 회사를 갉아먹는 자해공갈식 노동운동 행태가 불식되지 않으면 노조의 고립과 노사의 공멸을 부를 뿐"이라는 등의 주장으로 노조를 비난했다.
또 17일 기사 <포스코 "노사분규 한번도 없었는데…">에서는 "노조의 점거농성 동안 하루 100억원씩 손실이 나고 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짓고 있는 파이넥스 공장건설이 당장 중단", "대외 신인도 하락" 등 역시 포스코 측의 피해를 강조했다. 18일 <노조원들 사제 화염방사기로 저항-'포스코 농성' 장기화 조짐>에서도 노조원들의 '폭력성'을 집중 부각했다.
19일에는 포항 건설노조 측에 더 강한 비난을 퍼부었다. 1면 <"불법점거로 포항 경제 타격" 시민 1만명, 농성 중단 촉구> 기사를 통해 '파업중단'을 촉구한 '포항 경제살리기 범시민 궐기대회' 참가자들의 인터뷰와 농성으로 인한 '업무 마비'를 더욱 강조하며 정부의 '늦은 대처'를 비난했다. 이어 <쇠파이프에 끓는 물까지…> 라는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원인을 분석했지만 역시 '노조 탓'과 '늦장 대응 정부책임', '경제적 손실'만을 강조했다. 이날 사설 <7일째 포철 불법점거, 공권력은 어디 갔나>에서는 노조의 폭력행위를 강조하며 "이런 나라를 법치국가로 볼 수 있는가", "정부가 이렇게 노조에 무르게 대응을 하니 외국자본이 노조 때문에 한국에 오지 않는 것이다", "항상 뒤에서 불법과 적당히 타협해 마무리 지어왔던 정부 행태를 노조가 잘 알기 때문에 공권력에 권위가 없는 것이다"며 강경한 공권력 투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역시 14일 <직원 500여명 한때 억류>라는 제목으로 노조의 '직원 감금', '파이넥스 공장 건립 차질', '하루 100억 원가량의 피해 발생' 등을 보도하며 경찰이 노조원의 진입을 막지 못한 것을 비난했다.
15일 사설 <이런 노조, 세계 어디에 또 있는지 대 보라>에서는 "소속 건설사들과 임금 인상을 놓고 단체 협상을 벌이다 결렬되자 발주업체의 직원들을 가뒀다"며 상황을 호도한 뒤 "법도 윤리도 무시하는 막가파식 투쟁"이라며 노조를 비난했다.
이날 <남해고속도 한밤 마비> 기사에서도 14일 밤 전문건설노조 지원농성에 나선 타 지역노조를 막는 경찰과 노조 사이에 한밤 고속도로 대치가 빚어져 "심각한 정체를 빚었다", "농성으로 포스코 본사 업무가 전면 마비됐다"고 피해상황만을 보도했다.
17일 <일촉즉발>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는 "무작정 불법 점거농성을 방관할 수 없다"는 경찰 측의 입장과 함께 "이번 사태로 포항 경제가 위축되고 지역 이미지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며 파업반대 집회를 연 포항상공회의소 등의 입장을 전했다. 같은 날 <농성 장기화...포스코 피해 '눈덩이'> 기사에서도 "노조원들의 파업과 포스코 본사 점거 사태로 포스코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파이넥스 공장건설 중단"으로 인한 "대외 신인도 하락"을 우려했다.
이어 18일에는 <포스코 본사 농성 이탈자 늘어>를 통해 노조원들의 '동요'를 전했으며, 19일 <포스코 "타협없다" 농성장 단전> 기사에서는 전기공급이 중단된 농성장의 분위기를 전하며 "철수하지 않으면 더는 협상 할 수 없다"는 포스코 측 목소리를 대변해주었다.
한편 경향신문은 15일 전문건설노조의 포스코 본사 점거 이유를 짧게 언급했지만 15일 <검·경, 지도부 검거나서> 기사에서 "업무에 막대한 지장", "쇠파이프나 각목으로 무장", "포스코의 최근 건설노조의 파업으로 하루 1백억원씩, 지금까지 1천4백여억원의 피해 발생" 등 파업으로 인한 피해규모를 주요하게 보도했다. 다만 민노총 포항시협의회의 "포스코가 사태해결의 당사자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실어 노조 측의 목소리를 전했을 뿐이다.
18일에는 '포스코 점거사태 전말과 전망'에 대한 분석기사 <전문건설노조 '고립무원'>을 내놓아 현 노사 대립상황을 비교적 자세하게 전했지만 포스코 측의 입장을 주로 전달해 아쉬웠다. 19일 <포스코 '단전'…강제진압 임박> 기사에서도 주로 포스코 측과 경찰 측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19일 사설 <급기야 정부가 나선 포스코 점거농성>에서 경향은 노조 측의 '불법행동'을 비판하면서도 "왜 이런 잘못된 상황이 벌어지게 됐는지 그 배경을 뜯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노조의 점거농성이 포스코 측의 대체인력 투입 시도를 막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상황이라는 점, 공권력 투입을 통한 강제 해산의 위험성 등을 지적하고 노사의 교섭을 촉구해 다른 신문들과 다소 차이를 보였다.
한겨레는 비교적 자세하게 이번 파업과 점거시위가 발생한 원인과 대책을 제시했다.
15일 기획기사 <꽉 막힌 사회 대화가 없다>에서는 "간접고용된 노동자들이 일터문제로 사용자와 대화하려 해도, 현행법상 원청업체는 이들과 대화할 의무가 없다"며 "형식상의 고용자인 하청업체와 마주앉지만 실권이 없어 소통의 성과가 날 리 없다"고 하청업체와 노동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협상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했다.
또 17일 <포스코 점거 장기화 조짐> 기사에서는 '농성 장기화 및 점거배경'과 '노사협상 쟁점'을 상세하게 분석·보도했다.
18일 <"뺑뺑이 단협·밑바닥 처우가 투쟁 불렀다">에서도 노조가 왜 '극한 투쟁'에 나섰는지 그 이유를 자세하게 분석하며 "단체협상 때마다 사용자 쪽인 전문건설업체가 상위 원청사인 포스코 건설에, 포스코 건설은 발주처인 포스코 핑계를 대고, 포스코는 다시 사용자인 전문건설업체와 얘기를 하라는 식으로 노조에 '뺑뺑이'를 시켜 온 것"과 "비정규직 일용노동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이번 사태의 한 원인으로 분석했다.
아울러 이날 사설 <건설노동자 사태, 포스코가 중재력 발휘해야>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한 언론의 편향된 보도경향을 지적하고 "과격한 투쟁방식을 탓하기에 앞서 이런 극단의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 수 있는 포스코가 중재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해야 한다"며 포스코 측이 사태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19일 <"자진해산뒤 교섭주선" 노조는 "명분부터 달라"> 기사에서도 '노조가 토요 유급휴무제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이유' 등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정부와 포스코 측에 해결방안을 제시하며 일관되게 '근본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포항 건설노조의 파업과 점거농성은 근본적으로 '다단계 하도급 문제로 야기된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에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파업의 본질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채 노동자들은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15일과 16일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노동자가 다치고, 그 중 1명은 경찰이 휘두른 방패에 머리가 찍혀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고 한다. 또 일주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건물에는 에어컨과 환풍기 가동이 중지되고 음식 반입도 안 된다. 정부도 18일 5개 장관 담화문을 통해 자진해산할 경우 정부가 교섭을 주선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강경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언론의 일방적인 '폭력성' 부각 보도는 파업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
조선, 중앙, 동아 등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포항 건설노조의 협상 대상은 '법적으로' 포스코가 아니라 포스코의 하청을 받는 전문건설업체이다. 하지만 다단계 하도급이 판을 치는 건설업계에서 원청업체가 나서지 않으면 하청업체는 사실상 해결능력이 없음은 널리 알려진 바다.
포스코의 경우도 발주하는 공사가 '포스코건설'을 거쳐 하청 업체까지 내려가면 공사비는 설계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이 같은 저가 하도급 구조는 건설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 신문이 건설업계의 구조적인 문제와 하청업체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제대로 전하지 않은 채 무조건 노조를 비난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인 비판이라고 할 수 없다.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포스코 내 플랜트작업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로 구성된 포항 건설노조는 사용자 측인 전문건설협회에 법정 노동시간(8시간) 요구와 임단협 교섭을 요구했으나 건설사업주들은 300여명의 토목노동자들을 부당해고 시키고 도급계약을 내세워 교섭을 거부해왔다고 한다. 결국 지난 6월 24일부터 목공철근분회 중심으로 파업을 진행해오던 포항 건설노조는 지난 7월 1일 '주5일 근무(토요일 유급휴무)', '시공참여자 폐지', '임금인상 15%'를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갔다.
식당, 휴게실과 같은 복리시설도 변변히 갖춰져 있는 않고, 높은 산재 위험 속에서 장시간 일하는 이들 노동자들의 임금은 월평균 180여 만 원 수준이라고 한다. 여기에 건설업체들이 주장하는 '무급 주 5일제'를 실시할 경우 이 정도의 임금도 받을 수 없다는 게 노동자들의 절박한 주장이다. 따라서 신문들이 무조건 노동자들의 파업을 비난하기에 앞서 '토요일 유급휴무', '임금인상 15%' 등의 요구가 무리한 것인지를 객관적으로 따져보는 것이 상식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조선, 중앙, 동아 등 일부 신문들이 노동자들의 권리를 옹호해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들의 알권리 차원에서만 판단하더라도 이들 신문의 보도 태도는 상식 밖이다. 파업의 근본 원인을 따져보지 않은 채 사측의 입장만 대변하고 공권력의 진압을 부추기는 태도는 국민들이 파업을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포스코와 정부가 강경 일변도의 태도로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 말 것을 촉구한다. 포스코가 건설노조의 요구에 대해 '법적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문제를 풀 수 없다. 노동자들이 왜곡된 하도급구조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주 기업으로서 '법' 이전에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을 갖고 노동자들과 대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정부도 '자진해산', '불법엄단'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건설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근로조건 개선'이라는 문제를 노사가 평화적 방법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 노사 관계의 악화는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지언정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끝>
2006년 7월 20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