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시청자 권리 박탈하고 '월드컵 올인'한 지상파방송 3사 규탄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논평(2006.6.13)
등록 2013.08.2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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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무시한 '월드컵 올인'이 지상파 위기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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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독일월드컵이 개막되면서 지상파 방송3사의 시청자 권리를 침해하는 '월드컵 올인'이 그야말로 '광적'인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방송3사는 월드컵 개막식을 비롯한 거의 모든 경기를 동시 중계하고 있다. 개막전 '독일-코스타리카' 경기부터 6월 12일 새벽(한국시간)까지 열린 월드컵 조별예선 8경기 가운데 11일 '네덜란드-세르비아' 경기를 제외한 7경기가 방송3사에서 동시 중계됐다.
그나마 '네덜란드-세르비아' 경기가 동시 중계되지 않은 이유는 MBC와 SBS가 10일 토요일 월드컵 중계로 불방한 주말 드라마를 11일 일요일에 몰아서 방송하면서 KBS만 중계를 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송3사의 파행적인 '동시중계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채널이 두개인 KBS는 월드컵 64경기 모두를 생중계하겠다고 밝혔으며, MBC와 SBS도 모든 경기를 생중계 또는 녹화중계 하겠다는 방침이다. 방송3사가 대부분의 경기를 동시중계 하는 과정에서 정규편성 프로그램의 '불방' 사태도 이어질 전망이다.
지상파 3사의 중계 경쟁은 정규방송 시간을 넘어 새벽시간까지 이어지고 있다. 방송사들은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를 아예 월드컵 경기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어 놓고 새벽까지 같은 경기를 동시중계 하고 있는데, 새벽 경기의 경우 한 채널당 시청률이 5%도 되지 않는다. 12일 새벽 4시에 열린 '아르헨티나-코트디부아르' 경기는 MBC, SBS, KBS의 시청률이 각각 2.2%, 1.2%, 1.0%로 나타나 모두 합쳐 5%도 되지 않는 시청률을 보였다. 한마디로 '전파낭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방송사들이 월드컵 경기 중계에만 열을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각종 특집 프로그램, 정규 프로그램의 '월드컵 특집' 등을 제작 편성해 방송 전체를 '월드컵 방송'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각 방송사의 메인뉴스프로그램도 넘치는 월드컵 보도로 '스포츠 뉴스'와 구별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월드컵 개막일 직전부터는 아예 주요 앵커와 상당수의 기자들이 독일에서 리포팅을 하고 있다.
또 월드컵 개막 이후 첫 휴일인 10∼11일 동안 드라마 몇 편을 제외하고는 월드컵과 무관한 프로그램을 찾을 수가 없었다. 거의 모든 오락프로그램은 '월드컵 특집'으로 편성돼 '붉은악마' 옷차림을 한 출연자들이 월드컵을 주제로 잡다한 이야기를 쏟아 내거나 게임을 했다.
MBC는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무한도전>과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월드컵 특집'으로 전환한 지 오래고 SBS 역시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일요일이 좋다-X맨>을 지난주부터 '월드컵 특집'으로 독일에서 제작해 방송하고 있다.
KBS는 9일 방송된 <해피투게더 프렌즈>에서 월드컵 중계 해설위원을 맡은 유상철씨를 출연시켜 친구를 찾는 모습을 보여줬고, 11일 <해피선데이> '여걸식스'에서도 유상철씨를 '여걸'들의 '축구감독'으로 출연시켜 월드컵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은 물론 자사 해설위원 '띄우기'에도 적극 나섰다.
방송사들의 파행적인 '월드컵 경쟁'은 오락프로그램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MBC와 SBS는 각각 자사 월드컵 중계 해설자로 나선 차범근씨와 황선홍씨와 관련해 특집다큐멘터리 <독일의 코레아너, 차붐>, <황선홍, 지치지 않는 투혼>을 방송해 자사 홍보에 나섰다.
이외에도 웬만한 교양 프로그램은 거의 월드컵과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간판 시사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까지도 월드컵 띄우기에 이용당하고 있다. 특히 KBS는 간판 다큐프로그램인 <KBS스페셜> 10일 방송분을 아드보카트 감독이 실험중인 수비형태인 포백라인을 분석하는 '포백은 성공할 것인가'로 편성했고, 지난 7일에는 대표적인 고발프로그램인 <추적 60분>조차 '2006 월드컵 D-3, 대표팀 30일간의 기록'에서 시시콜콜한 대표팀의 일상을 쫓아다니는 보도를 내보내는가하면 대표팀 숙소에서 무리한 취재를 벌이다 선수단의 항의를 받는 등 물의를 빚기까지 했다.
이처럼 월드컵 특수를 통한 광고수익 극대화에 사활을 건 방송사들의 경쟁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월드컵 외의 다른 프로그램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 공공의 재산인 전파와 전력이 낭비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현안들이 월드컵에 파묻혀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으며, 방송사 종사자들은 그들대로 소모적인 월드컵 중계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우려를 너머 탄식이 절로 나는 상황이다.


방송사들의 파행적인 '월드컵 올인'은 우리 대표팀의 첫 경기가 열리는 13일 정점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13일 오후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24시간 동안 방송3사 편성표를 보면 거의 모든 프로그램 제목 앞에 '2006 독일월드컵 특집'이란 말이 붙어 있다. 게다가 대표팀의 승리 여부에 따라 언제든 편성이 바뀔 수 있다니 우리나라의 지상파방송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시청자들은 안중에도 없이 편의에 따라 '제멋대로' 방송할 수 있게 되었는지 분노를 넘어 허탈감까지 느끼게 된다.
돈벌이를 위해 월드컵에 '올인'하며 '월드컵만 보라'고 강요하는 우리 지상파 방송사들의 행태가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가는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금방 드러난다.
외국의 지상파방송들은 한 경기를 여러 방송사가 동시에 중계하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경기는 말할 것도 없고 자국의 경기조차도 순서를 지정해 방송사들이 돌아가며 중계한다고 한다. 월드컵 개최국인 독일조차 같은 경기를 동시에 중계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없고, 자국팀의 경기였던 개막전도 독일 공영방송인 ZDF에서만 중계했다.


우리는 이번 2006 독일월드컵을 전후로 한국 사회에 불고 있는 월드컵 열기가 비정상적인 형태로 흘러가고 있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흐름을 공적 책임을 팽개친 지상파방송사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더 큰 심각성을 느낀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서 거대한 '거리축제'로 승화되었던 2002년 월드컵과 달리 지금의 '월드컵 열기'는 월드컵을 마케팅 수단으로 삼아 한몫 챙기려는 대기업들과 거대 지상파방송들의 '합작'에 의해 상업적으로 오염되고 있고, 시민들은 수동적 객체로 전락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눈과 귀를 월드컵에 잡아둠으로써 여타의 중요한 사회 의제들이 실종되어버리는 상황은 월드컵이 끝난 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실의 과제들에 맞닥뜨리게 될 우리 모두를 허탈감에 빠뜨릴 수 있다.
우리 단체는 지난 6일 발표한 논평을 통해 "방송사들이 '월드컵 특수'를 잡기 위한 과열 경쟁에 빠져 시청자의 채널선택권을 빼앗고, 중요하게 다뤄야 할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소홀히 취급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지상파 방송사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져 제 발등을 찍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월드컵이 끝난 이후 신뢰도가 추락할 대로 추락한 지상파방송이 방통융합이라는 대세 속에서 상업적인 유료방송들과 경쟁을 벌일 때 과연 시청자들이 지상파방송, 공영방송의 공적 가치를 얼마나 인정해 줄 것인지 참으로 우려스럽다. 지상파방송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당장의 광고 수입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신뢰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각인해야 할 것이다.
거듭 방송사들의 비이성적 '월드컵 올인' 중단을 강력히 촉구한다. <끝>


   
2006년 6월 13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