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 피의자 관련 보도의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5.30)
등록 2013.08.2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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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인권 이토록 짓밟는 의도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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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피습을 당해 얼굴이 크게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피의자 지모씨는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지원 연설을 하러 연단에 오르던 박 대표의 얼굴을 문구용 카터로 그어 길이 11cm, 깊이 최대 3cm의 상처를 입히고 체포됐다. 한편 유세장에 있던 박모씨는 지씨의 피습이 벌어지자 만취한 상태에서 연단에 올라가 의자를 던지는 등의 난동을 부리다 함께 체포됐다.
언론들은 이들을 강도 높게 규탄하면서 피습 동기와 배후를 쫓았다. 지씨의 피습행위가 용납될 수 없는 범죄인만큼 이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보도 과정에서 지씨의 인권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박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들의 인권까지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대 전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지씨의 얼굴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그대로 노출하는가 하면 박씨의 경우 피습과 직접 관련이 없는 데도 실명까지 공개했다.


무분별한 얼굴 사진 노출 및 실명 공개
일부 신문들은 박 대표 피습사건이 발생한 후 첫 보도가 나간 22일자부터 현행범으로 체포된 피의자 지씨의 얼굴 사진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앙일보는 1면과 3면에서 지씨의 범행 현장 사진을 반복해 게재했으며 4면에서는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붙잡힌 지씨의 사진을 게재하는 등 지씨의 얼굴을 세 번이나 그대로 노출했다. 동아일보는 1면에서 범행 현장을 담은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보도했지만, 5면에서는 서울 서부지검으로 이송되는 지씨의 얼굴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24일자에도 일부 신문들에 지씨의 사진이 실렸는데 이 중 한겨레와 경향을 제외한 동아·조선·중앙일보는 지씨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드러냈다.
한편 22일부터 일부 신문들은 지씨와 박씨의 실명을 보도하기 시작했는데 한겨레를 제외한 4개 신문은 모두 지씨의 실명을 썼다. 특히 중앙일보는 피습 사건과의 관련성도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박씨의 실명까지 공개했다. 동아일보도 23일부터 박씨의 실명을 거론했다.
경향·조선·한겨레는 박씨의 실명을 보도하지 않았다.


지나친 사생활 노출로 인한 인권 침해
검찰의 피의사실공표 관련 가이드라인은 △범인을 검거하거나 중요 참고인 또는 증거를 발견하기 위해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 될 경우 △범죄로 인한 피해의 방지와 범죄의 예방을 위하여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국민의 의혹 또는 불안을 해소하거나 기타 공익을 위하여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을 언론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해도 피의자들을 보도할 때 최대한 신중하게 보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피의자에 대한 공분이 큰 사건일수록 냉정한 접근을 해야 피의자에 대한 인권침해는 물론 피의자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인권침해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언론들은 검찰의 발표가 나오기도 전에 '단독 취재', '본지 취재' 등의 단서를 달아 '사건 해결'이나 '국민 불안 해소'와 무관한 지씨의 '사생활'을 낱낱이 보도하는가 하면, 신용카드 사용이나 핸드폰 사용 내역 등 지씨 행적에 대한 검찰의 발표를 그대로 보도하면서 지씨의 '배후'에 대한 아니면 말고식의 의혹을 쏟아냈다.
조선일보는 24일 1면 <소득없다 범인 지씨 어디서 돈 났기에…/ 신용카드로 월100만원이상 써>, 3면 <지씨 어디서 돈 생겼나/ 카드대금 반년간 764만원…꼬박꼬박 결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본지 취재 결과'라며 지씨의 신용카드와 핸드폰 사용 요금을 월별로 구체적으로 보도하며 '배후 세력의 존재'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이런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 밝히지 않았는데 이후 밝혀진 바에 의하면 한나라당 의원이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인용했다고 한다.
한편 중앙일보는 25일 5면 <안 드러나는 '뒷돈' 배후>라는 기사에서 합수부 발표를 근거로 지씨에게 20일에 걸려온 번호는 02-6378-0000(급전신용대출 업체), 010-4619-0000(갱생원 동기), 011-662-0000(사채 알선업자), 019-9763-0000(택시기사 김모씨), 032-884-0000(인천 연안부두의 횟집), 010-8697-0000(C씨)라고 보도했다. 또 지씨의 수입·지출 내역까지 표로 정리하기도 했다.


우리는 신문들의 박 대표 피습 보도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양적인 측면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신문들의 '과잉보도'는 단순히 정책선거를 실종시켰다는 것뿐만 아니라 여당의 '정치테러'인 양 몰아가면서 침소봉대, 확대과장, '정파적 굳히기' 보도로 5.31 지방선거 구도 전체를 뒤흔들었고 선거를 정서적, 감성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함으로써 유권자들의 이성적 판단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우를 범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후 보다 꼼꼼한 모니터를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신문 보도의 가장 심각한 문제가 지씨와 박씨에 대한 인권침해라고 판단하고 있다. 범죄자도 최소한의 인권을 보호받을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우리 사회가 인권을 옹호하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가 끝난 이 후 신문들이 이번 사건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다룰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피의자와 피의자 주변 사람들의 인권까지 고려한 신중한 보도를 해줄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끝>

 


2006년 5월 30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