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상속세 인하'를 요구하는 조선·중앙·동아일보 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5.16)
등록 2013.08.2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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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상속세, 혹시 조중동이 대신 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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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구학서 신세계 사장이 이명희 회장의 장남 정용진 부사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깜짝 놀랄 만한 수준"의 상속·증여세를 내고 경영권을 승계하겠다고 밝혔다. 신세계 대주주 일가가 낼 상속·증여세의 규모는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세계가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한 편법상속 의혹을 받고 있고 참여연대로부터 배임 혐의로 고발까지 당한 상황에서 이런 발표를 했기 때문에 '순수한 의도'로만 볼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재벌들의 편법 상속이 판을 치는 현실에서 '상속·증여세를 제대로 내겠다'는 선언 자체는 의미가 있다. 신세계가 자신들의 발표를 실행에 옮긴다면 다른 재벌들, 특히 신세계보다 덩치가 큰 재벌들이 편법적인 상속·증여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데 대해 부담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세계의 발표 이후 일부 신문들이 전경련 등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해 왜곡된 '상속세 인하' 주장을 펴고 나섰다.
16일 대부분의 주요 중앙일간지들은 신세계의 발표와 관련해 사설을 실었다. 그런데 동아, 중앙, 조선일보의 사설은 신세계의 발표를 '상속세 인하' 주장으로 연결시켰다.
이들 신문은 △우리의 상속세율이 너무 높다 △기업들이 상속세를 법대로 다 내면 경영권 승계가 어렵기 때문에 편법을 동원하게 된다 △상속세율을 낮춰 기업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요지의 논리를 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상속세의 폐지 또는 인하가 세계적 추세'라거나 '경영권을 상속하지 못하면 대기업을 키워온 가족경영의 장점을 살릴 수 없어 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등의 주장도 나왔다.


동아일보는 16일 <상속·증여 세제, 기업현실에 맞게 개편해야>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이 사설은 "대부분의 기업은 신세계와 달리 상속세를 내고 나면 경영권 승계가 어렵다", "상속 증여세가 지나치게 무겁다"며 이 때문에 "기업들이 세금을 피하기 위한 편법 및 불법의 유혹을 더 받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무거운 상속·증여세 때문에 "편법 승계에 따른 조세 회피 비용만 커진다", "편법 승계가 싫거나 두려운 일부 기업인은 일부러 기업 성장을 억제하거나 돈을 마구 쓰는 경향을 보인다" "기업인이 투자보다는 배당에 치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등의 전경련의 분석을 그대로 실어 주었다.
결국 동아일보는 "무거운 상속세는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기업에 큰 짐이 된다고 보아 상속세율을 낮추거나 아예 없애는 나라가 늘고 있다"면서 "2세, 3세 경영 승계가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해 상속 증여세율을 합리적으로 낮추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더 나아가 오너에게 지분보다 높은 의결권을 주는 "대주주 차등 의결권제"까지 검토하자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도 이날 사설 <상속세제 개편 논의 시작돼야>에서 동아일보와 거의 똑같은 주장을 폈는데, 아예 우리의 상속세제를 "징벌적"이라고 규정했다.
사설은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재벌그룹의 경우 현행 세제에서는 정상적 방법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기 어렵다", "(상속·증여세를 다 내면)사실상 경영권 승계가 불가능할뿐더러 경영권에 대한 외부의 위협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식의 징벌적인 상속세제에서는 기업들이 이윤을 빼돌리거나 편법적 우회 상속에 나설 유혹이 커지게 마련"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2세 상속을 포기하고, 전문 경영인에게 맡길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른다"며 "가족경영의 해체 이후 기업 경영이 제대로 된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나라 대기업은 가족경영의 장점을 살린 성공사례로 꼽힌다", "기업을 2세에 물려줄 길이 차단된다면 장기적으로 기업을 키워나갈 유인이 감소하고, 결국은 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질 우려가 크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한마디로 '재벌이 적은 세금을 내고 경영권을 세습할 수 있게 해주지 않으면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다.


조선일보도 동아, 중앙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지만 '상속세 인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두 신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16일 사설 <신세계, "깜짝 놀랄 만큼의 상속세 내겠다">에서 조선일보는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반기업 정서의 배경에는 부의 대물림 과정을 투명하게 하지 않았던 대기업 집단의 책임도 크다"고 전제한 후,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이 상속세법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상속에 대비한다는 강박관념에서 각종 기업 비리가 성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 원인을 따져볼 때가 됐다"면서 상속세 문제를 들고 나왔다.
조선일보 역시 전경련의 주장을 상속세 인하 필요성의 근거로 내세웠다. "최고 50%의 세금을 내려면 주식을 내놓을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기업주가 애써 세우고 키운 기업을 빼앗길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사설은 "상속세를 없애거나 줄이는 것이 최근 선진국 추세"라며 "우리 상속 관련 세제가 실제로 기업과 경제에 얼마나 부담을 주고 있는지를 우리의 의식구조와 경제여건 그리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추어 재검토해볼 필요는 없는지에 관해 공개적 논의를 펴볼 때도 된 느낌이다"라고 상속세제 개편 논의를 주장했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16일 사설 <떳떳한 대물림 선언과 빗나간 상속세 논란>에서 신세계의 발표가 "재벌의 '세금 없는 대물림' 고리를 끊는 선례가 되길 기대한다"며 "그룹마다 상속세가 경영 구도에 끼칠 영향에 차이가 있겠지만 편법 경영권 승계가 더는 자리잡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전국경제인연합회나 일부 언론은 여전히 과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하다"며 이들의 상속세율 인하·폐지 주장을 비판했다. 사설은 "경영권은 수많은 주주와 이해관계인한테서도 위임받은 것"이라며 "기업인의 경영권 승계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상속세율을 낮추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건 우물 안에서 하늘을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같은 날 경향신문도 <세금을 제대로 내겠다는 '깜짝 놀랄 선언'>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경향신문은 신세계의 발표가 "편법 승계 의혹을 피하면서 법정 분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방편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재벌의 편법 상속으로 인한 사회적 논란이 큰 상황에서 "신선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동안 국내 유수의 재벌 2세들이 낸 상속세는 수백억원이 고작이었다"며 "신세계의 상속 증여세 납부 선언은 재벌들이 본격적으로 달라지리라는 자기 다짐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경련이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경영권 승계가 어렵다"고 여론몰이를 하는 데 대해 "그러면 그럴수록 재벌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동안 재벌, 대기업들이 각종 편법을 동원해 세금조차 제대로 내지 않고 부와 경영권을 세습해 왔다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도 없다. 최근 '현대차 사태'에서도 드러나듯 재벌들은 탈법, 불법행위로 총수 일가의 부를 축적하다가 그 사실이 적발되면 뒤늦게 '기부' 등의 형식으로 사회적인 비난을 피해가려는 태도를 보였다.
또 최근 참여연대가 38개 재벌그룹의 계열사 250곳을 대상으로 부당 주식거래를 비롯한 편법거래 실태를 조사한 결과 64곳에서 70건(28%)에 이르는 각종 편법거래가 확인됐다고 한다. 물론 이런 편법거래는 총수일가의 부와 경영권 승계를 위한 과정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전경련은 세미나와 산하 연구소의 보고서 등을 통해 '상속세율 인하'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
우리는 조선, 중앙, 동아 등 일부 신문들이 재벌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단체의 입을 빌어 노골적으로 '상속세 인하' 주장을 편드는 행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이들 신문이 내놓는 '상속세 인하'의 근거는 전경련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들은 "상속세 폐지(인하)가 세계적 추세"라고 입을 모으지만 조세제도가 우리와 다른 각 나라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상속세 폐지가 보편적인 추세'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인하하는 나라들의 경우 상속세를 없애거나 낮추더라도 자본이득 과세제도 등을 통해 부의 부당한 세습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있는 반면 우리는 상속세 외에는 변칙적인 부의 대물림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재벌의 편법적인 부와 경영권 상속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상속세 부담까지 덜어주라는 주장이 조세형평의 근간을 무너뜨리자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


한편, 50%의 상속세를 내면 경영권 승계가 불가하다거나 외부의 위협에 취약하다는 주장은 재산권과 경영권의 개념을 혼란시켜 '경영권도 재산처럼 대물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몰아가는 것이다.
경영권은 기업의 주주와 이해당사자들로부터 위임받는 권리이지 세습되는 권리가 아니다. 만약 주주나 이해 당사자들이 총수의 2세나 3세가 경영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이들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부 신문들이 '경영권을 제대로 상속받을 수 없기 때문에 상속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것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자본주의 시장원리'마저 벗어난 맹목적인 재벌 편들기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현재 재벌 일가가 1∼5%의 지분율만 갖고도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지분율과 경영권이 별개이며 '지분이 줄어들어 경영권을 상속할 수 없다'는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잃게 된다.


'경영권을 상속해야 가족경영의 장점을 살릴 수 있고, 이것이 차단된다면 장기적으로 경제 전체의 활력이 떨어뜨릴 것'이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오너 일가의 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 중 어떤 것이 '일반적으로 더 우월하다'라고 잘라 말하기 어렵다 해도, 우리 사회는 재벌들의 '가족경영'이 초래하는 온갖 폐해를 겪고 있다. 일각에서는 IMF 이후 일부 재벌의 '가족경영'이 해체되면서 기업 경영이 투명화 되고 기업가치가 상승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중앙일보가 '가족경영'의 장점을 들어 경영권 상속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백번 양보해 우리는 일부 신문들이 상속세제의 개편을 의제화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재벌과 전경련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담아 '상속세가 무거워 기업들의 편법 증여·상속이 많다'거나 경영권의 상속을 당연한 것처럼 몰고가는 행태는 최소한의 균형감각을 저버린 낯뜨거운 '재벌대변'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끝>

 


2006년 5월 16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