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평택 대추리 일대 강제 퇴거' 관련 조선·중앙·동아일보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5.6)
등록 2013.08.2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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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위대의 폭력'만 부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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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정부는 15000여명의 군·경·철거 용역을 동원해 평택 대추리 일대의 행정대집행에 들어갔다. '여명의 황새울'이라고 명명된 이날 작전으로 중상자 12명을 포함해 경찰과 시위대 210여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소속 회원 524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부상자 숫자가 보여주듯 이날의 '행정대집행'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무자비하게 곤봉과 방패를 휘두르는가 하면 쓰러진 사람을 밟고 지나가고, 연행과정에서도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또 경향신문 사진 기자와 로이터통신 기자는 기자임을 밝혔음에도 경찰에게 무차별적으로 구타당해 얼굴이 찢기고 머리가 깨지기도 했다.
한편 진압이 진행되고 있던 시각 국방부는 대추·도두리 일대에 대한 영농 차단 작업의 일환으로 미군기지 이전 부지 2백85만평 둘레에 철조망을 설치했다. 오후 5시 30분경 대추분교에서의 상황이 종료되자 국방부와 경찰은 대추 분교 철거에 나섰다.
5일 범대위 측은 정부의 행정대집행에 반발, 국방부가 설치해 놓은 철조망을 끊고 들어가 다시 집회를 열었는데, 이 과정에서 다시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지는 등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


정부가 군대까지 동원해 행정대집행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사태가 어떻게 악화될 것인지는 뻔히 예견되어 있었다.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행정대집행을 누차 반대해왔음에도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폭력적인 진압에 들어갔다.


그런데도 일부 수구·보수 신문들은 4일 국방부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을 지적하지 않으면서 시위대의 폭력성만 강조하고, 행정대집행이 '한미동맹과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정부 입장과 "(시위대에)얻어 맞더라도 절대로 대응하지 말라"는 국방부의 발표만을 부각했다. 한편으로는 이번 시위가 '주민들의 생존권 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며 이번 사태의 책임을 '미군 철수로 무장된 외부 반미세력인 범대위'에 있다고 몰아갔다.


조선일보는 4일 경찰 등의 폭력진압은 외면한 채 '일부 반대세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주민들을 볼모로 국책 사업을 저지하는 것은 지역민이나 국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윤광웅 국방부 장관의 담화문을 주요하게 보도하면서 4면 기사 <군 "얻어맞아도 맞대응 말라">에서 국방부가 폭력진압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처럼 다뤘다.
또 이날 사설 <국방장관에게 '평택' 떠밀고 숨은 정권사람들>에서 조선일보는 "생색나는 일이라면 너도나도 한 수저씩 걸치는 데 이력이 난 현정권 사람들이 이번 평택사태만큼은 국방장관 전결사항이라도 되는지 떠맡겨 놓고 다들 뒤로 숨기에 바빴다"며 정권이 더 적극적으로 강경 대응에 나서지 않았음을 비난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5일자 4면 <"피해 줄여라" 해뜬 뒤 경찰 병력 진입>이라는 기사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원인을 시위대 탓으로 몰아갔다. 경찰은 안전을 고려해 "새벽을 피하고 해가 뜬 뒤인 오전 7시쯤 본격적으로 경찰력을 투입"했으나 시위대가 "미리 쌓아둔 볏짚단을 태우고 쇠파이프로 죽봉 등으로 거세게 저항"했으며, 경찰의 물대포 동원은 이 과정에서 '시위대의 대추분교 방화'를 저지하기 위한 것으로 다뤄졌다. 또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 방패를 머리 위로 올려 방어자세"를 취했다면서 경찰이 폭력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처럼 보도했다. '시위대에 맞더라도 대응하지 말라'는 국방부의 지침도 주요하게 보도됐다.
또 4면 <'평택 범대위' 실체는>이라는 기사에서 중앙일보는 범대위 상임 공대대표 중 문정현 신부와 민주노동당 경기지사 후보인 김용한씨를 거론하며 이들이 그동안 반미와 환경 사안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며, 범대위가 '외부 세력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경찰 측의 주장을 싣기도 했다.
한편 <미군기지 평택 이전 충돌의 교훈>이라는 사설에서는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데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범대위 측에 있다"며 "그중에서도 '미군 철수'로 철저히 무장된 외부 반미세력"이라며 사태의 책임을 범대위에 떠 넘겼다. 그러면서 범대위가 주민들에게 '미군의 평택이전은 북한 선제 공격과 아태지역에서의 침략전쟁을 위한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논리를 주입하고, '보상을 더 받게 해줄 테니 협의매수에 응하지 말라'는 얄팍한 수법을 동원했으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권력이 투입될 리 없다'고 독려했다고 주장했다. 또 사설은 "청와대는 팔짱만 끼고 있었고, 국방부·경찰은 권부의 눈치만 보면서 우왕좌왕했다"며 정부가 더 강력하게 범대위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남북관계, 한·일 동맹 강화, 일·중 화해 움직임 등으로 인해 한국이 자칫 "동북아의 외톨이"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그 어느 때보다 한·미 동맹의 강화가 요구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5일자 기사들에서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양상만 주목했다. 또 사설 <평택 대추리에서 바라본 한반도 안보현실>은 4일 시위가 "시대착오적인 '소수의 목소리'였을 뿐"이라며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반대 운동을 '소수의 목소리'로 깎아내렸다.
이어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고난의 역사가 반복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서로 얽혀 잠 못 이루는 밤이 적지 않다"고 한 발언에 대해 "한미 동맹의 이완 속에 일체화되다시피 한 미일 군사동맹, 금융제재와 인권을 통한 미국의 대북 압박과 북한의 중국 경사 움직인 등을 생각하면 누군들 마음이 답답하지 않겠는가"라며 제멋대로 해석한 뒤 대통령이 "소수 친북 좌파 세력을 향해 '한미동맹과 국기를 흔들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어선 안된다'고 말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이들 신문은 5일 벌어진 시위대와 군인들 사이의 충돌에 대해서도 시위대의 폭력성만을 부각했다. "군 장병과 몸싸움을 벌이며 장병들을 구타"(이상 조선), "장병들이 숙영하던 텐트와 임시 초소 40여 곳을 부순 뒤 철수"(중앙), "군 초병들의 야전용 텐트 50여 개를 발로 짓밟고 찢었다", "죽봉과 각목을 휘둘렀다"(이상 동아)며 시위대의 '공격'을 다루면서 군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조선), "무방비 상태에서 시위대에 맞았다"(중앙),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던 곤봉으로 간혹 맞서기도 했다"(동아)라고 보도해 시위대가 '일방적 폭력'을 휘둘렀다고 강조했다. 이들 신문은 군인들이 시위대에 의해 일방적으로 몰리는 연합뉴스 사진을 기사와 함께 실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군인들은 곤봉과 나무방패, 방망이 등의 시위진압장비를 미리 준비해 시위대와 격렬한 공방을 벌였다. 따라서 이들 신문이 국방부의 발표만을 근거로 군인들이 일방적으로 시위대에게 맞은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사실 왜곡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번 '불상사'의 일차적 책임은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국민적 동의절차 없이 '한·미 동맹', '국익' 운운하며 '밀어붙이기'로 일관한 정부에게 있다.
주한 미군의 평택 이전으로 동북아 지역 분쟁 시 미군의 개입 여지가 증대되고 이로 인해 한국은 국제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커지는데도 일부 신문들에서는 정부의 졸속적인 미군기지 이전 확정 추진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 이들 신문은 국방부가 '대화' 방침을 밝힌 지 닷새만에 강제퇴거에 돌입한 것이나 시위대보다 10배가 넘는 물리력을 동원한 강제 진압으로 대량 유혈사태를 불러온 것에 대해서도 일절 비판하지 않으면서, 시위대의 반발과 폭력성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행태다.
일방적으로 국방부 등을 두둔하고 더 나아가 정권이 더 강경하게 주민들의 반발을 진압하도록 부추기는 일부 신문의 행태는 문제 해결은커녕 사태를 점점 악화시킬 뿐이다.


우리는 국민의 안위를 외면한 채 '본질흐리기'로 일관하는 수구·보수 신문들이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문제에 대해 차라리 침묵할 것을 촉구한다. <끝>

 


2006년 5월 6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