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5월 2일 6개법안 직권상정 처리'와 관련한 방송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
등록 2013.08.2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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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 공방보도로 시청자 우롱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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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임시국회의 마지막날인 5월 2일 '8.30 부동산 대책입법 후속법안'인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과 '주민소환제법' 등 6가지 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사학법 재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법안 통과를 저지하겠다는 한나라당의 반발로 인해 이들 법안은 여야의 물리적 대치 끝에 김덕규 국회부의장의 직권상정으로 처리되었다. 이날 법안 처리 과정은 외형상으로 주민소환제법을 직권대상 법안에 포함시킴으로써 민주노동당의 협조를 얻어낸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실력저지를 무릅쓰고 '강행처리'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이를 이유로 '여야공방'이나 양비양시론적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사안을 호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직권상정으로 법안이 '강행처리'된 배경에는 국민 대다수가 지지한 '개정 사립학교법'의 '재개정'을 주장하며 국회를 공전시켜 온 한나라당의 책임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방송들은 6개 법안 처리를 두고 '여야공방'에 초점을 맞추고 물리적 충돌 과정을 부각해 정치권 전반에 대한 시청자의 불신을 부추겼다. 특히 이로 인해 통과된 법안들이 갖는 의미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고, 시청자들이 법안들을 정치세력들의 정쟁도구로 인식할 우려마저 있었다.


방송3사는 모두 "4월 국회의 마지막 날이 여야 간의 격렬한 몸싸움으로 또 한 번 얼룩져…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강한 반발을 뚫고…강행 처리"(SBS), "임시국회 마지막 날 끝내 여야 거친 몸싸움이 벌어져…한나라당의 반발 속에 여당은…강행 처리"(MBC),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의 저지에도 불구하고…강행처리"(KBS) 등 법안처리 관련 첫보도의 앵커멘트에서부터 여야의 물리적 충돌과 '강행처리'에 초점을 맞췄다.
기자의 리포트 과정에서도 '심한 몸싸움, 순식간에 아수라장, 고함,'(SBS), '거칠게 항의, 거친 몸싸움, 자리싸움, 그야말로 난장판'(MBC), '격렬한 몸싸움, 서류를 던지고 고함'(KBS) 등 보도의 대부분을 자극적인 표현으로 여야의 충돌 과정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화면을 통해서도 의원들이 밀고당기며 고함을 지르고 의원석 위로 올라가 삿대질을 하는 등 충돌하는 장면을 계속 부각했다. 특히 SBS는 한나라당이 극렬한 저지에 나서지 않은 것과 관련해 "박근혜 대표도 전투복으로 알려진 바지 대신 치마 차림이었다"며 박대표의 옷차림에까지 주목했다. MBC는 "김덕규, 이게 국회야? 그만해"라고 소리지르는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의 고함 등 막말이 뒤섞인 자극적인 현장음을 가장 적극적으로 부각했다.
또 KBS와 MBC는 각각 <구태 되풀이>와 <점거·대치 16시간>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전날 밤부터 법안처리 과정까지 이어온 대치상황을 시간대별로 상세히 전하며 "강행처리과정에서 구태가 되풀이됐다"(KBS), "국회는 일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MBC)면서 충돌양상을 부각하는 데 급급했으며 특히 KBS는 이번 여야대치를 싸잡아 '구태'로 규정해버렸다. 또 KBS와 MBC는 '첫 충돌은 어젯밤 10시쯤, 20여분 동안 몸싸움, 헌정 사상 네 번째 의장 공관 점거, 김덕규 부의장을 찾아 숨바꼭질'(KBS), '10시쯤 첫번째 몸싸움, 아침 일찍부터 또 다시 몸싸움, 마주보며 농성하는 진풍경, 의장 공관의 상황도 긴박'(MBC) 등 여야대치를 중계하듯 흥미 위주로 전했다.
반면 이날 처리된 법안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어 3당이 한나라당의 반발을 무릅써가며 강행처리한 것인지는 꼼꼼히 짚어보지 못했다. 결국 이런 방송보도로 인해 시청자들은 6개 법안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못한 채 '굳이 물리적 충돌을 하면서까지 처리해야 했나'라며 의문을 가질 가능성이 컸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정치권에 대해 혐오와 냉소를 가질 우려가 컸다.
한편 SBS는 "오늘 법안 처리에는 민주노동당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민주노동당이 법안처리에 협조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는데, 이 보도 역시 민주노동당이 왜 '주민소환제법'을 여당과의 협상을 통해 직권상정 대상에 올려 통과시키려고 했는지는 살펴보지 않았다. 그저 보도 내내 "민주노동당 의원 9명이 유유히 열린우리당 의원들 뒤쪽으로 합류…열린우리당측에서 환호…상황이 급반전…밤 사이 열린우리당을 초긴장시켜…브레이크를 걸고 나서…민주당은 갑작스럽게 본회의에 참석해 한나라당의 허를 찔러" 등 마치 첩보영화의 한 장면을 소개하듯 흥미롭게 다루는 데 그쳤다.


물론 방송3사에서 이날 통과된 법안들을 설명하는 보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여야의 물리적 공방부터 각인시켜놓은 다음에 통과된 법안들을 다룸으로써 그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제대로 소개되지 않거나 '기계적 중립' 차원에서 다루는 데 그쳤다.
MBC는 <불량정치인 리콜>에서 "주민소환제법 통과로 이제 유권자들이 불량정치인들을 지방자치에서 퇴출시킬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다"며 그 의미를 평가하고 법안 내용을 상세히 전했다. 하지만 기자리포트 과정에서 "주민소환제는 지방자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선거 낙선자나 반대파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남용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며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으나 그다지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정치적 남용가능성'을 언급해 기계적 균형을 맞추려 애썼다.
KBS는 <잘못하면 '퇴출'>에서 앵커멘트부터 "시행과정에서 적지않은 파장이 예상된다"며 주민소환제에 대한 '우려'에 더 많은 무게중심을 뒀다. 비록 "비리나 부패, 무능 등 문제점이 있어도 견제할 장치가 없었던 단체장들의 전횡을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 것"이라며 "우리나라 지방자치사에 중요한 기틀을 세웠다"는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의 인터뷰를 인용했지만, 그 보다는 "이 제도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며 "지자체장의 갑작스런 해임으로 지방행정의 혼란이 더욱 커질 수 있다", "포퓰리즘으로 흐를수 있어 검토가 더 필요한 제도"(진수희 한나라당 의원 인터뷰), "중앙당이 지방선거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 우리 정치현실상 오·남용의 여지가 크다는 우려", "정치적 불복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quot; 등 '불만'의 목소리를 더 부각해 주민소환제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만약 KBS와 MBC가 전한 '우려'처럼 주민소환제가 정치적으로 '남용'되려면 소수의 정치집단이 뚜렷한 명분없이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주민소환하고, 퇴출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주민소환제법에 따르면 KBS와 MBC에서도 설명했듯 시도지사는 유권자의 10% 이상, 기초단체장은 15% 이상, 지방의원은 20% 이상이 서명해야 해임투표를 실시할 수 있고, 투표에서도 유권자의 1/3 이상이 참여해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대상자를 해임할 수 있다. 즉, 지역민들의 광범한 공감을 얻지 못하는 사안으로는 주민소환을 정략에 따라 악용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따라서 '포퓰리즘'을 주장하는 한나라당이나 그 목소리를 전한 방송사들의 우려는 말 그대로 '기우'에 불과하다해도 지나치지 않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에 대해서도 KBS와 MBC는 부동산 투기의 수단으로 전락한 서울 강남의 재건축아파트의 문제를 짚어보고 법안의 의미를 설명하기보다 재건축아파트 소유자들의 반발을 전하는 데 더 힘썼다.
KBS와 MBC는 모두 '재건축 사업 착수시점부터 준공시점까지 집값이익 3,000만원 이상일 경우 초과분에 대해 최고 50%까지 국가가 환수하도록 되어 있다', '재건축 절차가 까다로워졌다'며 법안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긴 했으나, 이 법이 주로 어느 지역의 재건축 아파트에 해당되는지, 도입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소개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해당 재건축 단지들은 강력히 반발하며 집단 대응 절차에 착수", "사유재산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어서 헌법소원을 제기할 계획(관계자 인터뷰)"(이상 KBS), "상당히 많은 부과금을 부과해야 되는 것 때문에 아주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관계자 인터뷰)", "서울시내 재건축 단지 대표들은 서울시 재건축연합회를 발족해 공동대응"(이상 MBC) 등 재건축 조합원들의 반발은 적지않게 다룬 것이다. 특히 KBS는 이 과정에서 '투기로 얻은 불로소득이나 마찬가지인 이익'을 두고 '사유재산 침해'라고 주장하는 재건축조합 관계자의 인터뷰까지 그대로 전했고, MBC는 "재건축이 사실상 어려워지게 됐다"며 과도한 이익을 목표로 진행되는 투기지역 아파트 재건축과 일반적인 노후 아파트 재건축을 구분하지 않고 다뤄 정부대책이 '재건축' 자체에 대한 규제인 것으로 인식하게 했다.
한편 SBS는 <법안 주요 내용은?>에서 앵커멘트로 각 법안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는 데 그쳐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의미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려는 노력 자체를 보이지 않았다.


각 방송들이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은 셈"(SBS), "이제 지방선거로 무대가 옮겨져 계속될 것"(MBC), "여야간의 기싸움은 지방 선거전으로 이어질 전망"(KBS)이라고 보도했듯, 이번 6개 법안 처리의 후유증은 지방선거 투표일인 5월 31일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방송들이 2일 보도처럼 기계적으로 공방을 다루거나 양비양시론적 입장만 취한다면 시청자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게 된다. 법안 처리 과정에서 정치권의 구태가 벌어졌다면 가장 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따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공정성'이다. 그저 뭉뚱그려 '구태', '아수라장'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냉소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방송들이 선거 기간 동안 '중계식 공방보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바람직한 미디어선거는 기대하기 어렵다.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밝혀주지 않는 '기계적 중립보도', '양비양시론보도'는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세력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게된다는 사실을 방송들이 모르지 않을 것이다. 방송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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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3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