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한나라당 '사학법 재개정' 요구 관련 주요 신문 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5.1)
'한나라당의 생떼쓰기', 비호가 능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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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사학법 재개정'을 주장하며 임시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있던 지난 29일,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김한길,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여당이 양보하면서 국정을 포괄적으로 책임지는 행보가 필요한 때"라고 밝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상 열린우리당에게 한나라당의 억지 요구를 들어주라고 '권고'한 것이었으나, 열린우리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의 고뇌와 포용정치는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한나라당의 개방형이사제 개정 요구는 사학법을 무력화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여당이 대통령의 생각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고 걸핏하면 의사일정을 거부하는 한나라당의 반의회주의적 행태를 무조건 받아주는 것이야말로 책임있는 여당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사학법 재개정의 내용은 개정 사학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개방형이사제의 근간을 훼손하겠다는 것인 만큼 열린우리당이 대통령의 권고를 거부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일부 수구보수신문들은 대통령의 권고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열린우리당을 거세게 비난하는가 하면 국회 파행의 책임까지 열린우리당에 뒤집어 씌웠다. 반면 이들 신문은 '사학법 재개정' 요구를 내걸고 국회 파행을 주도해온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어떤 비판도 하지 않았으며, 한나라당의 재개정안을 왜 여당이 수용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일부 신문은 한나라당의 재개정 주장을 뒷받침해주면서 개정 사학법의 내용을 거듭 왜곡했다.
5월 1일 조선일보는 <'할 말'은 못 하더니 '들을 말' 안 듣겠다는 여당>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이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대통령의 '양보권고'를 거부한 열린우리당과 그동안 사학법 개정에 대해 "즐기는 입장"이다가 이제야 여야간 "중재"에 나선 대통령을 싸잡아 비난하면서 "도대체 어떤 박자에 맞춰 돌아가는 정권인지 알 수가 없다"고 비아냥 거렸다.
그러면서 열린우리당이 과거 국가보안법 개정 방침을 정했다가 노 대통령의 '폐지' 발언이 나오자 곧장 '폐지' 입장으로 선회했고, 노 대통령의 대연정 구상에 대해서는 이를 뒷받침하겠다고 "수선을 피웠다"고 주장하면서 "'할 말'을 해야 할 때는 우물우물했던 여당이 대통령이 정말 오랜만에 책임 있는 자세로 책임 있는 말을 했더니 그 말만은 못 듣겠다며 청개구리 시늉을 하고 있다"고 열린우리당을 비난했다.
같은 날 중앙일보는 <여당은 사학법 재개정에 적극 나서라>는 사설에서 한나라당의 재개정 요구를 '글자 수 하나' 늘이는 문제로 왜곡·축소하면서 '여당이 그것도 못 들어주느냐'고 질타해 임시국회 파행의 책임을 열린우리당에 떠넘겼다. 이 과정에서 개정 사학법이 '사학을 전교조에 맡기는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악의적 왜곡을 재개정의 합당한 근거인 양 다시 거론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사학법 개정안과 관련해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이 양보할 것을 종용한 것은 옳은 선택"이라고 추켜세우면서 열린우리당의 반발을 "답답한 노릇"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한나라당의 사학법 재개정안이 "개방형 이사의 추천 주체를 '학교운영위원회와 대학평의원회'에서 '등'이라는 글자를 넣어 확대하자는 것"이고, 그 이유가 "추천 주체를 특정하면 학교운영위를 장악하고 있는 전교조에 학교를 맡기는 셈이라는 주장"에서 비롯된 것인데 "(여당이) 이 정도도 물러서지 못하겠다는 것은 협상의 자세가 아니다"라면서 왜곡된 사실을 전제로 여당에 대한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나아가 사설은 지난 1월 여야 원내대표가 "산상회담으로 사학법 재개정 원칙에 합의"해 놓고 열린우리당이 "이제 와서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다는 것은 속임수", "글자 한 자를 넣는 문제로 국정을 마비시킨다면 그 책임은 전적으로 여당의 몫"이라며 국회 파행의 근본책임이 '한 글자도 못 고치겠다는 여당'에 있는 것처럼 떠넘겨버렸다.
동아일보도 <사학법 고집이 '개혁'이라는 여당의 억지>라는 사설을 실었는데 개정 사학법에 대한 횡설수설 수준의 왜곡을 반복하는가 하면, '대통령의 권고-여당의 거부-대통령의 여당 입장 수용'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두고 "짜고 하는 게임", "레임덕" 운운하면서 온갖 억측을 쏟아냈다.
나아가 "대통령의 발언이 이처럼 무게가 없고, 국정장악력을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라면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의 국정혼란을 피하기 어렵다"며 여당이 대통령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상황을 국정 전반의 혼란으로까지 확대시켰다.
또 동아일보는 개정 사립학교법이 "교육의 자율성과 사학의 재산권을 심각하게 해치는 위헌적 내용을 담고 있어 한나라당과 종교계 사학은 물론이고 공립학교 교장까지 반대했던 악법", "위헌 시비까지 무릅쓰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하자는 대로 교육의 자율성을 해치는 것" 등으로 거듭 왜곡했다.
이어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가 "사학법 재개정을 약속했다"면서 "거짓 약속을 밥 먹듯이 하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이냐"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노 대통령의 부적절한 개입>이라는 사설을 싣고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사학법 재개정 요구 수용을 권고한 것이 부적절했으며, 임시국회 파행의 일차적인 책임은 사학법 재개정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어 국회 태업에 들어간 한나라당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 개정 사학법의 개방형 이사제는 만성적인 사학비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는 점, 한나라당의 요구에 대해 '우는 아이에게 떡하나 더 주자는 식'의 해법은 옳지 않다는 점, 열린우리당이 대통령의 권고를 거부한 것은 정치 주체들 간의 유기적이면서 독립적인 관계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발전적인 면이 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우리는 개정 사학법에 대해 색깔론을 펴고 '위헌' 운운하는 일부 신문들의 거듭되는 왜곡이나 대통령의 말을 여당이 따르지 않아 '국정혼란이 우려된다'는 등 독재정권 아래에서나 어울릴 법한 호들갑에 대해서는 굳이 반박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개방형 이사 추천 주체에 '등'자를 넣어야 한다는 한나라당의 요구는 그저 '글자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개방형 이사는 사학재단의 비민주적인 운영과 전횡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로 도입된 것이다. 따라서 개방형 이사를 추천할 수 있는 주체를 학교운영위와 대학평의원회로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등'이라는 글자를 넣어 막연한 여러 곳에서 추천 받을 수 있게 해놓으면 재단은 원하는 곳으로부터, 재단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을 개방형 이사로 추천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개방형 이사에 대한 추천권을 재단이 스스로 행사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개방형 이사'라는 이름으로 앉히겠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사학재단을 견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근간에서부터 흔들리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도 중앙일보가 사설을 통해 한나라당의 재개정 주장을 '글자 하나 바꾸는 일'로 몰아가는 것은 법 해석 능력의 부족이거나 아니면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기본을 저버리는 왜곡 행태이다. 한나라당의 재개정 요구가 '등'자 하나의 문제라면 글자 하나를 삽입하지 않는다고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가는 한나라당이야말로 비정상적인 정당이라는 비난을 받아야 하지않겠는가.
또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열린우리당을 향해 '한나라당과의 재개정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열린우리당이 사학법 개정의 취지 자체를 뒤흔드는 내용까지 개정하기로 한나라당과 약속했다고 우길 근거는 없다.
한편, 우리는 열린우리당이 대통령의 말 가운데 듣지 말아야 할 것은 듣고, 들을 것은 듣지 않는다고 비난한 조선일보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대통령의 "들을 말"은 무엇이며, 그 기준은 또 무엇인가? 조선일보는 "국정을 책임진 입장에서 문제를 풀자고 하면 대통령 말처럼 여당이 한 발 양보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야당이 국회를 공전시키면서 내놓는 모든 요구에 여당이 무조건 양보해야 한다는 말인가?
조선일보야말로 대통령의 말 가운데 국가보안법 폐지와 같은 "들을 말"은 온갖 왜곡으로 비난하다가 야당의 부당한 공세를 받아주라는 '권고'에는 따르라고 하니 그야말로 청개구리 행태다.
거듭 강조하지만 4월 임시국회가 파행에 이른 것은 '사학법 재개정'을 내걸고 국회 운영을 가로막은 한나라당 때문이다.
일부 신문들이 '여당이 대통령의 권고를 무시했다'는 사실만 부풀리면서 사태의 본질을 은폐하고 여당에게 사학법 재개정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편파왜곡보도가 아니다. 이와 같은 보도행태는 걸핏하면 벌어지는 수구정당의 '생떼쓰기'에 힘을 실어 의회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끝>
2006년 5월 1일
(사)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