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선관위의 인터넷언론사 실명제 관련 민언련 논평(2006.4.19)
선관위는 '인터넷 실명제'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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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가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800여개의 인터넷 언론사를 대상으로 '선거운동 기간 동안 선거관련 댓글의 실명인증 시스템을 운영하라'는 요지의 방침을 내려 논란을 빚고 있다.
이 방침에 따르면 포털사이트와 인터넷 언론사들은 5월 18일부터 30일까지 13일 동안 정치·선거 관련 기사의 댓글을 달거나 토론 게시판을 이용하는 네티즌들을 대상으로 '실명제'를 실시해야 한다.
선관위는 '실명제'를 시행하지 않는 인터넷 언론사들에게 대한 제재 방침도 함께 밝혔다. 실명 확인을 위한 기술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인터넷 언론사들에게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사흘간의 이행기간이 지난 후에는 하루 50만원의 가산액을 물리겠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밖에 실명확인 되지 않은 글을 삭제하라는 요청을 받은 인터넷 언론사가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100만원을 부과하고, 1일 간의 이행기간이 초과하면 하루 20만원의 가산액을 추가로 물리겠다는 방침도 포함돼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익명성을 악용한 인권침해 행위는 근절되어야 마땅하며, 특히 선거 때면 등장하는 악의적인 흑색선전과 인신공격 등은 민주주의의 정착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선관위의 이번 방침은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절차와 시기에서부터 문제다. 선관위의 방침에 따르면 선거운동 기간동안 네티즌들은 인터넷언론 사이트에서 후보자에 대한 단순한 찬반 의견을 밝히는 데에도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해 실명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이는 네티즌들의 자유로운 의견 표현을 위축시키게 된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 이런 민감한 사안에 대해 충분한 사회적 논의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선거를 한 달여 남겨둔 시점에서 인터넷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실명인증 시스템을 갖추지 않으면 제재조치 하겠다'고 밀어붙여서는 안될 일이다.
둘째, 대량의 명의도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인터넷 게임 '리니지' 사이트에서 발생한 대량의 명의도용 사건은 실명 인증 시스템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정보통신부까지 나서 인터넷 기업들에게 다른 신원 인증 수단을 이용하라고 권고할 정도로 명의도용 문제는 인터넷 실명인증 제도의 심각한 부작용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800여개에 달하는 인터넷 언론사들에게 간단한 댓글 쓰기에까지 실명인증 시스템을 적용하라고 강제하는 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일이다.
셋째, 비록 제한된 기간 동안이지만 실명으로만 정치적 입장을 밝히도록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의 소지가 크다.
선관위는 선거 기간 동안 상호비방, 유언비어 유포 등을 근절하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명인증 시스템을 강제했을 때 초래될 부작용에 대해 충분히 따져보지 못한다면 '혼탁한 선거문화' 보다 더 폐해를 초래할 수 있다.
당장 네티즌들은 선거기간 동안 자신의 의견 표현에 대해 '자기검열'을 하게 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일부를 통제하기 위해 다수의 자유로운 의견 표현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단 선거 시기가 아니더라도 프라이버시 등의 인권 보호와 표현의 자유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기본권의 충돌'이라는 과제를 던져준다. 선관위가 깊은 고민 없이 인터넷 실명제를 밀어붙인다면 실효는 거두지 못한 채 사회적 논란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선관위가 무조건 실명인증 시스템을 강제하기에 앞서 인터넷 언론사들이 유언비어 유포를 비롯한 선거법 위반 행위나 인권을 침해하는 악의적인 댓글 등에 대해 자체적인 '정화시스템'을 마련하도록 권고하는 수준의 자율규제 방침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만약 이와 같은 '자율규제' 방식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한다면 그 때는 사회적 논의를 거쳐 보완책을 마련해 나가면 될 것이다.
선관위가 논란만 키우는 '실명제' 방침을 재검토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 <끝>
2006년 4월 19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