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한미 FTA 협상' 관련 조선·중앙·동아일보 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4.14)
맹목적 FTA 체결 선동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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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한미 FTA 협상 추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자 일부 수구·보수 신문들이 한미 FTA 체결을 우리 경제의 '살 길'인 양 호도하면서 이를 반대하는 시민사회 진영과 일부 인사들을 매도하고 나섰다.
12일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일제히 사설을 싣고 한미 FTA 체결 반대 주장을 "운동권 학생들의 설익은 자폐적 민족주의"(조선), "맹목적 민족주의를 선동하려는 소아병적 발상"(중앙), "글로벌경제에 무지한 반미 선동"(동아) 등으로 매도했다.
동아일보는 <경제 선진화 가로막는 어리석은 반FTA>라는 사설에서 "(한미 FTA)협정이 발효되면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일자리를 증대시킬 것이다", "경제산업 제도와 관행을 질적으로 개선시키는 효과도 예상된다", "농업이나 서비스분야에서 단기적으로 피해를 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소비자에게 이익을 안겨주고 국민 삶의 질을 높일 것이다"라는 등등의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았다.
또 우리ㅍ나라가 "1980년대부터 보호무역에서 자유무역으로 옮겨가는 개방정책"을 썼고 "이 과정에서 경쟁원리가 작동하면서 삼성전자, 포스코 같은 세계적 초일류 기업이 나왔다"면서 "한미 FTA 반대론자들은 개방을 확대하면 국내산업이 붕괴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우리의 경험은 정반대"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미 FTA 체결로 개방을 확대하는 것이 우리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얘기다.
그러나 삼성전자와 포스코 같은 기업이 성장한 원인을 '개방정책'과 '경쟁'으로 단순화시켜 놓고, 한미 FTA를 체결하면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식의 동아일보의 주장에는 우리가 민망해질 지경이다. 이들 기업이 성장하는 데 있어 권위주의 정권 하의 막대한 조세 혜택, 억압적인 노동정책, 각종 불법 행위에 대한 처벌 유보 등 다양한 정치사회적 요인들도 작용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제조업에서 작동한 '경쟁원리'를 다른 산업에까지 적용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개방정책'과 '경쟁'이 국내 산업을 살려줄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동아일보야말로 국민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설은 한미 FTA 협상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글로벌 경제에 무지한 반미 선동", "'경제는 망쳐도 운동은 살리겠다'는 반국민적 행태", "미국을 위해 자유무역 반대 운동을 펴는 한국의 수구좌파"라는 등의 공격을 펴고 있으니 한마디로 "적반하장"이다.
중앙일보도 <한미 FTA는 우리가 살길이다>라는 사설을 통해 한미 FTA를 체결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무너질 듯이 호들갑을 떨었다.
사설은 우리 나라가 "GATT와 WTO로 대표되는 다자간 무역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이자 "대외교역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룬 전형적인 나라"라고 전제한 뒤, 이런 나라가 어떻게 "빗장을 걸어 잠그고 '우리식 대로 살자'고 할 수 있느냐"며 한미 FTA 협상을 '매국협정'이라고 하는 것은 "맹목적 민족주의를 선동하려는 소아병적 발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자간 무역체제에서 우리 경제가 성장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이를 근거로 양자간 무역협정인 FTA를 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뿐만 아니라 졸속적일 뿐만 아니라 미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 한미 FTA 협상을 비판하는 다양한 세력들의 논리가 마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우리식대로 살자'라는 식의 '쇄국정책'인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다.
한편 이 사설은 한미 FTA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일부 인사를 '친노진영'이라고 규정한 뒤 "이른바 친노 진영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정치쟁점화할 조짐"이라며 "한미 FTA를 빌미로 내년 대선까지 '친미 대 반미' 구도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을 '친노진영'이라고 몰아붙인 것도 납득할 수 없을뿐더러, 이들이 '친노진영'이라면 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한미 FTA 협상을 비판하면서 대선까지 '친미 대 반미' 구도로 끌고 간다는 것인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이다.
조선일보는 정부의 졸속적인 한미 FTA 협상 추진을 비판하는 척하면서 FTA 저지 운동 진영을 매도하는가 하면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끌어들여 엉뚱한 내용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해괴한 태도를 보였다. 조선은 <한미 FTA, 얼마나 준비 없이 불쑥 꺼내 들었길래>라는 사설에서 정부가 '1년 1개월 만에 협상을 타결 짓고, 1년 10개월만에 발효시키겠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비판하면서 "한미 FTA는 한국경제 전반에 미칠 파급효과, 그리고 당사자들 간의 이해 상충을 고려할 때 행정도시보다 더 치밀한 사전 조율과 국민설득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설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미 FTA 협상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은 일언반구도 없었으며, 한미 FTA 체결 반대론자들이 "경제적 득실계산에 바탕한 냉철한 사고보다는 지금은 폐물이 돼버린 운동권 학생들의 설익은 자폐적 민족주의"에 근거하고 있다고 매도했다. 조선은 한미 FTA 체결에 대해 찬반을 밝히지 않으면서 교묘하게 정부와 한미 FTA 체결 반대론자들을 싸잡아 비난하면서, '한미 FTA 협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정부를 비난한 것이다.
수구·보수 신문들은 한미 FTA 체결이 우리 경제에 엄청난 이득을 줄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지금까지 한미 FTA 협상을 개시하기 위해 취해왔던 일련의 조치들 즉, 스크린 쿼터 축소, 소고기 수입 재개, 약값 재평가 제도 개정안 취소,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강화 방침 취소 등만 봐도 한미 FTA가 우리 경제와 국민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이 무색해 진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미 FTA 협상 체결로 GDP가 7.7% 증가하고, 10만4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가 하면, 서비스 분야의 개방으로 국내 서비스 산업이 전반적인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2월에 내놓은 보고서에서 GDP가 장기적으로 1.99% 증가한다고 전망했을 뿐 아니라, '장기적'이라는 것은 자본이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완전고용된다는 것을 가정한다는 의미여서 한미 FTA 체결이 곧 GDP의 대폭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멕시코의 경우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 후 10년 동안 미국과 수출입은 3배가 늘었지만 GDP는 1% 증가하는데 그쳤으며, 실질임금은 0.1% 감소했다. 이는 일부 제조업이 남긴 이익이 서비스와 농업분야 등으로 흘러나가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또 미국국제무역위원회(USITC)가 2001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FTA 협상 체결로 미국의 대한 수출은 43∼54% 증가하는 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21∼23% 증가하는데 그쳐, 한미 FTA 체결 5년 후면 현재 대미무역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특히 한미 FTA 체결은 의료·교육 분야의 공공성을 훼손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우려가 크다. 예를 들어 의료부문에서는 영리병원의 허용으로 의료비 폭등을 일으켜 건강보험재정 고갈과 보험혜택 축소를 가져올 위험이 크다. 이는 의료보험의 이원화(1국 2의료체계)로 귀결돼 소수의 부유층들은 좋은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반면 대다수 서민들은 보험혜택이 대폭 축소된 건강보험에 남아 있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다. 교육부문도 영리법인의 외국교육기관은 등록금, 학생선발, 자체 교육과정에 대해 기업 수준의 자율성을 보장함으로써 등록금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 설령 우수한 외국교육기관이 들어온다고 해도 연간 2,000만원 이상의 수업료와 3,000만원 이상의 교육비를 내야 하는 소수만을 위한 '귀족학교'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수구·보수 신문들은 한미 FTA를 무조건 체결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니 대체 어느 나라 신문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미국 무역대표부의 로버트 포트먼 대표가 한미 FTA 협상 출범을 발표한 지난 2월 2일 미 의회에 보낸 협상통보문에서 한국정부에 횡포 수준에 가까운 '치외법권'을 요구하겠다는 요지의 보고에 대해서도 이렇다할 비판을 하지 않았다. 이런 신문들이 졸속적인 한미 FTA 체결 반대 주장에 대해 "자폐적 민족주의", "소아병적 발상", "반미선동" 운운하고 있으니 우리야말로 기가 막힌다.
오히려 미국의 일정에 맞춘 졸속적인 한미 FTA 체결을 강행하라는 이들 신문이야말로 "맹목적 사대주의를 선동하려는 소아병적 발상"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끝>
2006년 4월 14일
(사) 민주언론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