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이명박 서울시장 미국 출장 관련 일부 언론인의 '공짜취재'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3.23)
'권언유착' 위한 '공짜취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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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의 고질적 병폐인 '공짜 취재' 문제가 또 불거졌다. 지난 3월 13일부터 18일까지 '한미 양국의 교류협력과 투자유치 활동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뤄진 이명박 서울시장의 미국출장에 모두 9명의 기자들이 서울시로부터 '취재경비'를 제공받고 동행한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공짜 취재'를 간 언론인은 조선, 동아, 중앙, 연합뉴스, 서울경제, SBS, CBS, MBN 등의 기자라고 한다. 서울시는 이들에게 1인당 400만원씩 '취재경비'를 지원했는데 이 돈은 '시정관련 보도 해외출장비'라는 명목의 서울시 예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결국 시민의 혈세로 조성된 서울시 예산이 차기 대권주자인 이시장의 홍보를 위한 공짜 취재 경비로 제공된 것이다.
이번 일로 해당 언론사와 기자들은 유력 차기 대권주자의 '홍보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만약 이시장의 미국출장이 취재가치가 있어 동행했다면 언론사가 경비를 부담하든지 아니면 자비라도 내야했음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취재경비를 제공받았다. 자신들에게 돈까지 주며 '외유'를 시켜주는데 어떻게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있겠는가.
이는 미국에서 보인 이들의 행적이 이를 증명한다. 약 1주일 가량 미국에 있는 동안 이시장과 동행한 8개 언론사 기자 가운데 그나마 연합뉴스와 CBS가 다수의 기사를 송고했을 뿐 나머지 기자들은 1∼2건의 기사를 쓰는데 그쳤다. 보도의 내용도 대부분 이시장이 워싱턴 시장과 만나 '서울시-워싱턴시 자매결연'을 맺었다거나, 뉴욕시장을 예방했다는 소식 등 '쫄쫄이 동정보도'에 불과했다.
특히 이시장이 동포들과 가진 간담회 소식을 다루며 "느닷없이 사회주의 성향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는 이시장의 주관적 발언을 그대로 전달하는가 하면(조선, 중앙), 미국 특파원의 보도이긴 하지만 "미국 하원의회가 이 시장의 방미에 맞춰 오는 16일을 '이명박의 날'로 선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수행 중인 서울시 관계자가 말했다"(13일 조선),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서울시장에 대해 미국 측이 이례적으로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13일 동아), "이명박 서울시장이 미국의 대표적 연구소인 헤리티지재단과 브루킹스연구소,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초청을 받아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는 이 시장에 대한 미국 측 관심을 보여줬다"(13일 중앙) 등 조선, 동아, 중앙이 앞다퉈 이시장 띄우기에 나섰다.
반면 미국 현지 기자들이 송고한 기사에서는 국내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된 '황제테니스' 논란과 관련한 기사는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국내에서도 '황제테니스' 논란은 이들 신문에게 주요 관심사가 되지 못했을뿐 아니라 축소보도에 급급했다. 또한 '이해찬 골프파문' 보도와 비교해 볼 때 이중적 보도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이명박 시장의 '황제·공짜 테니스' 관련 주요 신문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3월 21일 참조)
최근 갖가지 의혹들이 사실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이른바 이명박 시장의 '황제테니스' 문제와 관련해 이시장과 동행한 기자들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면서도 사건의 진실을 캐려는 노력은커녕 이시장의 해명조차도 취재하지 않아 기자의 본분을 망각한 채 '접대성 외유'를 받았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일각에서는 이들 기자들에 대해 이시장의 동정보도에만 관심을 쏟았단 이유로 '이명박 홍보맨'이라고까지 비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공짜 취재'는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유력하게 손꼽히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해당 언론사 및 언론인의 '권언유착'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이명박씨가 서울시장으로 취임한 뒤 서울시 출입기자들의 공짜 취재 논란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다. 2004년 한 해에만 6월과 10월 각각 이시장의 미국과 프랑스, 중국과 러시아 방문길에 출입기자들이 공짜 취재를 다녀왔고, 11월에 또 11개 언론사 기자들이 시의회 예산으로 일본 견학을 다녀왔다. 당시에도 '외유성 취재' 비판이 제기돼 일부 자정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유야무야되고, 서울시는 오히려 시예산에서 '취재경비'로 활용되는 '시정관련 보도 해외출장비'를 더 높게 책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이시장으로서는 주변의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대권행보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언론인을 적극 활용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우리는 잊을만 하면 심심찮게 불거지는 언론인들의 '공짜 취재' 문제를 이제 비판하기조차 입이 아플 지경이며, 나아가 권언유착의 실상을 목도하면서 참담한 심경을 감출 수 없다. 특히 '이명박 황제테니스' 논란을 가장 축소해 보도하고 있는 조선, 동아, 중앙 기자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공짜 취재로 이시장과 동행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축소보도의 이유를 확인한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공짜 취재를 다녀온 기자들은 문제가 불거진 다음에도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시의회 승인을 받은 돈이라 문제될 게 없다', '미국에서 황제테니스 의혹을 파악할 수 없었다'는 식으로 당당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기자는 "이 시장과 친분을 쌓으려고 미국까지 따라갔다"며 아예 노골적으로 권언유착 의도를 내비치기도 했다.
우리는 이시장이 자신의 대권행보를 위해 시예산을 낭비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서울시는 지금까지 각종 취재경비조로 기자들에게 제공된 돈의 내역을 상세히 공개하고, 지금부터라도 서울시 출입기자단에 대한 '취재경비' 제공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의 해외순방 동행취재마저 각 언론사 자부담 원칙을 정착시킨 마당에, 서울시가 구시대적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시민들은 기자들 외유나 시켜주라고 세금을 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언론인들에게도 거듭 요구한다.
이제껏 '공짜취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우리는 자성을 촉구하며 '유명무실한 각 언론사 윤리강령을 강화하는 것을 포함한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쇠 귀에 경 읽기'였다.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한다. 언론인들은 몸에 밴 구시대적 관행을 이번 기회에 완전히 털어내야 한다. 만약 또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문제를 일으킨 언론인에 대한 퇴출운동까지 고려할 것이다.<끝>
2006년 3월 23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