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철도파업 관련 주요 신문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3.2)
‘시민볼모론’으로 선동하지 말라
.................................................................................................................................................
‘시민볼모론 되뇌기’는 신문들의 불치병인가?
1일 철도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대부분 언론들이 이번에도 ‘시민불편’, ‘교통대란’을 들고 나왔다. 일부 신문들은 ‘시민을 볼모로 한 불법파업’에 정부가 강경대응 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반면 철도 파업이 왜 벌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노조의 요구는 무엇이며 노동자들은 왜 그와 같은 요구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그동안 공공 부문 파업이 벌어질 때마다 ‘왜’가 빠진 신문들의 일방적인 ‘시민볼모론’ 부각은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을 저버린 보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전철 134호선 출근비상>(조선일보), <수도권 전철 ‘직격탄’…교통대란 우려>(동아일보), <수도권 출근대란 우려>(중앙일보), <열차 70% 스톱 ‘여객대란’>(경향신문) 등 ‘시민불편’을 강조한 신문들의 보도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파업만 일어나면 ‘시민불편’만 집중 부각하는 신문들에게 파업을 제대로 취재할 능력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언론으로서 기본 역할을 방기하는 것인지 다시 한번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는 2일 1면 톱기사 <전철 134호선 출근비상>, 3면 기사 <열차 절반 서고 버스표 동나…역터미널 아우성>, <컨테이너 1000여개 지체 “물류도 비상”> 등을 통해 철도파업으로 인한 ‘교통대란’이 벌어져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물류수송에도 비상이 걸렸다는 점을 집중 부각했다. 3면 기사에 딸린 <철도노조 뭘 요구하나>는 철도 노조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다루기보다 노조가 내세운 “명분”이 무엇인가를 짧게 언급하고 “철도공사측은 해고자복직문제가 핵심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노동계가 대정부 샅바 잡기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초강수를 뒀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춘투를 앞둔 노동계가 정부와의 기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파업을 강행했다” 등 파업을 둘러싼 ‘정치적 배경’을 다루는 데 그쳤다.
이렇게 철도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강조한 조선일보는 4면에 <철도 파업 공권력 동원은 언제쯤 - 이르면 오늘중 경찰 투입할 수도>라는 기사를 실어 정부의 공권력 투입 시기를 점치고 경찰의 파업 대응을 설명했다. 또 사설 <철도 노사 손잡고 파업으로 국민 협박하나>에서는 “엄정한 법 집행만이 노조의 불법파업을 막을 수 있다”, “정부가 철도 파업에 물러터진 대응을 하게 되면 민주노총 파업도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을 펴며 정부의 강경 대응을 거듭 다그쳤다.
같은 날 동아일보도 1면 <열차-수도권전철 파행 운행>, 10면 <막판 타결이냐 교통대란이냐> 등의 기사를 싣고 협상 상황, 열차 운행률, 전철 운행률 등을 설명하며 교통대란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타결’ 아니면 ‘교통대란’이라는 식의 의제 설정은 공공 부문 파업을 다루는 동아일보의 보도 방식이 ‘파업=교통대란’이라는 좁은 틀에 갖혀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앞서 1일에도 동아일보는 <수도권 전철 ‘직격탄’…교통대란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파업이 벌어질 경우 예상되는 교통대란이 2003년 6.28 파업보다 더 극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한편 2일 사설 <철도 불법파업과 이철 사장의 처신>에서 동아일보는 이철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철도노조와 불법 파업에 단호하게 대응하기보다는 인기관리에 더 신경써 온 듯하다”며 “파업 자체를 이 사장이 부추겼다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이 사장을 몰아붙였다. 반면 1 4호선의 운영 주체인 서울메트로(옛 서울지하철공사) 사측의 ‘단호한 대응’을 부각하고 서울메트로의 강경호 사장이 “민간기업 최고 경영자 출신”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섣부르게 ‘민영화 효과’를 슬쩍 끼워 넣었다.
중앙일보 역시 2일 1면에 <철도파업 이틀째 운행률 20% 수도권 출근대란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열차와 전철의 파행운영으로 개학을 맞은 학생과 출근길 시민들이 고통을 겪게 됐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다만 6면 기사 <노조 “적자 역·노선 폐지 철회하라” 공사 “국민세금으로 메우란 말이냐”>는 철도노조와 철도공사 측이 입장 차이를 보이는 쟁점 항목들을 비교함으로써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와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철도의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노조 측 주장과 ‘국민부담’을 이유로 ‘철도 운영의 합리화’를 주장하는 공사 측의 주장을 단순 비교하는 등 양측의 주장을 나열하는 정도에 그쳤다.
양쪽 주장의 단순 나열만으로는 철도공사의 부채 구조, 노조의 철도 공공성 요구와 경영 개선의 상관관계, 철도 공공성 약화에 따른 국민 피해, 철도 부문의 비정규직 양산 문제 등등의 본질적인 문제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경향신문도 2일 1면에 <등교·출근길 ‘교통 대혼란’ 우려>, 8면에 <30분만에 오는 지하철 ‘분통’>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어 ‘파업으로 인한 시민불편’에 초점을 맞췄다. 앞서 지난 1일에도 경향신문은 <열차 70% 스톱 ‘여객대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3면에 실었다.
그런데 2일 <철도파업,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 나와야>라는 사설에서 경향신문은 “파업만 있으면 ‘시민불편’ ‘국민볼모’ 등의 명목으로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백안시하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발상은 이제는 지양됐으면 한다”며 “성숙한 사회라면 파업에 대해 ‘다소 불편하지만 감내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며 노동자들의 딱한 사정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고 해 1면, 8면 보도와 차별성을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는 지적이다.
한편 한겨레는 1일 <철도 운행 큰차질 빚을 듯>, 2일 <열차운행 평소의 42%>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대란’, ‘대혼란’ 등의 용어를 쓰지 않았으나 기본적으로 철도파업으로 인한 부정적 결과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다른 신문들의 보도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2일 4면 <“복직증원” 메아리 없는 기적소리>에서는 노조와 공사 측의 쟁점을 다뤘지만 이 역시 팽팽한 주장을 대립적으로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다.
우리는 신문들이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파업을 지지하든 비판하든 관련 사실보도는 충실히 해주어야 한다.
파업이 일어나게 되는 구조적인 원인, 구체적인 쟁점 사항 가운데 최소한 독자들이 파업의 이유를 알고 판단할 수 있는 정도의 정보는 제공해야 한다. 사실보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파업만 일어나면 “시민불편”부터 들고 나오고 나아가 “시민을 볼모로 삼는다”는 논리만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선동’이지 ‘보도’가 아니다.
우리는 신문들이 심층 보도를 할 수 없다면 최소한 “파업=시민볼모”라는 도식과 선동에서만은 벗어나 사실보도만이라도 제대로 해주기를 거듭 촉구한다.
반복되는 ‘시민볼모론’이 참으로 지겹다. <끝>
2006년 3월 2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