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초등학교 여학생 성추행 살해사건 관련 방송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
등록 2013.08.2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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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유도하는 보도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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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초등학교 여학생을 성추행한 뒤 살해한 사건의 용의자가 검거되었다. 용의자 김씨가 지난해에도 5세 여자 아이를 성추행해 구속기소 되었으나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바로 풀려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법적·제도적 장치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용의자에 대한 공분을 표출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은 성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되돌아보고,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번 사안의 경우 언론은 성폭행에 대한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구조적 차원에서 심층보도를 해야 했다. 그리고 속보 경쟁에 내몰려 아직 명백한 증거조차 확보하지 못한 추가범행 사실을 성급하게 보도하는 것도 지양해야 했다. 그래야만 우리사회의 잔인한 어린이 성폭행사건이 잠깐 동안의 충격으로 끝나지 않고, 제도적인 차원에서 생산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언론의 보도는 성폭행 용의자에 대한 시민들의 감정적 분노를 여과없이 전달했고, 자칫 성폭행 용의자에 대한 인권을 침해할 수도 있는 보도태도를 보여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먼저 MBC는 흥분한 시민들의 반응을 여과 없이 표출하는 무분별한 보도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20일 뉴스데스크의 <분노의 현장검증>은 첫머리부터 용의자 김씨가 타고 있는 차 지붕위로 뛰어 올라가 발길질을 하는 시민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또 현장검증을 위해 자신의 가게로 들어가는 김씨를 향해 모자를 쓸 자격도 없다며 "모자를 벗기라"는 주민의 목소리를 자막과 함께 보도했으며, "그냥 죽여도 안 돼,저런 것은…. 아주 고생고생시키다 죽게 해야지"라는 분노에 찬 주민의 목소리도 여과 없이 그대로 전했다.
이어 21일 <다른 혐의 수사>에서는 살해용의자 김씨를 지난 2004년 발생한 포천 여중생 살해사건의 범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경찰의 추정을 그대로 보도했다. MBC는 '단독보도'임을 강조하며 경찰이 "범행수법 등으로 볼 때 포천 사건도 김 씨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며 그 근거로 '두 사건의 피해자 모두 성폭행 당한 뒤 목이 졸려 숨졌고 시체가 포장용 상자에 담겨 옮겨진 점', '시신의 손톱을 고의로 훼손하는 등 완전범죄를 노렸다는 점', '김씨의 처가가 포천이어서 포천 지리에 익숙하다는 점' 등을 들었다.
하지만 경찰이 용의자의 추가 혐의를 의심한다 하더라도 방송이 이를 보도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용의자의 추가 혐의가 있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이 이를 보도하게 되면 자칫 '기정사실화'시키는 분위기를 조성할 우려가 있다.


MBC의 이 같은 보도태도는 다른 지상파 방송사들의 보도와 비교해 볼 때에도 문제가 있다. 20일 SBS도 <인면수심>이라는 제목으로 현장검증을 보도했으나, MBC처럼 흥분한 시민들의 반응을 여과 없이 내보내지는 않았다. 주민 인터뷰도 "이런 일이 없어야지, 마음 놓고 아이들을 키우고 그러지. 무서워서 어떻게 키우겠어요"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담는데 머물러 MBC와는 차이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MBC의 보도는 현장검증을 보도하는 대신 성범죄의 유형과 재범방지 대책을 집중취재 했던 KBS와는 차이를 보였다.


MBC가 시민들의 극도의 공분을 여과 없이 보도한 것은 성범죄와 용의자에 대한 일시적인 분노를 키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우리사회가 차분하게 성범죄에 대한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금 방송이 보도해야 할 일은 성폭행을 당하고도 피해를 호소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 피해자를 두 번 울린다는 불합리한 수사·재판 과정, 성범죄자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법 등등 우리 사회가 고쳐 나가야 할 점을 꼼꼼하게 짚어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범죄를 엄벌해야 한다는 들끓는 여론에 휩쓸려 자칫 인권침해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조치들까지 섣불리 제도화되지 않도록 냉정한 태도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성범죄 보도와 관련해 지상파 방송3사는 우리나라의 성폭력 범죄에 대한 대책이 미비하다며 전자위치확인제도(전자팔찌) 등과 같은 서구유럽의 사례를 앞 다퉈 보도하고 있는데, 그 효용성과 부작용을 꼼꼼하게 짚어보지는 못하고 있다.
어린이를 상대로 한 반인륜적 범죄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법치주의 사회에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엄격한 법적 절차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며 그 법과 제도가 허술하다면 사회적 논의를 거쳐 보완해야 한다. 또 범죄자에 대한 공분이 아무리 정당하다해도 '사적보복'이 허용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그의 인권까지도 보장해 주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운영 원리이다. 방송 보도가 범죄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이와 같은 큰 룰을 견지하면서 성범죄를 줄일 수 있는 합리적·효과적 제도를 함께 고민해주기 바란다. <끝>

 

 
2006년 2월 24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