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MBC 뉴스데스크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관련 보도 <초콜릿의 그늘>'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2.15)
뉴스데스크 '초콜릿의 그늘', MBC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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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은 이른바 '발렌타인데이'였다. 원래 발렌타인데이는 남녀가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서양에서 유래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과 선물을 주는 날'로 인식되고, 기업들은 초콜릿 판매를 위해 온갖 상술을 동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인끼리 아름답게 사랑을 주고받는 본질적 의미는 퇴색되고 자본의 이윤추구에 '발렌타인데이'가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몇 년 전부터 줄곧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초콜릿의 주재료인 코코아가 아프리카 아동들을 노예처럼 착취해서 얻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발렌타인데이만 되면 무의식적으로 초콜릿을 주고받는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국제노동권리기금(International Labor Rights Fund, ILRF)은 지난 해 7월 전세계 초콜릿 원료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네슬레', '카길',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 등 세계 3대 다국적 초콜릿 기업을 상대로 어린이 인신매매와 강제노동 혐의 소송을 제기했다. 국제노동권리기금의 테리 콜링스워스 사무총장은 국내 언론(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과의 인터뷰에서 "몇 년 전부터 이들 다국적 초콜릿 업체의 아동 노예 노동 문제가 제기됐었고, 업체들은 2005년 7월까지 문제를 시정하겠다고 약속했었지만 지키지 않아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소송이유를 밝혔다.
국제노동권리기금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들 기업은 자신들에게 코코아를 납품하는 서부 아프리카 지역의 농장들에서 인신매매와 고문, 아동 노동착취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해왔다고 한다. 실제로 전세계 코코아의 70% 이상이 생산되는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아동에 대한 광범위한 노동착취가 벌어지고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10여년 전부터 알려지기 시작했고 지난 2001년 영국 BBC 방송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구체적인 실상이 폭로된 바 있다.
또 국제노동권리기금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까지도 농장의 어린이들은 11∼12살부터 노동을 시작해 농장에서 도망쳐 벗어날 때까지 턱없이 부족한 식량과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빈번한 구타를 당하며 강제노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자료에 의하면 약 30만명 정도의 어린이가 서부 아프리카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중 64%가 14세 이하이고 인신매매로 팔려온 경우가 1만 2000명이나 되며, 임금을 받는 어린이는 5100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콜링스워스 총장은 네슬레 등 다국적기업들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문제를 고치고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문제를 바꿀 능력이 있다"며 그럼에도 "이들 기업이 문제를 고치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문제가 잠잠해질 때까지 시간을 끌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콜링스워스 총장에 따르면 이들 기업들이 문제를 개선하지 않는 이유가 '가장 싼 가격으로 초콜릿 원료를 구하는 것이 자신들의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다국적 기업이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대신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다는 말이다.
국제노동권리기금이 제기한 이 소송으로 지난 2월 6일 로스앤젤레스 연방지역법원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미국에서는 발렌타인데이를 앞두고 이 공판에 많은 언론과 시민들의 관심이 모아졌고, 실제로 '아동을 노예로 이용한 초콜릿을 연인과 주고받지 말자'는 주장도 소비자들과 언론매체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못지 않게 유별나게 발렌타인데이를 보내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사실이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중앙일보 등 일부 신문에서 국제노동권리기금의 소송을 다룬 미국잡지 '타임'지의 기사를 소개한 뒤, CBS 라디오가 콜링스워스 총장을 인터뷰하고 인터넷매체 '프레시안'이 이를 보도한 것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와중에 방송3사 메인뉴스프로그램 가운데 유일하게 MBC '뉴스데스크'가 이 사안을 약 2분 11초에 걸쳐 상세히 보도해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대한 시청자들의 경각심을 일깨웠음은 물론, 발렌타인데이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했다.
권재홍 미국특파원의 리포트로 보도된 <초콜릿의 그늘>은 앵커멘트에서부터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즐겁게 지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 이면에는 어두운 그늘도 있다"며 "초콜릿 원료인 코코아농장에서는 흑인 소년들이 인신매매와 학대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관련 내용을 소개했다.
권특파원은 미국의 발렌타인데이 축제분위기를 소개한 다음 "하지만 이 축제의 그늘에는 아프리카의 슬픔이 깔려 있다"며 국제노동권리기금이 제공한 화면과 함께 아동노동착취의 충격적인 실상을 보도했다. 권특파원은 화면에서 보여진 코코아 열매를 말리는 어린이들이 "거의 모두 이웃나라 말리에서 팔려온 10대 소년들"이었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인신매매된 이들은 총을 든 경비들에게 둘러싸여 노예처럼 살아간다"고 전했다. 또 "탈출하다가 잡히면 상상할 수 없는 형벌이 내려진다"며 실제 탈출하다 붙잡혀 나무에 묶여서 팔이 부러진 사례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28만명의 소년들이 서아프리카의 코코아농장에서 저임금과 착취에 시달리고 있다'는 국제노동권리기금의 주장과 다국적 기업에 대한 소송 내용도 소개했다.
이 보도의 마무리는 특히 의미 있었다. "발렌타인데이 때 연인들의 사랑을 녹이는 초콜릿. 하지만 그 달콤함 속에는 아프리카 10대 소년들의 뼈를 녹이는 혹사, 처절한 눈물이 배어 있다"는 권특파원의 마지막 멘트는 시청자들이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에 대해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MBC에서 소개된 이 같은 내용은 KBS와 SBS의 메인뉴스프로그램에서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그나마 SBS '8시뉴스'가 <"스트레스 데이">에서 "1년 내내 쏟아지는 국적 불명의 각종 기념일, '재미'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또 다른 스트레스에 원인이 되고 있다"며 발렌타인데이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해 차별성을 보였지만, 다루는 방식이 너무 가벼워 문제제기의 진정성을 느끼기 힘들었다. 초콜릿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이 보도는 "초콜릿을 건낼 사람이 있어도 고민, 없어도 고민"이라며 '작년보다 더 좋은 걸 해줘야 한다', '친구들은 받는데 난 못 받는다'는 등의 부담을 토로하는 시민들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이러한 부담 때문에 '안티까페'까지 생겼다며 "집에 있는게 제일 편하다"는 인터뷰도 소개했다.
발렌타인데이만 되면 기업과 각종 매체들이 소비를 부추기는 등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함에도 SBS는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심리적 감정'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전문가 인터뷰에서도 '발렌타이데이 증후군'에 대해 "내가 뭔가를 해줘야 된다든지 심리적으로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현상에 대한 분석에 불과할 뿐 '또 다른 스트레스'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기 힘들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뭔가를 해줘야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업들의 마케팅, 매체들의 여론몰이 등 우리 사회의 발렌타인데이 문화를 심리적 차원을 넘어서 구조적인 차원에서 짚어야 했다.
이밖에 SBS는 발렌타이데이 외에 이른바 '화이트데이'나 '블랙데이'를 언급하며 "1년 내내 쏟아지는 국적 불명의 각종 기념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그래픽을 통해 각종 기념일이 정확히 언제인지 알려주는 등 '정체불명의 기념일'을 알지 못했던 시청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스트레스'를 확산시키는데 기여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게 했다.
한편 KBS는 메인뉴스프로그램인 '뉴스9'에서 발렌타인데이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 생뚱맞게 해외소식을 다루는 중 과정에서 '마호메트 풍자만평'에 분노한 이슬람 여성들의 '발렌타인데이 반대 시위'를 소개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KBS 2TV의 데일리시사프로그램인 <생방송 시사투나잇>은 '달콤한 '초콜릿'-씁쓸한 '아동학대''에서 약 4분 20초에 걸쳐 "마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묘약으로 알려진 초컬릿, 그러나 이 초콜릿이 인신매매로 팔려간 아동들의 노동착취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며 국제노동권리기금의 소송 내용을 소개해 그나마 공영방송의 역할을 했다.
우리는 14일 보도된 <초콜릿의 그늘>이야말로 'MBC다운 보도'라고 평가한다. 올해 들어 MBC는 연초부터 지나칠 정도로 '오버'해서 월드컵 분위기를 띄우는 등 시청률에 연연하는 모습을 적지 않게 보이고 있다. 하지만 MBC다운 색깔 없이 시청률에 연연할수록 계속해서 '시청률 부진'으로 빠져들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뉴스데스크'에서 <초콜릿의 그늘>같은 보도가 다수를 이뤄 MBC가 스스로의 역할을 다하길 바란다. <끝>
2006년 2월 15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