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전략적 유연성 정부문서 공개 관련 방송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2.10)
'전략적 유연성' 관련 공동성명, 심층보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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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0일 발표된 '한미장관급 전략대화 공동성명', 즉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관련된 정부 비밀문서들이 잇달아 공개되면서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반기문 외교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합의한 공동성명의 주요 내용은 1)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2)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로 되어 있다. 압축하자면, 한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되 한국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하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다.
이 같은 공동성명의 내용은 발표 직후부터 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논란의 핵심은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전면적으로 합의했는지' 여부이다. 이번 합의로 인해 중국과 대만의 양안분쟁 등 동북아 급변사태에 미국이 개입할 경우, 우리나라가 미군의 전초기지로 전락하면서 자동적으로 분쟁에 휘말릴 것이라며 한반도 평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게 되었다. 다시 말해 공동성명의 2항이 1항에 대해 크게 구속력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예측되면서 공동성명에 주한미군의 이동과 관련한 통제장치를 마련하지 못해 미국이 우리 정부와 아무런 협의 없이 자신들 마음대로 병력을 한반도 바깥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는 우려가 크게 제기된 것이다. 다른 한편, 이번 공동성명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위배하는지 여부와 정부가 국회동의 과정을 피하기 위해 '성명'을 택한 것이 아니냐는 절차상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또 정부에서는 '동북아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며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공동성명의 내용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정부의 인식이 지나치게 안이하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유일하게 '전략적 유연성'의 본질적 문제에 접근한 KBS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만큼 방송들은 이러한 '논의'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최대한 한반도 평화에 위협이 되지 않는 길을 찾도록 노력했어야 했다. 하지만 방송3사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 소식이 전해졌던 1월 20일부터 1∼2건 보도를 다룬 것 외에는 이 사안에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또한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과 인터넷언론 '프레시안'의 잇단 정부 비밀문서 공개로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논의가 수면위로 부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들은 '전략적 유연성'이 한반도 평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따지는 본질적인 접근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나마 KBS가 2월 2일 <전략적 유연성 논란>에서 "한·미 두 나라가 타결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놓고 국내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며 '전략적 유연성'의 본질에 접근했다. 특히 이 보도는 공동성명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된다는 주장에 대해 '미국이 자의적으로 주한미군을 빼는 것은 외부의 무력공격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한국에 주한미군을 주둔시킨다는 한미상호방위조약 정신에 맞지 않다는 것'이라며 상세히 설명했다.
또 "주한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상호 방위 조약 정신과 반대로 한반도 위기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며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들이면 그 동안의 방어 동맹이 공격형 동맹으로 전환되고 한국은 미국의 신군사전략의 전초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비록 설명이 부족하긴 했지만 만약 '무력공격'에 대한 '방어' 목적으로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에 따라 한반도 외 분쟁에 공격적으로 개입한다면 우리도 자동적으로 미국 편에 설 수밖에 없고 특히 동북아 분쟁이 발생할 경우 우리가 미군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는 중요한 대목을 짚은 것이다.
특히 KBS 메인뉴스프로그램인 '뉴스9' 이후 방송되는 '뉴스라인'에서는 약 5분 30초에 걸쳐 '전략적 유연성에 인도적 활동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한 정부를 비판하고, 가장 우려되는 상황이 동북아 급변사태 발생 시 주한미군 이동이며 따라서 한미상호방위조약 위반 요소가 있다'는 내용을 상세히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물론 KBS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비판 의견뿐만 아니라 "정부의 논의가 자의적으로 해석됐다며 유감을 표시"하는 청와대의 반박도 비중있게 다뤘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 이동시 사전협의'와 관련해 "사전협의를 명문화하는 것은 주한미군의 대외활동에 공동책임을 진다는 위험부담도 같이 있다"는 조성렬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센터장의 인터뷰를 소개하며 '사전협의 명문화'가 오히려 분쟁에 개입하는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정부 주장을 설명했다. 이는 시청자들이 '사전협의'를 판단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사전협의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왜 명문화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이라고 언급하는데 그쳐 시청자들의 경우 KBS 보도만으로는 '사전협의가 불필요한 것'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었다. 사전협의가 의무화되지 않을 경우 미국이 마음대로 주한미군을 한반도 이외 지역으로 이동시키더라도 아무런 제재장치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뜻과는 무관하게 자동적으로 국제분쟁에 휩쓸리게 된다는 비판도 충분히 설명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KBS의 이 보도는 방송3사의 보도 가운데 가장 돋보였다. 반면 MBC와 SBS는 '전략적 유연성'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접근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밀문서 '유출', '갈등' '혼선'으로만 부각
한편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2월 1일 열린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관련 토론회에서 NSC(국가안전보장회의) 회의록을 공개한 데 이어 2일에는 NSC 내부문건을 공개하고, 뒤이어 4일과 6일에는 인터넷매체 '프레시안'이 외교부와 NSC의 '전략적 유연성' 협상과 보고 등을 문제삼는 청와대 국정상황실 문건을 공개해, '전략적 유연성'이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외교라인의 혼선, 국정최고책임자에 대한 '기망' 등 여러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최의원이 공개한 회의록에 의하면 정부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을 사전에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합의할 경우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는 등 국회 동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피하기 위해 '공동성명' 형태를 취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NSC 내부보고서와 국정상황실 문건('전략적 유연성 현안에 대한 국정상황실 의견') 등에 의하면 2003년 외교부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지지'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한 '외교각서 초안'을 미국과 교환하면서 대통령과 NSC에 보고조차하지 않았고, 이 사실을 확인한 NSC 또한 대통령에게 1년 동안 이를 보고하지 않는 등 외교라인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 또한 드러났다.
따라서 방송들은 비밀문서 공개로 드러난 사실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로 인한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따져야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방송은 '비밀문서 유출'에 더 큰 초점을 맞추거나 정부 내 '자주파 VS 동맹파 갈등' 심지어 '강경 자주파와 온건 자주파 사이의 갈등' 따위를 부각하는데 집중했다.
물론 참여정부 내부에서 '비밀문서'가 잇달아 유출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밝히고, 유출되는 과정에 정부 내 세력간 갈등이 있었다면 이 사안 또한 있는 그대로 보도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러나 보도의 중심은 '전략적 유연성' 논의에 맞춰져야 했지만, 방송은 '갈등'만 부각함으로써 '본질 흐리기'와 '의제왜곡'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MBC는 2일 <전략적 유연성 파문>에서 "외교부가 청와대 보고도 없이 주한미군의 전략사업 유연성을 주장하는 내용의 외교각서를 미국과 교환했다는 주장이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며 NSC 내부보고서의 내용과 논란을 다뤘다. 이 보도는 "외교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지지하는 외교각서를 2003년 10월 미국과 교환하고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며 NSC 내부보고서를 공개한 최의원의 입장을 인터뷰와 함께 소개하고, "당시 외교각서에는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지지한다는 내용과 한미 방위공약 유지와 한국의 안전 고려 등 우리나라의 우려사항도 포함됐다"는 보고서 내용도 보도했다.
하지만 여기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MBC는 NSC가 어떠한 이유로 보고서를 작성하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고, 따라서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외교라인에서 빚어진 혼선에 대해서도 보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언급만으로는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보고서 내용을 나열하고 '실제 외교각서가 아니다'는 청와대의 반박을 소개한 다음, "청와대가 여당 의원의 문서 공개 경위를 조사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파장이 예상된다"는 식의 전망에 그친 것은 사안의 중요성에 비춰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도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 3일 <공개 일파만파>에서는 '비밀문건 공개'와 관련한 '청와대-여당-정치권'의 논란을 다루는데 그쳤고, 4일에는 '비밀문서 유출'이 "정치권 일각에서는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이종석 NSC 사무차장을 낙마시키기 위한 특정세력의 음모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며 "일각에서는 청와대 내부암투설까지 나오고 있다"고 보도해 의제설정의 방향을 '갈등'에 맞춰버렸다.
한편 KBS는 '전략적 유연성'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위배되는 문제에 잘 접근했으면서도 위반할 경우 '조약개정'과 '국회 동의' 등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는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고, 정부가 '한미상호방위조약 위반'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등 최의원이 공개한 NSC 회의록의 내용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았으며, '외교각서 초안 교환' 등 NSC 내부보고서에 대한 소개도 없었다. 그저 이어진 단신에서 "청와대는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NSC, 국가안전보장회의 회의록을 공개한 경위 파악에 들어갔다"며 "NSC 상임위원회 회의록은 3급 비밀문건인 만큼, 유출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회의록을 유출시킨 공무원을 색출해 처벌할 것"이라는 청와대 입장을 전하는데 그쳤다.
이후에도 '비밀문건 공개파문'의 의미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고 최의원과 프레시안의 문서공개로 드러난 정부 외교라인 협상과정의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하지 못했다. 그러다 6일에 가서는 "최근 청와대 내부 문건이 잇따라 유출, 공개되면서 볼썽사나운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며 "이같은 문건 유출이 이른바 자주파 내의 강경파와 온건파의 갈등설 등 외교 안보 라인의 난맥상으로 비치는 현실이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고 '갈등'을 부각하는 것으로 옮겨갔다.
초지일관 갈등을 부각시킨 SBS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방송은 SBS였다.
SBS는 최의원의 공개로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지던 1, 2일에 이를 전혀 다루지 않다가 3일 <대미노선 갈등>에서는 공개된 문서의 내용이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한 논란은 조금도 설명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라크 추가 파병 등 대미 외교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불거졌던 이른바 반미 자주파와 친미 동맹파 간의 갈등이 재연될 조짐을 보인다"며 아예 처음부터 '갈등'만 부각하고 나섰다.
이 보도는 최의원이 공개한 NSC 회의록과 보고서의 내용은 전혀 다루지 않은 채 "최재천 의원은 참여정부가 미국 편향 외교를 펴고 있다고 공격했다", "기밀 문건을 정부 내부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것으로 전해져 여권 내에 이종석 체제에 대한 조직적인 반대 움직임까지 감지되고 있다", "이종석 내정자는 최 의원의 문제제기 방식에 불만을 토로했다", "여당측 (국회 통외통위)간사인 이화영 의원은 최 의원을 비판했다", "청와대는 사태 진화에 나섰다"는 등 '청와대-열린우리당-최재천 의원' 사이의 갈등양상을 다루는데 급급했다.
한편 '한미FTA 협상'에 대해 "한미 관계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전한 보도에 이어진 <대미노선 갈등>은 보도시작부터 "이 외에도 엄청난 파급효과가 한미 관계 전반을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며 '전략적 유연성'과는 다른 사안인 FTA협상의 파급력을 다시 한 번 부각했다. 그런 다음 "이런 와중에 여권 내부에서는 대미 외교노선을 둘러싼 해묵은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며 교묘한 편집과 앵커멘트로 여권 내부의 '갈등'을 부각했다.
SBS는 4일에도 "NSC가 한미간의 중요한 협상내용을 1년이 넘도록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내부문서가 또 공개됐다"면서 정작 '중요한 협상내용'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하지 않고, "대미 외교정책 노선을 둘러싼 여권내 갈등이 폭로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갈등'만 부각했다.
한편 방송들은 이종석 통일부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다룬 보도에서도 '전략적 유연성'의 내용과 정부 외교안보라인에서 불거진 문제를 점검하기보다 한나라당의 색깔공세에 초점을 맞춰버렸다. 그리고 인사청문회가 끝난 이후 '전략적 유연성' 관련 내용은 방송에서 사라졌다.
우리 회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한반도 평화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는 중요한 사안임에도 방송이 심도깊게 다루지 않은데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처음부터 초지일관 갈등만 부각해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시청자들의 판단에 혼란만 가중시킨 SBS의 보도태도에 대해 강한 실망과 우려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 평화'라는 중대한 사안을 '갈등 부각', '편가르기', '중계식 보도'로 초지일관한 보도태도는 아무리 민영방송이라 하지만 의제설정 기능에 심각한 의구심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SBS는 '우리 정부가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에 참관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을 때도 이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보도하지 않은 채 "한국과 미국이 대북 제재 문제를 둘러싸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며 '위폐문제'와 관련한 '한미갈등'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한 바 있다.
두 공영방송이 '전략적 유연성'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나 외교라인의 협상 과정의 문제에 중점을 두던 것에서 일탈해 '정부 내 갈등'으로 초점을 옮긴 것도 아쉽다. '정부내 강경자주파와 온건자주파의 갈등'을 부각하며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생산적 논의를 가로막는 일부 신문들의 의제설정으로부터 여전히 공영방송들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아닌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기밀문서'를 공개한 과정의 적절성 여부는 그 자체로 따져봐야겠지만, 이미 공개된 내용을 보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합의하는 과정에 많은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고,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본질적 문제제기 또한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 밝혀졌다. 따라서 방송들은 '반짝보도'에 그치지 말고 이후 심층보도를 통해 보다 냉철하게 '전략적 유연성'이 한반도 평화에 미치는 영향을 진지하게 다뤄주길 바란다. <끝>
2006년 2월 10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