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삼성의 '국민께 드리는 말씀' 관련 신문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2.9)
조·중·동, 8000억원 사회 환원하면
'지배 구조', '편법 경영 승계'도 면죄부 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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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삼성그룹은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불법 대선자금 제공,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안기부 엑스파일 파문' 등에서 물의를 일으킨 점을 사과했다. 또한 △총 8천억원 상당의 사회헌납 △공정거래법 헌법소원 등 취하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 운영 △구조조정본부 축소를 약속했다.
우리 회는 삼성의 발표가 그동안 불법적이고 탈법적인 행위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던 태도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변화를 보인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삼성 문제의 핵심으로 지목돼 온 지배구조 문제나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및 경영권 승계 등에 대해서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 않아 이번 발표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번 발표가 비판여론 무마용이거나 불법·탈법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더욱 더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극소수의 주식만으로 금융 계열사와 구조조정본부를 이용, 삼성그룹 전체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반면 이번 발표에서는 금산법과 지주회사법 문제를 피해갔으며, 그룹 내에서 전권을 휘두르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았던 구조본도 폐지가 아닌 축소에 머물러 기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또한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은 이재용 상무에게 1조여원의 부당 이익과 경영권 승계까지 안겨주었다. 그 결과 이 상무는 에버랜드를 통해 이재용 - 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그룹의 지배권 승계를 확고히 했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서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 당시의 부당이익 일부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것 말고는 이런 편법행위에 대한 해결책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게다가 삼성이 발표한 이 상무의 부당이익에 대한 800억원의 출연도 이 상무가 1조여원의 부당이익을 얻은 것에 비하면 한참이나 모자라는 액수다. 삼성의 8000억원 사회 환원은 편법 증여와 경영권 승계를 무마하려는 얕은 술수에 불과할 뿐이다.
삼성은 이 외에도 작년 안기부 'X파일'로 불거진 불법 정치자금 제공에 대해 소상히 밝히기는 커녕 이번 발표에서 다른 사안과 뭉뚱거려 '사과'함으로써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고 있다. 또한 '무노조'를 고수하면서 자행한 불법적인 '핸드폰 위치추적'과 '린치' 등 노동조합 설립 방해에 대해서도 그 어떠한 대국민 사과도 없었다.
이렇듯 삼성의 '국민께 드리는 말씀'은 지배구조 문제나 경영 대물림 등 핵심 문제를 도외시한 채 표피적인 해결책에 머물고 있지만 수구·보수 신문들은 삼성의 발표를 긍정 일색으로 보도하는 한편 8000억원 사회 환원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해석하는 보도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8000억원 사회 환원을 '시민단체와 정권의 강압에 의한 헌납'이었다는 왜곡된 보도와, 이번 발표가 '여론의 기대와 뜻을 존중한 것으로서 삼성이 최선의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식의 띄우기로 국민을 호도했다.
조선일보는 8일자 사설 <이건희 회장 일가 8000억원 헌납을 보며>에서 그동안 삼성의 행태에 대해 "법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서 모든 것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삼성의 자성을 촉구했다. 하지만 8000억원 헌납에 대해 "자본주의의 건전한 발달에 유해한 전례"가 될 수 있다며 "강압적 군사정권하에서 번번이 되풀이되던 재산 헌납의 과거사에 비추어봐도 분명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은 이날 기사에서도 '8000억원 사회 환원'을 부각하는 한편 이번 조치에 삼성 문제의 핵심이 제외됐다는 한계 지적에는 인색한 보도 태도를 보였다.
동아일보도 삼성의 8000억원 사회 환원을 부각하는 한편 이에 대해 불편한 심기도 드러냈다. 동아는 <이건희 회장 일가의 '국내 최대' 사재헌납>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8000억원 사회 환원이 '국내 최대 규모'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기업 기부문화에 전기 마련'이라고 과대평가했다. 다른 한편 동아는 "정치권력이나 시민단체 등이 기업을 압박해 항복을 받아내는 식으로 사재 헌납을 유도해서는 곤란", "노무현 정권과 일부 시민단체 등의 집요한 '때리기'에 삼성이 밀렸다는 느낌"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마치 시민단체와 정부의 강요에 의해 사재 헌납이 이루어진 것처럼 몰아가는 보도 태도를 보였다. 또한 "이런 결정이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는 법과 규범보다 정부와의 관계 개선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여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동아는 기사에서도 이번 발표가 "주식 변칙증여와 관련한 시민단체의 요구와 지배구조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을 대부분 수용 한 조치"라고 평가하면서 삼성의 사재 헌납을 두둔하기까지 했다.
중앙일보는 삼성과 특수 관계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중앙은 사설 <삼성의 변신 노력 합당한 평가 있어야>를 통해 "삼성은 곱지 않은 사회적 시선이 억울할 수도 있다"며 삼성을 감싸는가 하면 삼성의 변칙 증여 등 그동안의 불법·편법적인 행태를 두고 "'사회와의 의사 소통' 부족" 쯤으로 치부했다. 또한 "'국민정서'라는 애매한 잣대로 삼성 때리기에 골몰한다면 이 땅에서 배겨날 기업은 없다"고 주장하고, 삼성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황금거위를 제 손으로 죽이는 일이나 다름없다"며 비판세력에 대한 음해까지 곁들였다. 중앙은 기사에서도 이번 발표가 '여론의 기대와 뜻을 존중'한 삼성의 '파격적 해법'이고, 거액의 사재 출연은 '참모나 주위에서 건의한 사항이 아닌 이건희 회장이 깊이 고민하고 내린 결단'임을 부각했다. 기사는 1994년 10월 국내 최초로 사회공헌 전담 조직 발족 연간 삼성 사회공헌 활동 집행 액 그래프 삼성의 투자 규모 신규고용 규모 등을 소개하며 철저히 삼성의 편에 서서 보도하는 태도를 보였다.
반면 삼성의 발표를 바라보는 경향과 한겨레의 평가와 보도 태도는 냉정했다.
경향은 <삼성 사회 환원 발표, 위기 모면용 안되려면>이라는 사설에서 "삼성의 이번 다짐이 위기 타개를 위한 고육책이나 1회용 세리머니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어 과거 삼성자동차 처리에서 이건희 회장이 사재출연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아 "(이번)사회 환원 발표가 위기 모면용이라는 의심을 받을 만한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회장이 편법증여·'X파일' 문제 해결에도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겨레는 1면과 5면 기사를 통해 삼성의 발표가 '근본해법에는 미흡'하다며 '세금 없는 대물림', '지배구조 개선' 등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한겨레는 사설 <이건희 회장과 삼성의 더 큰 결단을 기대한다>에서 "한걸음 나아간 모습"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이제 갓 변화를 보인 것일 뿐이라는 냉혹한 평가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삼성의 발표 내용에는 근본 문제에 대한 "절실한 반성과 뚜렷한 대안 제시가 없다"고 일축했다.
삼성의 발표는 그동안 삼성이 받아왔던 비판의 핵심 문제인 지배 구조개선과 에버랜드 전환사채에 대한 이재용 상무의 부당이익과 경영권 승계에 대해 납득할 만한 조치를 담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의 발표가 그간의 삼성 관련 핵심 사안 등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제시라기 보다는 여론 무마용이나 국면 전환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 수구·보수 신문들은 삼성의 발표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심지어는 삼성의 편법적인 행위에 대한 비판을 무분별한 '때리기'나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재벌 헌납'과 동일시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에 대한 건강한 비판은 실종되었으며, 국내 '최대 재벌'에 대한 '떠받들기'만 횡횡했다. 이들의 눈에는 삼성의 구시대적인 '제왕적 지배 구조'와 편법 증여를 통한 경영권 승계는 보이지 않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검찰과 정치권에 당부한다. 우리 회는 삼성의 발표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에 대한 수사와 'X파일' 특검·특별법 제정에 모종의 영향을 미치기 위한 포석은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지난 해 안기부 'X파일'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삼성의 로비가 정치권, 검찰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던 점을 상기한다면 우리 회의 우려가 '기우'가 아님은 분명할 것이다. 차제에 '삼성 장학생'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검찰과 정치권은 철저한 수사와 법 제정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길 바란다. <끝>
2006년 2월 9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