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서울중앙법원의 언론중재법 위헌법률심판 제청' 관련 조·중·동 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6.1.25)
법원은 언론피해자들의 인권에는 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가
.................................................................................................................................................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5부(재판장 김선흠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약칭 언론중재법)에 대한 조선일보의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언론중재법은 그동안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의 구제방법이 민법, 정기간행물법, 방송법 등 각종 법률에 흩어져 있으면서 그 범위가 제한적이고 구제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등 실질적 피해구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여야합의에 따른 단일법으로 실효성 있는 피해구제를 하기 위하여 새로이 제정, 작년 7월 28일부터 시행된 법이다.
이번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은 날로 증가하고 있는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를 외면하고, 이제 막 시행되고 있는 언론중재법의 효력을 사실상 중지시키는 것으로서 대단히 우려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대해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천군만마라도 얻은 듯 일제히 사설을 통해서 언론중재법에 대한 비난과 악의적 왜곡에 나섰다.
이들은 <법원이 위헌심판 청구한 언론 악법>(23일 조선), <법원이 위헌 소지를 제기한 언론중재법>(23일 동아), <법원도 위헌소지 우려한 언론관계법>(24일 중앙)을 통해 언론중재법이 '비판언론을 통제하려는 의도',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악법',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인 법이 언론자유에 대한 과잉 억압을 통해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 '조중동 등 비판언론을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도 "문제된 보도가 공적 관심사에 관한 것인지, 기사 성격상 신속히 보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는지, 전체적으로 중요한 진실을 담고 있는지를 완전히 무시"(조선)하고 있으며, 이 법대로라면 "언론은 대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린 사안만 보도하든지, 아니면 거의 대부분의 지면을 정정보도와 반론에 할애해야 한다"(중앙)고 주장했다. 이는 '의혹 제기 보도를 하지 말라고 강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아래와 같은 측면에서 어불성설에 가깝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언론중재법 제14조 제2항 및 제31조 후문의 규정은 '잘못된 언론보도에 있어서 언론사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성이 없어도 정정보도가 가능'하게끔 한 규정이다. 이는 그동안 오보로 인한 언론사의 책임에 관하여 금전적 손해배상뿐만 아니라 오보를 바로잡는 정정보도까지도 그 근거를 고의·과실 등의 귀책사유를 요구하는 일반 민사상 불법행위에 두고 있어 왔기 때문에 사후에 보도 내용이 허위임이 밝혀져도 보도 당시 언론사에게 과실이 없다면 손해배상은 물론 정정보도도 하지 못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서 도입된 규정이다.
즉 보도 내용이 허위이나 보도 당시 언론사에게 고의·과실이 없다면 손해배상책임은 묻지 않고 오보를 바로잡는 정정보도는 하게 하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자기에 대한 보도가 허위임이 밝혀졌는데도 언론사에게 고의·과실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바로잡는 정정보도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얼마나 억울한 심정이겠는가. 언론사의 입장에서도 비록 보도 당시 고의·과실이 없었다 하더라도 사후에 오보임이 밝혀졌다면 피해자가 요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스스로 이에 대한 정정보도를 하는 것이 정론으로서의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언론사의 고의·과실이 없다고 하여 정정보도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오보를 방치시키고 그로 인한 피해를 계속 유지·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역시 위헌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언론중재법 제26조 제6항은 정정보도 등의 청구소송을 가처분 절차에 준하여 진행하도록 한 규정이다.
오보로 인한 피해는 그 파급력이 대단히 신속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구제 역시 신속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으며, 시간이 경과하면 할수록 피해구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특수성이 있다. 그러나 종래 일반 소송절차에 의해서 진행되는 피해구제는 소송 진행에만 6개월 내지 1년 이상이 걸리면서 정작 피해자가 승소를 하더라도 이미 피해자의 인생은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정정보도 몇 줄이 실리더라도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게 되는 등 사실상 피해구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점이 있었다.
따라서 언론소송에 있어서 신속한 소송진행은 필수적이며, 가처분절차에 준하도록 한 언론중재법의 규정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다. 가처분절차에 준한다고 하여 무조건 소송진행이나 심리가 졸속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법원실무에서도 보전처분으로서 가처분절차, 특히 채권자에게 실질적 만족을 가져오고 채무자에게 중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신청 등의 경우에는 본안소송에 버금가는 신중하고 세밀한 심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언론소송이 가처분절차에 준하여 진행되는 경우가 위헌이라면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 역시 위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언론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서 군림하고 있으며, 인터넷 등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오보로 인한 피해를 그 양과 질에 있어서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
이번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제청결정은 이와 같은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약자인 언론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강자인 언론사들의 자유만을 일방적으로 앞세운 것으로서 피해자의 권리구제라는 법원의 책무를 망각한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번 결정은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할 권한이 없는 법원으로서는 특정 법률이 여야 합의에 따라 제정·시행 중이고, 헌법에 조화되는 것으로서 해석될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원칙적으로 합헌이라고 해석해야 된다는 이른바 '합헌적 법률해석의 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설령 재판부가 위헌의 의심이 있다 하더라도 현재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사들에 의해서 언론중재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이미 제기되어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이므로 그 위헌 여부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성급히 위헌심판제청결정을 하여 사실상 언론중재법의 효력을 중지시킨 법원의 결정은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일부 수구·보수 신문들이 '약자 보호'라는 법 제정 취지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언론중재법을 정권에 대해 '비판하는 언론을 통제하려는 의도'라든지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악법'이라고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법원은 언론피해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적극 노력해야 하며 조·중·동은 견강부회로 더 이상 국민들을 기만하는 행태를 중단하고, 참된 언론자유와 권리는 공정보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직시하길 바란다. (끝)
2006년 1월 25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