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비전향장기수 묘역 관련 일부 신문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5.12.5)
‘최소한의 관용’도 안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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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과 한나라당이 불교단체가 종교적 차원에서 벌인 비전향장기수 사후(死後) 후원사업을 뒤늦게 문제 삼아 정권에 대한 색깔공세까지 펴고 있다.
지난 5월 실천불교전국승가회는 파주시 보광사에 비전향장기수들의 묘역을 만들었다. 당시 실천불교전국승가회는 “비전향장기수들의 사상에 대한 시시비비를 떠나 부처님의 자비사상을 바탕으로 불교계가 나섰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유명 영화배우의 외조부가 포함됐다는 사실이 일부 매체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6개월 가까이 지난 11월 한 극우잡지가 이 묘역의 조성을 문제 삼는 기사를 내보내고, 12월 1일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들이 이를 기사화하면서 새삼 ‘문제’로 불거졌다. 이들 신문은 묘비 등에 비전향장기수가 ‘통일애국열사’, ‘선생’ 등으로 지칭된 것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조선일보는 2일 사설 <대한민국 안의 ‘애국열사릉’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사설까지 쓰면서 ‘총공세’를 퍼부었다. 조선일보는 비전향장기수 묘역을 북한의 ‘평양 애국열사릉’과 비교하면서 “남과 북이 대한민국 체제를 공산화시키기 위해 신명을 바쳤던 간첩과 빨치산을 ‘열사’와 ‘영웅’으로 함께 받들어 모시고 있는 것”이라며 “작년 대통령직속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간첩 출신을 민주화운동가로 모시기로 할 때 이미 이런 일이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또 “통일애국투사 묘역을 만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전 보광사 주지 효림 스님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와 실천불교전국승가회 공동의장 등을 맡고 있어 대한민국 역사를 다시 쓰는 일에도 힘을 보탤 듯 하다”, “간첩을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로 추앙하는 스님과 80년대부터 미군철수를 주장했다는 걸로 선각자인 양하는 신부님이 대한민국 역사를 어떻게 바로 세울지는 보나마나”라는 등의 주장을 펴면서 진행 중인 과거청산 작업에까지 색깔 공세를 폈다.
같은 날 동아일보도 <‘간첩애국자’>라는 칼럼에서 “노무현 정권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인하는 ‘눈앞의 반역’에 눈감은 채 ‘과거사 정리’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 “국립묘지에 누워 계신 순국선열이 통탄할 일이다”라며 예의 ‘국가정체성’을 들고 나왔다.
비전향장기수의 묘역은 정부 차원에서 만들어진 국가적 기념사업이 아니다. 종교단체가 이념을 초월해 자신들의 종교적 가치에 따라 추진한 사업이다. 묘역을 만들면서 비전향장기수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사회 일반의 정서에 맞지 않는 호칭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국가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양 몰아가는 것은 호들갑이다. 이들에 대한 호칭이 정부차원에서 공인되거나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이 아닌 이상 ‘국가정체성’ 논란을 벌일 필요가 없다.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최소한의 ‘관용’의 정신을 보여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언론의 호들갑에 제1야당까지 부화뇌동하고 나섰다. 2일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에서는 간첩이 애국지사 대접 받는가?>라는 논평을 내고 “정보관련 최고 책임자와 행정감독 책임자인 행자부 장관에 대해서도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간첩과 빨치산에 의해 희생된 진정한 애국열사에게 이 정권은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이와 같은 일부 신문과 한나라당의 공세가 벌어지자 묘비가 훼손되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파주시는 보광사 측에 묘역 철거를 지시했다고 한다.
비전향장기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분단의 비극 속에서 수십 년을 갇혀 살았고, 때로 반인륜적인 고문으로 전향공작의 대상이 되는 등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사후에라도 편히 쉬게 한다는 취지에서 종교단체가 묘역을 만든 것마저 관용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안보’가 취약한 것인가?
우리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과 한나라당이 이번 일을 침소봉대하는 의도를 모르지 않는다. 틈만 나면 과거청산을 흔들어왔던 이들은 민간 차원에서 비전향장기수의 묘역을 조성한 것을 두고 정부 차원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역사 다시쓰기’인 양 몰아 과거청산 전반의 정당성을 훼손하려들고 있다.
우리 사회가 관용의 정신을 갖고 성숙된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데 있어 이같은 행태가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들은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악의적 의제설정을 중단하라. 덧붙여 한나라당은 제1야당의 품위 유지를 위해서라도 일부 신문의 ‘뒤늦은 선동’에 무조건 부화뇌동하는 부끄러운 행태를 자성해보기 바란다. <끝>
2005년 12월 5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