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천정배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과 강정구 교수 관련 방송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5.10.15)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면 차라리 침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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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천정배 법무부장관이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수사를 지시하자 그 동안 강교수에 대해 이념공세를 퍼부어왔던 일부신문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런데 강교수에 대한 일부 신문들의 '색깔공세'에 그 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방송보도가 천장관의 지휘권 발동에 대해서는 보수신문의 '검찰권 침해'라는 의제설정을 그대로 쫓아 이번 사안을 '논란' 수준으로 나열하는 보도를 쏟아내며 법무장관의 정당한 법적권한 행사를 흠집내고 있다.
천장관의 이번 '수사지휘권' 발동은 검찰청법 제8조에 보장된 합법적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문제나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다. 일부에서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검찰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행위로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인 것처럼 몰아가지만 검찰청법이 잘못되지 않은 이상 법에 보장된 권한을 행사한 천장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정치적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또 일각에서는 '왜 천장관은 강교수에 대해서만 구속요건을 엄정히 따지느냐'며 다른 사건과의 형평성을 문제삼고 있다. 하지만 형사소송법이 제70조에서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주거가 일정치 않거나 증거 인멸, 도주 우려가 있을 때"로 구속 사유를 한정하고 있는 것은 '구속' 자체가 이미 처벌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인권보호' 측면에서 구속 여부는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한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이나 돈과 연줄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는 구속수사가 남발되어 온 잘못을 바로잡는 것 또한 사법개혁의 과제임에도 '인권보호' 차원에서 불구속수사 지휘를 내린 천장관에 대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적반하장 격이다.
'논란'을 가장해 정당한 법적 권한 행사 흠집내기
상황이 이러함에도 방송3사는 천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 "천정배 법무장관이 검찰에 불구속 수사하라고 지시해 논란이 되고 있다",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어서 검찰 내부에서도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KBS),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MBC), "검찰 사상 처음 있는 일"(SBS)이라며 '헌정 사상 초유'를 강조하면서 시청자들이 정당한 법적 권한 행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과거 정권 아래서 청와대나 법무장관이 음성적으로 검찰권에 개입해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히려 공개적인 '수사지휘'를 한 것은 '헌정사상 초유' 운운하며 비판할 일이 아니라 검찰독립의 상징이다. 천장관의 수사지휘 내용도 수사하지말라는 것이 아니라 구속수사하지 말라는 것으로 하등 문제될 것이 없음에도 방송들이 '헌정사상 초유', '파장'이라고 보도한 것은 그 자체로 잘못된 시각에 서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방송3사는 12일 각각 <"불구속 수사" 지휘>(KBS), <불구속 지휘>(MBC), <"전격 불구속 수사하라">(SBS) 등의 첫 보도에서 이번 사안을 다루며 천장관이 왜 불구속 수사를 해야하는지 밝힌 내용을 비중있게 전달했지만, 이날 관련보도들의 전반적인 내용은 정당한 법적권한 행사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다는 검찰과 보수세력의 이의 제기를 중계하는데서 벗어나지 못했다. 방송사들의 이 같은 태도는 수구신문의 의제설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시청자들이 이번 사안을 '논란'으로 인식하게 할 뿐 제대로 된 판단을 하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방송3사는 먼저 검찰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가진 법무부장관과 검찰을 편가르기하면서 논란을 부각했다.
KBS는 <헌정 사상 초유>에서 천장관이 지난 8월 필요할 경우 검찰수사를 직접 지휘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은 불편한 심기를 역력히 드러냈다"며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사이의 갈등이 내재되었음을 강조했다. 또 "검찰총장이 장관의 지휘를 수용하지 못하면 사퇴함으로써 조직을 보호하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어서 김종빈 총장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며 마치 장관의 지휘를 거부한 검찰총장의 사퇴가 조직보호 차원에서 당연한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MBC도 <불구속 지휘>에서 "검찰 내부에서는 천장관의 지시가 검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검찰총장의 향후 대응이 주목된다"고 보도했고, SBS 역시 <"전격 불구속 수사하라">에서 "검찰의 의견에 정면으로 배치돼 갈등이 일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과 법무부 장관의 갈등을 부각했다.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논란'도 있는 그대로 다룰 뿐, 어느 쪽의 주장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여지는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
KBS는 "열린우리당은 법원칙에 따라 행해진 정당한 조처라는 반응…수사는 철저히 하되 인신 구속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 "민주노동당도 검찰의 과잉 대응에 일침을 가한 것으로 지극히 당연하다는 반응", "하지만 한나라당은 국가보안법상 명백한 구속 사안에 대해 법무장관이 '불구속'을 특정한 것은 검찰권 무력화이자 국보법 사문화 의도라고 비판", "민주당은 검찰이 판단할 일이라고 지적" 등 여야 4당의 입장을 나열하며 '엇갈린 반응'으로 보도했다. '검찰의 과잉 대응'이 뭔지, '왜 국보법상 명백한 구속 사안'인지, '법무장관의 지휘가 왜 검찰권 무력화'인지 등 정작 시청자가 알아야 할 본질적 내용은 쏙 빼버린 것이다.
MBC와 SBS는 아예 정치권 반응을 단신으로 다루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주장만 단순하게 나열하는데 그쳤다. 특히 MBC는 제목부터 <야당 반발>로 잡고 한나라당이 "강정구 교수에 대한 천정배 법무장관의 불구속 지휘권 발동은 법질서를 뿌리째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했다며 이를 열린우리당 입장보다 먼저 보도하기도 했다. '지휘권 발동'이 왜 법질서를 뿌리째 무너뜨리는 일인지에 대한 설명은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방송3사의 보도태도는 김종빈 검찰총장이 천정배 법무장관의 수사지휘를 수용하며 사퇴서를 제출한 14일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방송들은 하나같이 '지휘권 행사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고 하여 따르지 않는다면 검찰총장 스스로 법을 어기게 되는 것이며 나아가 검찰은 통제되지 않는 권력기관이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김총장의 수사지휘 수용 발표문을 주요하게 다뤘다.
검찰이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수용한 것'은 그것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거부할 명분이 없다는 점을 검찰 스스로도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수사지휘를 거부할 것을 요구하고 총장의 수용 발표 이후에도 불만을 터트린 이른바 '강경한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에게 위법행위 혹은 그에 준하는 '항명'을 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방송은 이러한 검찰 내부의 '강경' 기류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당연하다. KBS도 보도의 일부분에서 "총장은 수사 지휘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무엇보다도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3사는 "총장의 사표제출은 지휘권 수용에 따른 일선 검사들의 반발에 책임을 지는 한편 지휘권을 발동한 장관에 대해 검찰의 항의를 대표한 것"(MBC)이라며 검사들의 반발과 검찰의 항의가 당연한 듯 보도하거나, 심지어 "검찰 조직과 후배 검사들을 위해 김총장은 사퇴를 결심한 것"(KBS),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지킨다는 강한 의지를 몸소 보인 것"(SBS)이라고 보도해 김총장의 사퇴를 '미화'하기까지 했다.
또 김총장이 '지휘권 행사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는 근거로 '역대 법무부장관이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고 자제하여 온 것은 그 행사 자체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 것은 사실상 검찰청법에 적시된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과거 음성적으로 정권과 법무장관의 수사지휘를 받으며 스스로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해왔던 검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후안무치한 태도이다. 따라서 '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수사지휘'를 받아들이면서도 '항명' 차원에서 사퇴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다. 따라서 검찰의 조직이기주의적인 행태를 무분별하게 전달하는데 급급한 방송보도는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KBS는 <장관 거취 주목>에서 "검찰총장의 사퇴는 결국 지휘권 파문의 진원지였던 천정배 장관의 거취 문제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며 천장관의 거취문제를 성급하게 거론하고 나섰다. 이 보도는 "한때 수그러드는 듯 했던 정치권의 천장관 사퇴공세가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더욱이 수사지휘를 수용한 검찰 수뇌부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일선 검사들의 조직적 반발 가능성은 폭발 직전의 폭탄 뇌관같은 상황이다"며 자극적인 표현까지 동원하며 천장관 사퇴공세가 당연하다는 듯이 보도했다. SBS도 "파문의 또다른 당사자인 천장관의 거취문제까지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고, MBC도 "자칫 천장관의 책임론과 동반사퇴론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표정"이라고 해 '천장관 사퇴 논란'을 다루긴 했지만 '언급'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장관이 적법한 권한을 행사하고도 검찰의 조직이기주의와 일부 야당의 정치적 공세에 의해 '사퇴 논란'에 휩싸이는 비정상적 상황에서도 방송이 제대로 사건의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강교수의 주장은 결코 사법처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한편 강교수의 주장이 일부 신문들과 수구세력에 의해 상당 부분 왜곡된 상황에서도 방송들은 강교수의 반론을 제대로 다뤄주지 않은 채 12일부터는 강교수의 주장에 대한 '진보-보수' 간 의견대립에만 초점을 맞춘 보도로만 일관했다. 특히 헌법에 보장된 학문과 사상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사법처리 위협에 침해받고 있는 상황에 대한 방송들의 문제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KBS는 12일 <엇갈린 반응>에서 "시민단체는 엇갈린 반응"이라며 "진보성향 단체들은 인신 구속의 신중함과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마녀사냥식 재단은 안된다고 밝혔고, 보수성향 단체들은 검찰과 사법부가 판단할 일에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는 부적절한 처사라고 비판했다"며 비교적 단순하게 '엇갈린 반응'을 소개한데 이어, 다음 보도에서는 제목에서부터 <"망언""쓴소리">라는 극단적인 표현으로 강교수의 주장을 둘러싼 갈등을 부각시켰다. 비록 KBS는 강교수의 여러 발언이 "학문적 논의 차원을 넘어 지금 우리 사회에 커다란 갈등과 대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진단하며 "과연 망언인지 쓴소리인지 심층보도한다"고 내세웠지만 실상은 그저 '진보-보수'의 주장을 나열할 뿐 객관적인 사실과 시청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근거들은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보도 자체도 "강교수의 발언이 학문적 자유를 벗어난 '망언'인지 아니면,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한 '쓴소리'인지 엇갈린 시각으로 학계의 논쟁은 뜨겁다"고 마무리해 '엇갈린 시각'을 나열하는데 그쳤다.
또 강교수의 글이나 토론회 발표 내용 가운데 '6.25는 통일내전', '미국의 개입이 없으면 통일됐을 것', '한미동맹의 본질적 속성은 반민족, 반평화, 반통일적' 등 자극적인 부분을 맥락 없이 잘라내 보도하면서 강교수가 왜 그런 주장을 했는지는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KBS는 이처럼 강교수의 주장 가운데 자극적인 부분만 단순하게 인용해놓고 "보수단체는 강교수가 대한민국의 건국을 비하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정면으로 부정한다며 강하게 비판한다", "학문이라는 포장을 빌려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식으로 보수단체의 일방적인 주장을 그대로 전했다.
논란이 발생한 이후 강교수는 줄곧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연구의 결과를 제시했을 뿐 어떤 이념에 대한 가치판단을 한 적이 없음을 누누이 강조했다. 따라서 '건국 비하', '자유민주주의 부정' 등의 수구세력들의 주장은 사실 자체가 왜곡된 것이며 감정적인 대응에 불과하다. 특히 강교수가 '사실왜곡'을 했다는 주장은 대단히 중요한 부분으로 반드시 '어떤 사실을 왜곡했는지' 알려야 했음에도 KBS는 보수단체의 사실왜곡 주장의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않고 일방적인 주장만 내세워 '뉴스의 기본'도 충족하지 못했다.
MBC는 <무슨 말했나?>에서 "강정구 교수는 그 동안 어떤 발언을 했고 또 무엇이 문제가 됐었는지 정리한다"며 '6.25 통일전쟁론' 등 강교수의 일련의 주장을 나열한 다음, "강교수는 이런 내용들은 객관적 연구 결과라고 주장했다"며 "학문적인 결론이라는 것은 국민의 정서에 따라서 좌우돼서는 안된다"는 강교수의 입장을 인터뷰해 KBS와 다소 차이점을 보였지만 이념공세의 대상이 되었던 부분의 반론을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SBS도 <수차례 논란 발언>에서 "강교수는 여러번, 사회적으로 민감한 발언을 해서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켜왔다"면서 "발언과 파장들을 정리했다"며 MBC와 비슷한 보도태도를 보였다.
시청자들이 강교수에 대한 사법적 처리여부를 판단하려면 그에 대한 이념공세의 과정과 '강교수의 주장이 어떤 것이며, 무엇을 근거로 했느냐'를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다. 나아가 학자의 소신에 따른 학문적 연구결과가 국가보안법이라는 구시대 유물에 의해 '사법처리'의 대상으로 제기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얼마나 비이성적인지 확실히 짚어야 했다.
수구신문 의제설정 쫓아가
강교수의 주장은 그의 말처럼 역사적 사실관계를 두고 논쟁할 사안이지 이념의 틀에서 감정을 내세울 일이 아니다. 일부신문들이 왜곡된 사실로 강교수에게 이념공세를 퍼부울 때는 '침묵'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다, 천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검찰-법무장관', '여-야' 갈등 양상이 가중되자 이제야 '논란'에 집중해 상황판단이 잘못된 보도를 쏟아내는 방송3사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특히 일부 수구신문들이 강교수에 대한 사법처리를 부추기며 한국사회의 '냉전구도'를 지속시키려 하고, 천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을 '검찰독립 훼손'으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방송이라도 균형을 잡아 주어야 했으나 잘못된 대세에 편승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는 일부 수구신문의 일방적인 여론몰이에 어느 정도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특히 냉전과 분단의 상황에서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찾아왔던 이들 신문들이 광적으로 냉전구도를 지속시키려 했지만 화해와 평화, 통일로 나아가는 시대변화를 거스를 수 없었다. 이는 그 동안 수구신문의 의제설정을 그대로 쫓아가던 방송들이 이들 신문과 거리를 두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여론의 균형을 맞추는데 일정 정도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강정구 교수 건과 천정배 장관 건에 이르러 방송들은 다시금 수구신문이 악의적으로 짜놓은 의제의 틀을 그대로 쫓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가 또 다시 수구신문들이 일으키는 매카시즘적 광풍에 휩싸여 냉전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방송들은 수구신문의 꽁무니만 쫓다 시대에 뒤 처질 것인지, 아니면 건강하고 이성적인 토론의 장을 만들어 시대변화를 선도할 것인지 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끝)
2005년 10월 15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