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강정구 교수 사건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5.10.14)
조중동은 검찰에게 ‘항명’을 선동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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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교수에 대한 일부 신문의 이념공세가 ‘검찰독립’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12일 천정배 법무장관이 강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검찰에 지시하자 그의 사법처리를 주장해온 조선, 중앙, 동아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 언론은 장관의 지시를 ‘검찰독립의 훼손’인 양 몰고 있다.
우리는 강 교수가 7월 27일 서프라이즈에 올린 글이 ‘이념논란’을 거쳐 ‘검찰독립’ 논란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약화되던 일부 수구언론의 의제 장악력이 기득권 카르텔의 재가동과 함께 강화되는 것을 확인하며 이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 주목도 받지 못하던 강 교수의 글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이를 빌미로 ‘이념논쟁’을 불러일으킨 뒤, 보수단체-경찰-검찰-한나라당-재계가 이들 신문과 동조해 급기야 ‘이념논란’이 ‘사법처리’ 및 ‘취업연좌제’로 확대 재생산되어 갔다.
조선, 동아는 강 교수의 글이 실린 이틀 뒤인 7월 29일 각각 <강 교수는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품에 안기라>, <강정구 교수는 왜 대한민국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이념논쟁의 불을 지폈다.
두 신문은 강 교수의 글 가운데 ‘6.25전쟁은 통일전쟁이자 내전’이라는 전쟁의 성격과 관련한 개념 규정 부분을 집중 부각하면서, “민주공화국과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부인하고 침략전쟁을 옹호하는 것”,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격하고 김일성?김정일 세습 독재체제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는 언동”(조선), “북한만을 대변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부정”, “모종의 의도를 가진 선동가의 선동이거나 교조화된 친북 신념의 표출”(동아) 등으로 몰았다.
이어 8월 1일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강정구 발언’이 의미하는 것>은 강 교수의 발언을 노무현 정부에 대한 색깔공격의 호재로 악용하기도 했다. 김씨는 “노무현정권의 좌파 또는 친북(親北)세력이 여러 명분과 계기로 대북지원을 늘리고 남북관계 행사의 빈도를 높이는가 하면 과거 조선공산당 인사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하는 등 분위기를 연출하는 과정에서 저들은 한국의 반미(反美)정서와 민족공조의 기류를 타고 드디어 지상으로의 부상(浮上)을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라며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좌파독립운동가 인정 조치 등을 모두 이념공세의 대상으로 끌어들였다.
인터넷 공간에서 토론이 오가는 정도에서 그칠 수 있었던 문제가 ‘메이저신문’의 사설과 칼럼으로 다뤄지면서 사회적 ‘논란거리’, ‘친북세력의 부상 선언’으로 확대, 과장된 것이다.
조선, 동아의 사설이 나간 후 이른바 보수단체들이 강 교수 규탄에 나서자, 조선, 동아는 이를 다시 부각 보도했다. 강 교수를 비판하는 일부 동국대 학생들의 주장도 확대보도해 이념논란을 가열시켰다. 이후 두 신문은 강 교수에 대해 경찰과 검찰의 수사 및 사법처리 여부를 도마위에 올렸다.
결국 9월 초 강 교수는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게 됐고, 강 교수의 주장을 ‘이념논란’ 차원에서 다루면서도 사설까지는 쓰지 않았던 중앙일보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이념공세에 나섰다. 중앙일보는 10월 2일 사설 <강 교수의 잇따른 망발 계속 방치할 건가>에서 강 교수에 대한 사법처리를 노골적으로 주장했다.
급기야 10월 4일 김상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이 “이런 강의(강교수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시장경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지, 올바른 경제관이나 역사관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기업들의 채용 때 대학 수업 내용 등을 참고하도록 경제단체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는 망언을 했다. 같은 날 경찰도 강 교수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을 세웠으며, ‘검찰과의 협의’를 거쳐 ‘처벌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한편, 10월 4일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가 강 교수에 대한 ‘강력 수사’를 경찰과 검찰에 촉구한데 이어 10월 5일에는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강 교수의 사법처리에 대한 경찰의 입장을 다시 한번 따지고 들었다.
이처럼 일부 언론의 이념공세가 ‘사법처리’ 여부로까지 나아간 상황에서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은 사법처리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받게 되자, ‘반대’ 입장이나 ‘신중론’을 폈고 천정배 장관은 ‘불구속수사’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조선, 중앙, 동아는 이를 ‘검찰독립 훼손 논란’으로 몰고 갔다. 예의 한나라당은 조중동의 공세에 맞춰 법무장관 ‘해임결의안’ 운운하고 나섰다.
조중동은 13일 일제히 사설을 싣고 천 장관의 지시가 ‘부당한 외압’이고, 검찰 총장이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책임’을 진 것처럼 사태를 호도해 검찰의 반발 및 항명을 선동하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1954년 일본의 법무장관이 뇌물정치인의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다가 내각이 붕괴됐다는 예를 들어 천 장관을 ‘겁박’하고 나섰다. ‘뇌물정치인’에 대한 부당한 수사 개입의 예를 끌어들여,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도 있는 사안을 신중하게 처리토록 지시한 천 장관의 지시를 폄훼하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14일에도 이들은 ‘검찰독립’ 운운하며 이념공세, 정치공세에 열을 올렸다.
우리는 한 학자가 인터넷에 올린 글을 두고 나라가 거덜 날 듯이 호들갑을 떨면서 이념공세를 펴는 수구보수신문에 경찰과 검찰, 야당 심지어 재계 인사까지 ‘부화뇌동’하는 행태를 보면서 기가 막힌다.
천 장관의 지시는 헌법과 법률에 입각한 정당한 권한 행사이다.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피의자에 대해 불구속수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천 장관은 강 교수에 대한 ‘수사중단’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원칙’에 따른 수사를 지시했을 뿐이다. 인신구속이 남발되어온 국가보안법 관련 사건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 발동은 ‘인권신장을 위한 수사관행의 개선’이라는 차원에서 평가될 일이지 ‘국가보안법 무력화’ 따위의 이념공세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더 나아가 우리는 천 장관의 공개적인 지휘권 행사가 ‘검찰독립’을 상징하는 것으로 검찰이 하등 반발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군부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권의 검찰 통제에 순종했던 검찰이 천 장관의 검찰을 존중한 합법적 지휘권 행사에 ‘검찰독립’ 운운하며 반발하는 것은 ‘보수세력 눈치보기’에 다름 아니다.
14일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은 사설을 통해 ‘강 교수 사건’에 대한 정답을 내놓았다. 아직도 매카시즘적 이념공세를 가능하게 만드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의제화한 것이다.
남북이 화해하고 통일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역사적 순리다. 그 과정에서 냉전적 악법인 국가보안법 또한 폐기될 운명에 처해 있다. 일부 신문과 그에 부화뇌동하는 수구냉전세력들이 아무리 딴죽을 걸어도 역사는 전진해 간다. 우리는 시대착오적 망동을 벌이는 일부신문과 수구냉전세력들에게 국가보안법과 함께 역사의 폐기물로 전락할 것인지 아니면 대세에 순응해 스스로를 변화시킬 것인지 신중하게 검토해보기를 권한다. <끝>
2005년 10월 14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