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이른바 ‘X파일’ 관련 방송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5.8.5)
등록 2013.08.20 15:00
조회 305

 

 

 

방송에서 왜 ‘삼성’이 사라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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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X파일’에 대한 방송보도가 안기부의 불법도청과 새로 발견된 274개의 도청테이프 공개를 둘러싼 논란으로 흐르며, 테이프에 담긴 97년 대선 당시의 재벌과 언론, 정치권의 유착과 불법행위에 대한 보도는 실종되고 있다.


검찰이 안기부의 불법도청과 테이프의 유출과정에만 수사의 초점을 맞추자 방송3사도 공운영씨가 왜 도청테이프를 집에 숨겼으며, 검찰이 내용확인을 위해 테이프 녹취를 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또 검찰이 도청테이프의 내용을 공개할 것인지 말 것인지 등에 보도의 초점을 맞췄다.

 

<표> ‘X파일’ 관련 방송3사 보도 분석

 

 

KBS

MBC

SBS

계 

①'정-경-언-검' 유착/불법대선자금 

②안기부 불법도청 및 관련 검찰수사 

10 

22 

③추가 도청테이프 관련 논란 

21 

22 

25 

68 

④기 타 

로비/권력유착 언급 

계 

35 

33 

34 

102 

※ 분석기간 : 7월 29일~8월 3일(6일).
※ ①은 X파일에 등장하는 권력기관들의 유착과 연관되거나 불법대선자금 로비의혹이 있는 삼성과 관련한 보도, ②는 X파일의 내용은 다루지 않고 불법도청 자체에 대해서만 보도하거나 관련된 검찰수사를 중계하는 보도, ③은 7월 29일 발견된 274개의 도청테이프와 관련한 검찰수사/국정원 조사/정치권공방 등에 대한 보도, ④는 ①~③ 외의 보도.
※ 분류 중 ‘로비/권력유착 언급’은 다른 분류의 보도에서 삼성의 로비의혹이나 ‘정-경-언-검 유착’에 대해 언급한 보도를 중복해서 체크함.

 

‘불법도청’과 ‘도청테이프’에 매몰된 방송보도


지난 7월 29일부터 8월 3일까지 6일 동안의 방송3사 ‘X파일’ 관련 보도를 분석한 결과 <표>에서 보듯 삼성의 불법대선자금 로비의혹과 권력기관 사이의 유착 등 ‘X파일의 내용’과 관련된 보도는 전체 102건의 보도 가운데 9건(8.8%)에 불과했다. MBC가 5건, KBS는 3건, SBS는 단 1건에 그쳤다.
이에 비해 불법도청 문제나 이에 연관된 검찰수사에 대한 보도는 22건(21.6%)으로 ‘X파일’의 내용과 관련된 보도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보도량을 보였다. 특히 274개의 추가 도청테이프와 관련된 보도가 68건(66.7%)으로 나타나, 29일 이후의 방송보도가 삼성을 중심으로 한 ‘정-경-언-검 유착’에서 벗어나 ‘도청테이프’에 매몰됐음을 알 수 있다. 보도내용도 도청테이프를 둘러싼 ‘공개논란’, ‘수사방법 논란’, ‘안기부 관계자 동정’ 등 검찰수사와 정치권 공방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였다.


KBS와 SBS는 불법도청에 대한 정?관계나 기업들의 ‘도청공포’ 확산을 다룸으로써 ‘X파일’을 ‘도청’의 문제로 의제화하는데 일조했다.
KBS는 이미 7월 27일 <도청 탐지업 특수>, <관가 도청보완 비상> 등의 보도에서 “도청기를 탐지해 주는 보안업체들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불법도청록 사건이 터진 뒤 각 부처 장차관과 실국장 등 고위 관료는 물론 실무부서 공무원들까지 도청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며 도청에 대한 불안감 확산을 부각한 바 있다. 7월 31일에도 과거 정보기관의 도청으로 피해를 입었던 현직 국회의원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안기부 도청록 파문으로 정치인들의 도청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SBS도 7월 29일 <총리도 도청공포?>에서 “김대중 정부 시절, 국무총리도 도청공포에 시달렸다”며 “보안업체에는 요즘도 도청 여부를 탐지해 달라는 정관계 인사들의 의뢰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보도했고, “안기부 도청 사건이 터진 후 일반인들의 도청탐지 의뢰도 부쩍 느는 등 온 사회가 도청 공포에 휩싸여 있다”며 ‘도청공포’를 부각했다.


삼성에 대한 문제제기, MBC는 ‘적극’ KBS는 ‘부족’ SBS는 ‘외면’


이에 반해 ‘X파일’로 드러난 재벌과 언론, 정치권의 유착과 불법행위에 대한 내용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특히 SBS는 7월 30일 <도청내용 수사하나?>에서 도청내용 수사에 소극적인 검찰의 태도를 법적?현실적 어려움을 들어 합리화해주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SBS는 “도청된 테이프의 내용을 수사하려면 먼저 법률상 장애물을 넘어서야 한다”며 “독이 있는 나무에는 독이 있는 열매가 열린다는 독수독과 이론에 따라 도청 테이프를 근거로 수사에 들어갈 수는 없다는 법논리”를 설명했다.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 ‘독수독과 이론’에 따른 판례가 있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또 “(검찰이) 수사에 들어간다해도 증거 수집이라는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며 “11년 전의 일을 추적해 유죄의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금융기관의 거래 기록도 5년이 지나면 폐기되기 때문에 사실상 자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형편” 등을 언급하며 검찰수사의 어려움만 나열했다. 또 “274개나 되는 테이프의 모든 내용을 조사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공정성 차원’에서 검찰 내부에는 ‘X파일’ 테이프의 수사불가 의견이 다수라고 전하기도 했다.
SBS의 이 같은 보도는 이미 알려진 ‘삼성-중앙일보-신한국당-검찰’의 유착 의혹과 공개여부조차 논란이 되는 274개의 추가테이프에 담긴 내용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 없음에도 검찰의 ‘수사불가’에 힘을 실어주는 격이 되었다.


반면 MBC는 8월 1일 보도에서 테이프로 드러난 불법행위들을 수사해야 하는 이유를 적극적으로 거론했다. <로비의혹 수사는>에서 MBC는 “이번 사건의 또 다른 축인 삼성의 로비의혹과 관련해서는 검찰이 과연 수사를 하기는 하는 것인지 아무 소식이 없다”며 “검찰은 삼성의 불법로비 의혹에 대해 고개를 돌린 채 외면하는 모습”이라고 검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또 ‘독수독과 이론’에 대해서도 “검찰 내부에서조차 독수독과의 원칙은 재판에 쓰일 수는 있지만 수사 자체를 할 수 없다는 논리는 아니라는 반론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검찰의 삼성장학생>에서는 “삼성 앞에만 서면 검찰이 작아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문제는 뿌리가 깊다”며 삼성에 대한 검찰의 소극적 수사관행의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2일에는 <삼성 불법로비>에서 “이회창 후보의 동생 이회성 씨로 로비자금 전달창구를 일원화한다”는 ‘X파일’에서의 홍석현씨와 이학수씨의 대화가 “세풍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고 검찰 관계자가 밝혔다”며 “불법도청된 테이프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삼성의 불법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단서를 갖고 있는 셈”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보도는 또 “검찰이 삼성의 불법자금 제공이 가장 큰 문제라는 여론을 거스르면서 수사 초점 테이프 유출과 보도경위에 맞춰 물타기하고 있다”는 언론개혁국민행동의 기자회견 내용을 소개했다.
또 3일 <검찰간부 고발>에서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X파일’에 거론된 검찰인사들을 경찰에 고발한 사실을 소개하며 “도청테이프에 삼성 돈을 받을 대상으로 거론된 검찰쪽 인사만큼은 당사자가 아닌 경찰이 수사를 맡아야 한다”, “검찰이 정치권과 삼성, 검찰간의 불법적인 공생관계를 고발한 언론부터 조사하겠다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는 사제단의 주장을 소개했다.
KBS도 MBC에 비해 부족하긴 하지만 8월 2일 <삼성과 검찰>에서 “안기부 도청록 수사와 관련해서 삼성그룹 법무팀의 화려한 인맥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며 “삼성의 막강한 법조계 인맥이 도청록 수사와 재판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또 <기자 소환 논란>에서는 검찰의 이상호 기자 소환방침과 관련해 “시민단체들은 소환조사 자체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며 “테이프 내용에 대한 수사는 제쳐두고 수사의 초점을 유출 및 보도 경위로 맞추는 것은 국민들을 우롱하는 행위”라는 언론개혁국민행동의 기자회견 내용을 소개했다.
3일 <머뭇거리는 검찰>에서도 이학수 삼성 부회장에게 도청테이프를 제공하는 대가로 5억원을 요구했다는 박인회씨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당연히 피해자라는 이학수 부회장에 대한 조사가 필요”함에도 “이학수 삼성 부회장을 소환할 것인지, 말 것인지 머뭇거리는 검찰 태도에 삼성 앞에 약한 검찰이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이에 비해 SBS는 삼성과 관련된 보도를 따로 하지 않았다. 언론개혁국민행동의 2일 기자회견을 ‘단신’으로 다루면서는 국민행동이 ‘‘X파일’과 관련해 ‘정-경-언-검 유착’과 ‘불법도청’의 진상이 모두 밝혀져야 하지만 전자를 우선적으로 수사해야한다’고 주장했음에도 “사건의 본질은 정경유착 실태와 안기부의 불법 도청”이라고 했다며 기자회견의 본래 뜻을 다르게 전달하기도 했다.


지금 국민들은 이른바 ‘X파일’을 통해 드러난 97년 대선 당시의 불법행위의 실체를 알고 싶어 한다. 여론조사 결과도 이러한 국민들의 요구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재벌과 언론, 정치권은 물론 검찰까지 개입된 ‘검은 유착’을 실체를 규명하고 제대로 청산해야한다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언론은 검찰의 본말이 전도된 수사방향을 그대로 쫓아가면서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특히 KBS와 SBS 등 일부 방송들도 과거부터 지적되어 온 ‘검찰 수사 따라가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방송사들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무엇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는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추악한 커넥션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검찰의 ‘본질 흐르기’ ‘물타기’ 수사에서 눈을 돌려 사건의 핵심을 파헤치는 것이 지금 방송이 해야될 일이다.(끝)

 


2005년 8월 5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