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공정위 재벌 총수 ‘의결권 승수’ 공개 관련 주요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5.7.14)
등록 2013.08.1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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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편들기’, 능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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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처음 공개한 재벌 총수의 ‘의결권 승수’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재벌 총수는 소유 지분의 7~9배에 이르는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럽 주요 국가의 상장회사들보다 5~8배나 높은 수준이다. 특히 삼성 이건희 회장의 경우 불과 0.28%의 지분으로 금융계열사 출자를 통해 전체 그룹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는 소유와 지배구조 사이의 괴리가 매우 심각함을 말해주는 것일 뿐 아니라, 금융계열사에 맡겨진 고객의 돈으로 총수가 기업을 지배한다는 점에서 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이 같은 왜곡된 지배구조는 정상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에 다름 아니다. 시장경제에서 소유 지분만큼 지배력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극히 일부의 지분을 가진 총수 개인이 대다수 주주들의 의사를 저버리며 기업 전체를 독단적으로 지배한다는 엄연한 사실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조차 제대로 통용되고 있지 못함을 드러낸다.
따라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를 받아들인다면 총수의 독단적이고 제왕적인 ‘황제경영’ 시스템 개혁을 반대할 수 없다. 그럼에도 중앙일보를 비롯한 일부신문들은 재벌, 특히 삼성의 왜곡된 지배구조를 성장의 동력인 양 호도하면서 이들을 두둔하고 나섰다.


13일자 <중앙일보> 사설은 제목부터 <대기업과 국민 이간시키는 공정위>라고 붙였다. 왜곡된 기업지배구조 실상을 국민 앞에 있는 그대로 공개한 공정위의 처사가 ‘대기업과 국민을 이간’ 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공정위 조사를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에 반기를 든 대기업들에 대한 반격”인 양 몰았다.
<중앙일보>는 또 “민감한 지분 구조 공개는 소모적인 논쟁을 촉발시키고 국제적인 인수합병(M&A)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만 높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공정위 조사에서 밝혀진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실상 때문에 마치 해외 자본이 ‘적대적 인수합병’을 통해 국내 기업 ‘사냥’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인 양 호들갑을 떨며 국민을 겁주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겁박’은 기업지배구조 개선 요구에 대해 ‘국내 기업이 외국자본에 넘어간다’며 왜곡된 민족주의를 선동함으로써 총수 일가의 지배를 정당화해온 재벌들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다.
나아가 <중앙일보>는 “가장 효과적인 기업지배 구조에 대한 정답은 없다”며 “기업 활동을 통해 많은 이익을 남겨 더 많은 세금과 배당으로 사회에 되돌려 주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는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의 12일 기자회견 내용과 똑같다. 한마디로 소유와 의결권이 괴리되든 말든, 고객의 돈으로 총수 일가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든 말든 재벌은 이익만 많이 내면 그뿐이라는 식의 말장난이다. 그런데도 중앙일보는 윤 위원장의 왜곡된 주장을 비판하기는커녕 그를 거들고 나선 것이다.


삼성과 윤 위원장이 말하는 ‘좋은 기업’이 결국 ‘삼성’을 지칭하는 것임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삼성’은 사회 각 분야에 대한 ‘매수’ 행위를 통해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 하려는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들의 기형적 지배구조를 지탱하기 위해 금융계열사를 통해 공정거래법 헌법 소원을 냈다. 그런데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기관의 수장이 이를 두둔하는 발언을 하고, 거대족벌신문 중앙일보는 공정위를 압박하면서 삼성을 ‘좋은 기업’이라고 추켜세우는 작금의 상황은 ‘삼성’과 언론, 그리고 삼성에 굴복한 관료들이 어떤 식으로 카르텔을 형성해 경제 의제를 왜곡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14일에는 동아일보까지 나서 ‘성장’이 왜곡된 지배구조를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처럼 왜곡된 주장을 펴면서 윤 위원장과 삼성을 노골적으로 두둔했다.
<윤증현 대 강철규>라는 사설에서 동아는 “오너와 전문경영인들이 나름대로 최적(最適)이라고 판단한 역할분담형 지배구조를 통해 끊임없이 인재를 모으고 혁신을 꾀했기 때문에 오늘의 삼성전자가 있는 것”이라며 모범적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들 가운데 “상당수는 성장이 둔해 일자리와 국부 창출 능력이 삼성의 10% 또는 1%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올해 우리나라의 1분기 경제성장률은 아시아국가 중에서 사실상 꼴찌” 인데, “이런 결과에는 대기업들의 잘못된 지배구조 탓이 더 클까, 강 위원장 같은 사람이 득세하는 정부 탓이 더 클까”라며 비아냥 거렸다.
삼성의 성장 배경이 이른바 “역할분담형 지배구조”에 있다고 규정하면서 이같은 기형적 지배구조를 인정하는 것이 국가의 경제성장률로 이어지는 것인 양 극단적인 비약과 왜곡을 저지르고 있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6면 기사 <與, 잇단 삼성 때리기 왜? - 노대통령 ‘삼성면죄부’ 발언후 강경>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올 초까지만 해도 나쁘지 않았던 삼성과 여권의 관계가 삼성 계열사들의 공정거래법 위헌 소송과 금산법에 대한 노대통령의 비판적 발언 이후 나빠졌다며 여당 인사들의 삼성 비판을 정략적인 ‘때리기’인 양 몰았다.


반면, 윤 위원장의 발언을 비판한 신문은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 정도에 불과했다. 13일 한겨레신문은 경제면 톱기사로 <재벌개혁 ‘딴소리’하는 금감위원장>을 싣고 윤 위원장이 말한 ‘훌륭한 지배구조의 판단기준’이 ‘삼성’을 떠올리게 된다며, 윤 위원장이 지난해 8월 취임한 뒤 “대부분 삼성 관련 쟁점 사안들은 삼성이 바라는대로 해결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14일에는 6면 <“삼성 지배구조 법 지키는지 따져야”>라는 기사를 통해 13일 열린우리당 강봉균 의원이 라디오프로그램에 출연, 윤 위원장의 주장을 반박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경향신문은 13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재벌의 왜곡된 소유지배구조와 시장경제>, <금감위원장은 재벌 개혁에 반대하는가>라는 사설을 각각 실었다. 이들 사설을 통해 경향신문은 재벌기업의 왜곡된 소유지배구조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순환출자라는 편법을 통해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한편, 윤 위원장이 정부의 재벌 개혁에 거스르는 발언을 한 데 대해 비판했다.


우리는 일부 거대 족벌신문들에게 충고한다. 지금 삼성이 한국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해서 삼성을 무조건 두둔하고 나서는 일은 언젠가 삼성에게 독이 되고 나아가 한국경제의 독이 될 것이다.
총수 일가가 장악한 기형적 기업지배구조야말로 글로벌 경쟁 시대에 걸맞지 않는 낡은 유물이다. 상호출자로 연결된 왜곡된 지배구조가 지난 97년 IMF 위기 당시 어떤 재앙을 빚었는지는 자동차 진출 실패로 홍역을 치른 삼성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삼성이 끝끝내 다수 주주와 예금주의 소유권?재산권을 침해하고, 위헌 소송이라는 방식으로 국회의 입법권을 무력화시키면서까지 총수 일가의 제왕적 지배구조를 유지시키려 들고, 중앙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이 이를 비호한다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후과를 치러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노무현 정부는 재벌개혁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금융감독위원장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한 윤증현씨에 대해 책임을 묻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끝>

 


2005년 7월 14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