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울산 건설플랜트노조 파업 관련 조선일보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5.5.19)
등록 2013.08.19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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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폭력성'을 탓할 자격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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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정녕 노동자와 민주노총을 이렇게까지 짓밟아야 하는가.
울산 건설플랜트노조의 파업이 60일을 넘어가는 동안 관련 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던 조선일보가 시위 과정에서 벌어진 사태의 책임을 일방적으로 노동자에게 돌리며 비난하고 나섰다. 공권력이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시위를 얼마나 강경하게 진압해 왔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다.


18일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이 경찰을 때리고 있는 사진을 <매맞는 경찰>이라는 캡션과 함께 1면에 실은 조선일보는 19일 <민주노총, 누구 아들한테 쇠파이프 휘두르나>라는 사설까지 싣고 울산건설플랜트노조와 민주노총을 반인륜집단인 듯 매도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시위대의 쇠파이프 앞에 먹이처럼 던져진 어린 전경"이 "집에 가면 금싸라기보다 귀한 자식"이라며 노동자들에게 "당신의 동생이, 당신의 조카가 쇠파이프 타작에 다리뼈가 부러지고 갈비뼈가 어긋나 병신이 돼 간다고 생각해보라. 눈에 불이 안 나겠느냐"고 질타했다. 이어 "쇠파이프를 7~8개 엮어 바퀴를 단 수레전차", "쇠파이프만 500개", "화염병과 쇠갈고리, 새총, 시너통, 경찰에게서 빼앗은 무전기와 방패" 등 건설플랜트 노조의 시위 용품을 열거하면서 폭력성을 부각시켰다.


18일 시위에서 많은 경찰과 노동자들이 부상을 당한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아픈 일이다. 그러나 이를 '자식같은 경찰을 패륜적인 노조가 때렸다'는 식으로 몰아갈 수 있는 일인가? 이들은 개인적인 원한이 있어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다. 노동자들이 원래 폭력적이어서 처음부터 '무기'와 같은 시위 용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것은 더더욱 아니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합리적으로 논의되고 수용될 공간이 원천봉쇄된 상황에서 '공권력과 노동자'의 관계로 대립했고, 그 과정에서 폭력이 일어났다. 경찰을 '누구누구의 자식'으로 치환시켜 노조의 '패륜성'을 질타하는 조선일보식 주장은 사건의 본질을 은폐하는 수법이자 선정주의의 극치다.
조선일보식의 어법으로 물어보자.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은 분진과 쇳가루, 화학물질이 뒤엉킨 작업장에서 도시락을 배달시켜 밥을 먹어야하는 극악한 노동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나선 아버지, 남편들이다. 조선일보야말로 도대체 누구의 아버지, 누구의 남편들을 향해 이토록 일방적인 언어폭력을 휘두르는 것인가?
"밥을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어달라", "휴게시설과 화장실을 만들어달라",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라"는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믿기 어려울만큼 소박한 요구를 철저히 외면하고 그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건설업체의 사업주들이며, 사업주들의 근로기준법 위반 책임은 제대로 묻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의 파업에는 강경하게 대응해온 정부와 공권력이다. 18일 경찰은 80미터 정유탑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물대포를 쏘는 진압작전을 감행해 그들을 연행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시위가 점점 격렬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왜 조선일보는 "화장실을 만들어 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에는 귀기울이지 않는가. 조선일보는 "경찰은 불법시위 주도자들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놓고도 그들이 활동하고 있는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事務室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했다"며 오히려 공권력의 '무능'을 질타했다. 나아가 "며칠 전 광주에서는 시위대가 군 부대의 철조망을 1㎞나 뜯어냈는데도 보고만 있었던 게 경찰"이라며 "누가 경찰을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관계없는 사건을 끌어들이면서 경찰의 '강경진압'을 부추기기까지 하고 있다.


한편, 조선일보는 이번 시위의 '폭력성'을 민주노총을 비난하는 '호재'로 삼고 있다.
조선일보는 "민주노총은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 중 하나"며 "민주노총의 주장을 대변할 정당도 국회에 진출"해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아직도 폭력 시위를 군사독재 시절의 저항운동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보통 착각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또 최근 드러난 대규모 노조들의 취업장사 등 비리를 언급하며 "노조 때문에 대한민국이 다시 배곯는 나라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에 떨었는데, "그 마당에 쇠파이프 들고 나와 남의 집 아들들을 병신 만드느냐"고 질타했다.
조선일보는 입만 열면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에서 엄청난 기득권을 누리는 권력집단인 양 떠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진실인가? "민주노총이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 중 하나"라면 근로기준법을 지키라, 식당과 화장실을 만들어달라는 등 그야말로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을 관철시키지 못해 노동자들을 거리로 나서게 하겠는가?
"민주노총이 아직도 폭력 시위를 군사독재 시절의 저항운동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보통 착각이 아니다"라는 비난도 민주노총을 '폭력시위 만능주의'에 빠진 집단처럼 몰아가려는 음해에 불과하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며 노사정위 복귀를 통한 문제 해결에 나서고자 했던 것을 모른단 말인가. 또 다시 '∼라면 ∼이다'라는 논법을 동원해 자신들이 '민주노총이 폭력 시위를 군사독재 시절의 저항운동 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이라고 가정한 뒤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착각하고 있다"거나 '노조 때문에 배곪는 나라가 되는 것 아닌가 불안'하다는 등의 주장으로 민주노총을 비난하는 방식의 식상함과 궁색함에 기가막힐 따름이다.


우리는 조선일보에 경고한다. 더 이상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을 패륜집단으로 매도하지 말라. 시위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을 빌미로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요구를 짓밟고 나아가 민주노총 전체의 정당성을 음해하려는 조선일보는 차리라 입을 다물어라. 파업 사태가 악화되고 노동자들의 시위가 격렬해지는 동안 노동자들의 절박한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지도 않았고, 사태 해결을 위한 대안을 내놓지도 못한 조선일보는 이 사태나 민주노총에 대해 최소한의 문제제기도 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다른 신문들에게도 촉구한다. 시민들에게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파업을 제대로 보도하라. 시민들이 건설플랜트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그들이 요구하는 바를 제대로 알게된다면 어떤 시민들이 노동자들의 요구가 사용자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하겠는가? 사태가 이처럼 악화된 데에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폭력 사태가 벌어질 때까지 문제 해결 방안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지 않았던 언론의 책임도 크다. '식당과 화장실을 지어달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조차 수용하지 못해 폭력 사태를 초래하는 상황 앞에서 노동자들의 폭력성을 탓하기 전에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끝>

 


2005년 5월 19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