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 관련 중앙일보 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 (2005.3.2)
등록 2013.08.16 15:24
조회 301

 

 

 

조선·동아가 했던 왜곡을 중앙이 하고 있다
.................................................................................................................................................

 

 

 

지난 2월 28일 미국 국무부 '2004년 인권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우리의 인권 상황에 대해 '정부가 대체로 국민의 인권을 존중했다'고 평가하는 한편 아직 남아있는 문제점들을 함께 지적했다. 인권보고서가 끊임없이 지적해온 국가보안법 문제가 이번에도 빠지지 않았으며,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 문제도 지적됐다. 그 밖에 경찰 및 교도소에서의 인권 침해와 가정폭력 및 여성 인신매매, 아동학대 등이 거론됐다. 아울러 보고서는 한국의 언론 자유와 관련해 우리 신문법의 시장점유율 제한 조항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NGO들이 언론통제를 우려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그러자 중앙일보가 사설까지 동원해 '해외에서 우리의 신문법을 우려하고 나섰다'며 신문법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2일 중앙일보는 2면에 박스 기사 <한국 신문법 언급한 미국 인권보고서 - "친야 성향 신문들 겨냥 여당, 점유율 제한 추진">을 싣고 국무부 보고서의 한국 관련 언급 중 신문법 부분만을 부각했다.
사설 <미국 인권보고서가 제기한 언론법 문제>에서는 "해외에서까지 우리의 언론관계법에 우려를 표했다는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국제언론인협회(IPI)도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언론관계법이 언론자유와 민주국가로서 한국의 지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서한을 청와대에 보냈다"며 신문법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는 양 호들갑을 떨었다. 나아가 헌재가 "심리를 서둘러 가급적 법 시행전에 위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려줘야 한다"며 "그것이 혼란을 막는 길"이라며 헌재를 또 다시 부추기기도 했다.
이같은 중앙일보의 보도행태는 다음 몇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다.
우선 국무부 보고서의 타당성 문제를 떠나 보고서 가운데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뽑아서 부각하는 행태가 문제다. 보고서는 신문법의 문제만을 지적하지 않았다. 특히 국가보안법 문제는 국무부 보고서가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사안이다. 중앙일보가 우리 인권 상황에 대한 해외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일이 진정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무엇보다 앞서 국가보안법에 대한 보고서의 우려를 전달하는 것이 상식이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은 지난해 말부터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의제이며 한국사회에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구조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문제가 아닌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 제약을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공무원 노동자들의 노동3권 보장을 놓고 우리 사회는 내홍을 겪었다. 정부는 공무원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파업에 강경대응했고, 많은 국민들도 공무원의 노동3권 인정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미국 국무부 보고서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가 '결여'되었다며 112명의 공무원 노조원들의 체포 사실까지 지적했다면 이 역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이 부분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한편 중앙일보는 신문법에 대한 국무부 보고서가 잘못된 사실 관계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는 점을 외면하고 오직 보고서가 신문법을 우려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것만 부각했다.
국무부 보고서는 신문법에 따라 '3개 신문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60%를 넘으면 불법(illegal)으로 간주된다'거나 '(한국의)비정부기구들이 이 법안이 인쇄매체 분야를 통제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3개 신문의 시장점유율 합계가 60%를 넘으면 불법'이라는 표현은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시장점유율을 넘어서는 신문들은 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을 수 없고,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서만 처벌을 받는 것이지 단순히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되었다고 해서 불법으로 간주돼 처벌받는다는 내용이 아니다. 게다가 이와 같은 내용의 신문법보다 더욱 강도 높은 규제를 요구한 것이 바로 한국의 언론관련 NGO들, 언론노동자들의 대표격인 언론노조였다는 사실을 보고서는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
결국 이 보고서는 한국 언론계의 파행적 구조, 신문시장의 문제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문법에 저항해온 거대 신문사들로부터 나온 편향된 정보만으로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이와 같은 맥락을 무시하고 "보고서가 '불법'이라고 한 것은 '정부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 것으로 해석된다"며 국무부 보고서의 잘못된 지적을 합리화해주면서 보고서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지적은 무시하고, 입맛에 맞는 지적은 사실과 달라도 그 본래 취지까지 해석해주며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미 국무부 보고서를 결코 우리가 떠받들어야 할 인권의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부풀리고 무시하는 중앙일보의 이중적인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이전에도 국무부 인권 보고서는 언론사 세무조사 등 한국의 언론 문제와 관련해 족벌신문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해 한국의 언론 상황에 대해 제대로된 실태 파악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나아가 국무부 보고서가 한국의 언론 상황에 대해 잘못된 내용을 발표하면 족벌신문들은 이를 왜곡하거나 편파적으로 부각했다. 과거에는 주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이러한 행태를 보였다면 올해는 중앙일보가 앞장섰다는 것이 달라진 점이다. 과거 조선, 동아가 했던 잘못을 이제 중앙일보가 저지르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중앙일보가 국무부 보고서와 함께 IPI 운운하며 신문법에 대한 '국제적 우려'를 강조한 데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 이미 우리는 IPI를 국제적인 언론인단체로서 공신력을 인정할 수 없는 이유를 입이 아프도록 설명해 왔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이러한 단체의 이름을 빌어, 헌재를 향해 사실상 '신문법을 위헌판결 해달라'고 압박하는 행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우리는 중앙일보에 묻는다. 도대체 신문법의 시행으로 불러올 "혼란"이란 것이 무엇이길래 헌재가 위헌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것인가? 정작 신문시장의 대혼란을 초래한 당사자는 중앙일보를 비롯한 거대신문들이 아닌가.
3월 2일 중앙일보는 국무부 보고서를 근거로 신문법의 '언론자유 침해' 운운한 것 외에도 '주목할만한' 보도들을 했다. 3·1절을 맞아 성조기를 흔든 극우단체들의 대규모집회 사진을 1면 머리에 싣고, 한일협정을 근거로 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가 '정부의 영속성'에서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중앙일보는 '반노동적 보도'에 앞장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제 중앙일보가 노동 부문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왜곡된 보도행태를 계속 보일 것인지 예의주시 하지 않을 수 없다. <끝>

 


2005년 3월 2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