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국정원 과거사 조사 관련 주요신문 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5.2.4)
등록 2013.08.16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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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청산의 대의를 오염시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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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진실위)는 1,2차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 동백림사건, KAL858기 폭파사건, 김형욱 실종, 김대중 납치사건 등 7가지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권위주의 정부시절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기관들이 국가안보 보다는 정권 안보를 위해 일했고, 이 과정에서 무수한 인권유린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제라도 국정원이 인권유린과 용공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사건들을 스스로 조사하겠다고 나선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진실위의 조사에 '부일장학회 강제헌납' 사건이 포함되어있다는 이유를 들어 '정치적 의도'를 문제삼고 나아가 '조사의 중립성'을 의심하면서 국정원의 과거사 조사활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흠집부터 내려는 태도를 보였다.


중앙일보는 4일 사설 <국정원 진상규명 선정 기준 무엇인가>에서 부일장학회 강제 헌납 사건이 조사 대상에 포함된 것에 대해 '선정기준이 뭐냐'며 노골적으로 반발했다.
중앙은 "그 사건이 과연 과거 중앙정보부나 안기부가 저지른 많은 비행 가운데 꼭 해명돼야 할 대상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며 "그보다 더 악날한 사건을 저질렀을 중정과 안기부"의 다른 인권침해 사건들을 놔두고 부일장학회 사건을 조사 대상에 넣었다는 이유를 들어 "이번 조사가 정치적으로 오염됐다는 의심을 받을만하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의 이같은 주장은 한마디로 '궤변'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중앙일보의 표현처럼 과거 중정과 안기부가 저질렀을 '악날한 사건'이 우선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면 이런 사건들을 추후에 과거청산법을 통과시켜라도 철저히 조사하면 될 일이다. 오히려 국정원의 조사는 자신들의 과거를 스스로 얼마나 철저하게 밝힐 수 있을 것인지 우려가 있는 만큼 독립적인 조사기관이 나서 '정보기관의 악랄한 인권유린 사건'을 조사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중앙일보가 진심으로 공정한 과거청산을 바란다면 '덜 악랄한 사건이 조사대상에 선정됐기 때문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하루속히 과거청산법을 훼손없이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는 4일 사설 <국정원 과거사 조사 政略 악용 안 된다>에서 부일장학회 사건은 물론이고 민청학련과 중부지역당 사건까지 거론하며 '정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나섰다.
동아는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이번 조사가 정략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라며 '부일장학회 강제헌납 사건'을 포함시킨 것에 대해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동아는 "민청학련 사건이나 중부지역당 사건도 정쟁(政爭)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며 그 이유가 "당시 관련자들이 정치권에 여럿 포진해 있고,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의 객관적 진실을 규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교적 근래에 벌어진 사건은 관련자들이 정치권에 있어서 곤란하고, 오래 전에 일어난 사건은 '객관적 진실 규명'에 한계가 있어서 곤란하다는 식의 동아일보 주장은 한 마디로 '과거사 규명을 하지 말자'는 뜻이다.


조선일보도 4일 사설 <국정원 과거사 조사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다>에서 이번 조사의 '정치적 의도'를 언급하며 진실위의 조사에 대해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고 주문하고 나섰다.
조선은 국정원의 조사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국가의 사법기관·정보기관이 자기 고백을 한다고 나서게 된 배경과 경위에 대해 여러 정치적 해석이 뒤따르고 있는 것도 사실", "조사대상으로 선정된 사건 대부분이 현 집권세력과 반대편에 서 있는 측의 뿌리와 관련돼 있어 정치적 중립성 여부는 더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다며 교묘하게 '정치적 의도'를 문제삼았다.
특히 조선은 '부일장학회 강제헌납'사건을 조사대상에 선정한 것을 두고 "정치적 논란이 있는 사건일수록 조사를 하더라도 나중 순위로 둘리는 것이 좋지 않았나 싶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드러냈으며, KAL폭파사건에 대해서도 "일부 세력의 압력이 작용한 듯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국정원의 조사로 인해 "경우에 따라서는 사법체계가 흔들리는 상황을 맞을지도 모른다", "과거를 캐느라고 국정원의 존재 이유인 대북 기능을 훼손해 지금 해야 할 일을 놓치거나 직원들의 의욕을 꺾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조사 결과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4일 사설 <국정원의 과거사 고백>에서 국정원의 과거사 조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정치적 의도'를 경계했다. 다만 경향신문은 조선, 중앙, 동아와 다른 점은 여야 정치권 모두에 대해 '정치적 의도'를 개입시키지 말 것을 요구했다.
경향은 "정부와 여당은 이번 작업이 정부 주도로 시작된 만큼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 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아야 한다"고 경계하는 한편,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는 과거사법 처리에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향은 "과거사 규명은 역사를 바로 세우고, 인권에 기초한 민주주의를 세워가는 길"이라며 "정권이든, 여든, 야든, 그 길에 소탐을 개입시키지 말라"고 주장했다.


한겨레신문은 4일 사설 <국정원은 진정으로 참회록을 써야>에서 이번 조사의 의미를 평가하고 더 나아가 제대로 된 과거사법을 만들어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정치권에 촉구했다.
한겨레는 "국정원 과거사위는 사회적으로 의혹이 큰 사건과 시민사회 단체, 유가족 등이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한 사건을 먼저 조사하기로 했다"며 일각에서 '부일장학회' 사건이 박근혜 대표를 겨냥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이 사건들은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 언론과 경제인 통제의 대표적 사례로, 지금까지 관련자들의 민원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과거사위가 국정원이 직접 나섰다는 점에서 '성과'를 기대하면서도 "법적 뒷받침이 없고 인원과 예산이 제한돼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적하고 아울러 "제대로 된 과거사법을 만들어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을 법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본회는 이미 3일 논평을 통해 '부일장학회 강제헌납 및 경향신문 강제매각 사건'의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 언론민주화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함을 주장한 바 있다.
우리는 일부 신문이 '정치적 의도' 운운하며 부일장학회 사건이 조사 대상으로 선정된 것에 반발하거나 조사를 뒤로 미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본다. 야당 대표와 관련됐다고 해서 과거 인권 침해 사건을 조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과거청산의 대의를 저버린 '정치적 야합' 행위가 아닌가. 차라리 조선, 중앙, 동아는 솔직하게 "박정희 대통령에서 박근혜 대표로 이어지는 구 집권세력에 불리한 내용은 영원히 묻어두자", "과거청산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라.
일부 신문들이 궤변으로 박근혜 대표를 '엄호'하고 '중립적 조사'를 강조하는 이유는 과거청산 전반에 대한 '물타기'이자 '흠집내기'에 불과하다.
우리는 일부 신문들에 경고한다. 야당 대표와의 연관성은 조사의 고려대상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자신들의 정략적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야당 대표를 과도하게 끌어들여 과거청산의 대의를 오염시키는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 <끝>

 


2005년 2월 4일


(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