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농민 차량시위 관련 21일자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12.21)
등록 2013.08.14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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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체증' 부각으로 '쌀지키기 시위' 우롱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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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서울 시내 곳곳에서 '쌀시장 개방 반대, 식량주권 사수'를 주장하는 농민들의 기습시위가 벌어졌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의무수입물량 8%확대, 소비자시판 30%허용'이라는 정부의 쌀재협상안을 비판하는 '차량1만대 집결 시위'를 준비했으나, 경찰측의 원천봉쇄로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차량시위를 벌였다.
농민들의 차량시위까지 벌이게 된 데는 절박한 사정이 있다. 쌀시장 개방문제는 단순한 '시장개방'의 논리 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국제적인 '식량전쟁 시대'에 무턱대고 쌀시장을 개방했을 경우 우리가 입게 될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국내 쌀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농촌이 붕괴될 위험이 크다. 또 국민의 건강과 밀접하게 연관된 '먹거리 안전'도 보장하기 어렵다. 쌀을 제외하고는 식량자급률이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 현실에서 전세계적인 식량수급의 불균형으로 '식량대란'이 발생했을 경우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우르과이라운드 협정 이후 지난 10년간 정부는 농업개방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해왔다. 올해에도 정부는 '고율의 관세로 쌀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유리하다'거나 '올해 말까지 협상을 완료하지 못하면 내년에는 자동으로 쌀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논란의 여지가 큰 주장을 펴 협상의지를 의심케 했다. 또 협상과정을 공개하지 않다가 최근에서야 '의무수입물량 8%확대, 소비자시판 30%허용'으로 오는 2014년까지 쌀시장 개방을 유예하기로 협상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농민들은 이번 협상결과를 사실상 '쌀시장 개방의 전초전'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에 따라 거세게 저항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21일 대부분의 신문들은 농민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서 거리로 나섰는지, 정부 협상 결과에 따른 실제 농민 피해는 얼마나 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농민들의 시위로 빚어진 서울시내의 '교통체증'을 부각하는데 급급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제목에서부터 교통체증으로 인한 시민들의 '짜증'을 부각하는데 앞장섰다. 조선일보는 시위의 주체가 '전농'이라는 사실을 부각했다.
중앙일보는 <길막은 농심…도심은 짜증>(10면 4단)으로, 동아일보는 <한강다리 막은 농민…꽉 막힌 서울>(35면 4단)으로, 조선일보는 <전농트럭 한강다리 점거시위>(12면 4단)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농민들 도심 차량시위>(1면 2단), 경향신문은 <"쌀 재협상"벼랑끝 농심 서울로>(6면 4단)라는 제목을 달아 농민들의 시위 목적을 드러내거나, 객관적 사실(fact)만을 담아 차이를 보였다.
중앙일보 등은 기사에서 농민들의 시위목적을 간단하게 언급하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내용이 시위로 인한 교통체증을 부각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반면 차량시위 과정에서 경찰이 차 유리를 방패로 부수는 등 폭력을 사용했다는 점을 보도한 신문은 한겨레 정도였다. 또 경향과 한겨레는 농민들이 차량시위를 진행하게 된 경위를 시위 참가자와 관계자의 입을 빌어 비교적 상세히 보도해 중앙일보 등과 차이를 보였다.


특히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 <쌀 개방 반대 시위만이 능사 아니다>에서 농업개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농민에게 전가하기까지 했다.
중앙은 농민들이 시위를 벌인 이유가 "쌀시장을 아예 개방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단정하고 "정부가 국제적인 약속에 따라 벌이는 협상도 인정할 수 없고, 토론도 못하겠다면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라며 농민들의 시위를 매도하고 나섰다. 또 "지금 국내 쌀 생산량은 한 해 소비를 충당하고도 남아 몇 년째 창고에서 썩어가고 있다"며 "이런 사정을 도외시하고 막무가내식의 시위를 벌인다고 쌀개방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무리한 요구와 대안 없는 과격시위로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농민들이 '쌀시장 개방'에 원칙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농민들이 막무가내로 쌀시장 개방 협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중앙일보가 더 잘 알 것이다. 농민들은 정부가 국민적 합의를 제대로 구하지도 않고, 협상 과정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않고 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비판하며 대화를 촉구해왔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농민들이 '협상도 인정못하고 토론도 못하겠다'고 '막무가내로'로 시위를 하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나섰다. 또 중앙은 지금 쌀이 남아도는 이유가 이른바 '의무수입물량'으로 수입된 쌀때문이라는 사실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심지어 중앙은 "쌀시장 개방에 대비해 10년간 70조원을 퍼부은 끝에 남은 것은 농업 경쟁력의 후퇴와 농가 빚뿐"이라며 "이 같은 실패의 책임은 정부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정부 못지않게 농민들 스스로의 책임도 크다"며 되레 농민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백번 양보해 농민들의 책임이 있다면, 그동안 정부가 지원하고 육성하는 농업정책을 무조건 믿고 따라왔다는 점일 것이다. 농민들의 입장을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도 않고 이제와서 농민들에게 책임을 묻는 중앙일보의 보도태도야 말로 후안무치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제대로 된 신문이라면 최소한 농민들이 서울시민들의 불편을 잘 알면서도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차량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사정부터 보도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농민들은 홈페이지에 '서울 시민에게 드리는 글'까지 띄워놓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또 쌀재협상 과정이나 그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해서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신문은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을 대변하고 '쌀시장 개방'이 더 유리한 것처럼 보도하기까지 했다. 이들 신문은 행정수도 이전이나 국보법 폐지 등에 대해서는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반대주장을 펴면서도, '쌀만큼은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는 93%에 달하는 국민여론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왜 쌀수입 개방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이 같은 여론은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것인가.
중앙일보는 올 1년 동안의 오보와 편파보도를 반성한다는 기획을 싣고 있다. 지나간 잘못을 반성하기에 앞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쌀개방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균형보도부터 해야 할 것이다. <끝>

 


2004년 12월 21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