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한나라당의 '간첩조작'관련 방송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12.13)
등록 2013.08.1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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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암약발언'이 '공방'으로 접근할 사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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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열린우리당 이철우 의원이 북한 조선노동당에 입당했으며 현재도 간첩으로 암약하고 있다"며 충격적인 '간첩소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일부 방송보도는 '간첩 암약' 운운했던 주의원의 무책임한 폭로행태보다는 여야 '공방'에 초점을 맞춰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한나라당이 일으킨 '간첩소동'은 근거조차 불분명한 주장을 '저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폭로하는 구태정치의 전형이자 지난 반세기 동안 사회발전을 가로막아 온 '색깔론'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일부 방송보도들은 근거없는 폭로로 정국을 혼란스럽게 만든 한나라당의 책임을 묻기보다는 '정치권의 공방'으로 본질을 흐렸다.
'정치권 공방'에 가장 매달린 방송사는 KBS였다.
12월 10일 KBS에서는 관련내용이 3건 보도됐다. 하지만 3건 모두 여야대립과 정치권 공방에 초점을 맞췄다.
<전력 시비 격화>에서는 "이철우 의원의 전력을 놓고 여야간 공방이 더욱 격화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반격에 한나라당은 추가의혹으로 맞섰다" 등 전형적인 '공방보도'의 모습을 보였다. 이어진 <'충성 맹세' '고문 조작'>은 분석보도의 형태를 띠긴 했지만 엇갈리는 여야의 주장을 나열하는 수준에 그쳤다.
'간첩암약' 주장에 대해서는 "지금도 간첩이 암약중이라는 주장과 관련해 한나라당은 정치적 수사라며 한걸음 물러섰다"고 보도했지만 한나라당의 폭로가 일방적인 주장 외에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다.
같은 날 보도된 <공안 검사와 386>은 무책임한 폭로정치에 앞장 선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을 '공안검사' 출신의 "거침없는 성격과 입담으로 한나라당의 차세대 저격수"로 '평가'하고, 피해자인 이철우 의원을 "주의원과 대조적으로 골수 386 운동권 출신"으로 묘사하며 대립구도를 만드는 등 흥미 위주의 보도태도마저 보였다.
11일에도 KBS는 <법적 대응·이념 공세>에서 "여야의 노동당 가입 공방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며 여야의 '공방'에 초점을 맞췄고, 이어진 <이념에 밀린 민생>에서는 "국회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국회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또다시 벌어지고 있다"며 '이념싸움에 파묻혀버린 민생국회'라고 보도하는 등 국회파행의 원인이 된 근거 없는 색깔공세의 잘못은 실종되고 말았다.
12일 <동상이몽 '국정조사'>도 "노동당 가입 공방, 여야가 동시에 국정조사 카드를 들고 나왔다"며 "여야합의로 국정조사가 실현되기보다는 정치공방만 무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해 정치권의 '공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SBS도 정치권의 공방에 초점을 맞추긴 마찬가지였다.
10일 <'전력시비' 갈수록 확산>, 11일 <'고문 조작설' 공방>·<임시국회 줄다리기> 등의 보도에서 이번 사태로 불거진 혼란상황을 부각하는데 그쳤다.
한편 10일 보도된 <'가입' '조작'>은 중부지역당 사건의 핵심인물로 알려진 황인오씨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민해전(민족해방애국전선)이 중부지역당의 산하기관이라는 사실은 자신을 포함해 3명만 알고 있었고, 이철우 의원 같은 하위단계에서는 알 수 없었다"며 "황씨는 이의원의 경우 이미 법과 선거의 심판을 받은 만큼 더 이상 문제삼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해 한나라당의 억지 주장에 대한 판단 근거를 제공했다. 또 12일 <"공소" "국정조사">도 "(한나라당) 원희룡 최고위원을 비롯한 소장파들은 '법과 국민의 심판이 끝난 사안을 놓고 뒤늦게 문제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지도부를 비판해 향후 파장이 주목된다"며 한나라당 내부의 이성적인 주장을 보도하기도 했다.


MBC는 다른 방송사에 비해 이번 사태의 본질이 한나라당의 무책임한 색깔론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접근해 차이를 보였다.
MBC는 10일 <무책임한 폭로>에서 "이철우 의원이 북한 노동당에 가입한 간첩이라고 폭로했던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은 오늘 간첩이나 암약이라는 표현은 정치적인 수사였다고 뒤로 물러섰다"며 "자신의 주장을 부인한 셈인데 한나라당은 그러나 다른 의혹들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해 한나라당이 근거없는 파문을 확산시키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 보도는 "한나라당은 한 인터넷 신문의 보도 이외에는 아무런 근거를 대지 못하고 있다"며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판결문 어디에도 조선노동당 가입이나 간첩이라는 말이 없다"고 보도하고, 한나라당이 민해전과 중부지역당이 같은 단체라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도 "정작 중부지역당 사건의 총책이었던 황인오씨는 민해전 가입이 조선노동당 가입은 아니라고 부인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보도된 <확인도 안하고>는 "한나라당이 이렇게 뒤로 물러서게 된 것은 폭로에 급급한 나머지 사실관계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한나라당이 '간첩소동'을 일으키게 된 과정을 밝혔다. 이 보도에 의하면 한나라당은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긴급하게 배포된 '미래한국'의 기사를 전달받았고 곧 당 지도부가 긴급하게 협의한 이후 주성영 의원의 '폭로'가 이뤄지게 되었다. MBC 보도에서는 "김덕룡 원내대표조차도 문건을 처음 접한 듯 기사 내용을 계속 읽고 있었"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으며 "당시 사건에 관계했던 정형근 의원의 구두확인만 거쳐 폭로가 이루어져…진위 여부를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자료인 이철우 의원에 대한 판결문은 그 다음날에나 입수"했다는 사실도 지적해 한나라당의 '폭로'가 얼마나 졸속적으로 이뤄졌는지 짐작하게 했다. 또한 "권위주의 시절의 공안사건 연루자와 간첩을 동일시 할 수 있느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며 "현재 17대 국회의원 가운데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을 가진 여야 의원은 22명이나 된다"고 보도했다.
MBC는 11일 <"고문" 공방>에서도 "여야의 전면전이 이제는 수사 결과의 고문조작 여부로 번지고 있다"며 "애당초 제기됐던 간첩 시비와는 별개의 논쟁으로 가고 있다"고 보도해 본질을 비껴난 정치공방을 비판했다. 또 '고문' 여부에 대해서도 "사건의 핵심이었던 황인오씨도 수많은 시국사범이 고문을 주장했지만 법정에서 받아들여진 적이 있느냐며 되물었다"고 보도해 한나라당이 이철우 의원 판결문에 고문 여부가 적시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고문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주장하는데 허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하지만 같은 날 <"내일 검찰고소">와 12일 <"고문증거 있다">에서는 여야공방을 중계해 아쉬움을 남겼다.


한나라당의 갑작스런 '간첩소동'은 '색깔론'을 내세워 자신들의 정략적 이해를 관철시키려는 구태정치의 표본이다. 특히 이러한 행태가 단순한 정치공방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법처리가 끝난 사안을 다시 끄집어내 한 사람의 정치생명을 파탄내는 '인권침해'로까지 나아가고 있어 더욱 우려스럽다.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하고 근거없는 소동으로 정기국회는 물론 임시국회까지 파행으로 몰아가는 한나라당의 행태는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방송보도는 이번 사태마저도 '기계적 중립'의 틀에 꿰맞춰 '정치공방'으로 치부해 '폭로정치'라는 본질적 문제를 가리고 있다. 더욱이 소동의 원인 제공자가 명백한 '폭로'에 대한 최소한의 사실 확인에 충실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이를 중계하는데 그쳐 사태를 '확대재생산'하는 구태를 보이고 있는 점 역시 우려스럽다. 특히 공영방송인 KBS가 이번 사안과 관련해 보이고 있는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폭로정치가 노리는 바가 무엇인가? 진실과 관계없이 특정인을 공격해 논란을 확산하는 과정에서 정략적 목적을 이루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번 '간첩소동'은 여당 의원을 공격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저지하겠다는 저급한 술수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방송들이 여야 공방이나 쫓아다닌다면 수구정당의 정략에 말려드는 게 아닌가. "이철우 의원이 간첩으로 암약한다"는 주성영 의원에게 왜 '입증의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인가.
우리는 각 방송사들에게 강력하게 촉구한다.
언제까지 '기계적 중립'의 늪에 빠져 색깔공세의 들러리 역할을 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무책임한 폭로의 잘못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색깔공세를 구조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공론화하라.(끝)

 


2004년 12월 13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