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스페인 여자 핸드볼팀 누드사진'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11.23)
스페인 여자 핸드볼팀 누드사진, 단순히 '벗은 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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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주요 일간지들은 스포츠면에 스페인의 여자 핸드볼팀 선수들의 '누드사진'을 실었다. 이 사진은 스페인 스포츠 전문지 '아스'에 실린 것으로 스페인의 명문 핸드볼 클럽 아스트록 사군토 선수 14명이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누드를 찍었다고 한다. 이들의 팀은 스페인 리그에서 14회나 우승을 차지했으나 현재 스폰서도 구하지 못한 상황이며, 이 선수들의 연봉도 월 1,000∼2,500유로(약150만∼375만원) 수준으로 다른 프로선수들에 비해 낮다고 한다.
얼핏 보기에 이번 스페인 핸드볼 팀의 '누드사진'은 이른바 '비인기 종목'의 설움에 대한 표현과 대중의 관심에 대한 '극단적 돌출행동'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아스>에 실린 사진은 아스트록 사군토의 14명의 핸드볼 선수가 손과 공으로 주요 부위를 가리고 찍은 누드사진이다. 그리고 외설적이지 않은 구도와 포즈로 볼 때, 국가의 무관심한 태도에 저항하고 대중의 관심을 호소하고자 하는 신중하고도 절박한 메시지가 내포된 사진이다. 어찌 보면, 옷을 벗은 선수들이 핸드볼에 대한 힘과 존재의 의미를 알몸으로 보여주고자 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누드에 대한 편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스페인에서 누드는 성적표현만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존재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로 볼 때, 이 사진에서 선수들의 알몸은 축구와 같은 다른 종목의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강도 높은 훈련으로 단련된 강인한 핸드볼의 힘에 대한 상징적 표현이다.
문제는 이 선수들의 누드사진에 대한 우리나라 일부 신문들의 일차원적인 선정적 보도 태도이다. 일차원적인 선정적 시선이란 일단 여자가 벗은 사진만 보면 성적 노리개나 성적자극 정도로만 해석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왜곡된 성 이데올로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원시적이고 근시안적인 시선이다. 일부 신문의 일차원적인 선정적 보도태도의 문제는 스페인 핸드볼 선수들의 누드사진이 애초 주장하고자 하는 목적과는 달리 선정적이고 천박한 성 이데올로기의 울타리 속에 의미가 갇혀진 채 우스운 '해프닝'으로만 기록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신문은 핸드볼 선수의 누드사진을 경향신문(22면 1단, 컬러), 조선일보(24면 1단, 컬러), 한국일보(24면 1단, 컬러) 등 1단 컬러로 비교적 작게 취급했다. 이들 신문은 '아스'에 실린 원본과 달리 지면크기에 맞춰 사진을 잘랐다. '아스'에 실린 원본을 그대로 실은 중앙일보(25면 박스기사, 흑백)의 경우에는 흑백으로 사진을 처리했다. 동아일보도 원본을 그대로 실었는데, 22면에 3단 컬러로 사진을 실어 다른 신문들에 비해 사진의 비중이 높았다. 특히 동아는 다른 신문과 달리 기사를 실지 않고 사진캡션에서 이를 간단하게 소개하는데 그쳤다.
사진과 관련한 선정적 '제목달기'도 문제이다. 동아일보는 <스페인 女핸드볼팀 "뛰고 싶어 벗었다">라며 가장 노골적인 제목을 달았으며, 한국일보도 <"이래도 안 볼래요?">라며 다분히 천박하게 제목을 달았다. <"핸드볼 좀 사랑해줘요"/스페인 팀 단체 누드>(조선), <"꼭 이래야 보시겠다면…" 알몸 호소>(중앙) 등의 제목은 동아나 한국일보처럼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사진과 함께 실려 성적 상상력을 자극할 소지가 있었다.
보도 기사(텍스트)는 어떠한가? 대부분의 신문이 사진과 함께 스페인 선수들이 스포츠 팬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누드사진'을 찍었다고 '가십'처럼 보도하는데 그쳤다. 다만 경향신문과 중앙일보는 스페인 선수들의 상황을 한국의 '여자 핸드볼'과 비교하며 이른바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간략하게나마 언급해 다른 신문과 차이를 보였다.
보도사진의 '선정주의'는 비단 '핸드볼 선수 누드사진'에 그치지 않는다. 패션모델의 노출 사진이나 해외 유명배우들의 반라의 모습 사진이나,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 선수 아내들이 '유로 2004 승리기원'의 의미로 누드를 찍었다(조선일보 6.16)는 식의 '토픽성' 기사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해왔다. 또 이번 아테네 올림픽 기간에는 해외 유명 여자선수들의 누드에 가까운 화보사진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신문들은 '보도'라는 미명하에 '누드'와 '노출'사진을 무차별적으로 신문에 실어왔다. 특히 '정론지'를 내세우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도 여기에 뒤지지 않았다. 그 어느 신문도 '핸드볼 선수의 누드사진' 자체에서 파생되는 의미와 사진적 맥락에 부합하는 제목을 뽑는데 공들이지 않았다. 그저 여자들이 벗었다는 피상적인 사실에 주목했다. 결과적으로 사진 자체의 의미가 왜곡되면서 기사보도(텍스트)도, 캡션도 핸드볼 선수들이 간절히 원했던 '핸드볼 존재를 알리고 강인한 의지를 보여주는 선수들'이란 의미는 사라지고 '옷 벗어서 설움을 드러내고, 알몸으로 관심을 구걸하고, 알몸으로 사랑을 호소하는 여자들' 정도로 전도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이 선수들의 알몸은 성적으로 유혹하기 위한 단순한 알몸이 아니며, 강인한 체력으로 핸드볼을 지킬테니 팬들의 관심과 사랑을 호소하는 몸이다. 다시 말해 이 사진에서 의미는 벗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스포츠에 대한 불평등한 구조와 핸드볼의 존재를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더 중요했다. 이제 신문은 사진을 보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신문사진 기자와 편집자는 '여성의 벗은 몸'에 대해 그토록 일차원적이고 원시적인 시선을 벗어나야 할 때가 왔다. <끝>
2004년 11월 23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