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권철현 의원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 친북성 주장'관련 신문사설」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10.6)
조-한동맹, 또 '색깔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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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수구 언론과 한나라당이 이른바 '핑퐁식 주고받기'를 통해 때아닌 '이념논쟁'을 격화시키고 나섰다.
지난 4일 국회 교육위 국감에서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은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근현대사' 교과서가 남쪽의 역사를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북쪽의 역사와 김일성의 한국전쟁 책임론을 명확하게 거명하지 않았다며 반미·친북·반재벌적인 것처럼 주장했다.
이에대해 교육부와 교과서의 집필자들은 권 의원이 앞뒤 맥락을 무시한 채 일부만을 발췌해 왜곡했으며, 이 교과서가 교육부의 합법적인 검증과정을 거쳤고 그 과정에 한나라당 의원들도 참여해 무려 200여 군데를 수정했다고 반박했다. 자당 의원들이 참여해 수정까지 가한 교과서를 두고 뒤늦게 문제를 제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권 의원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는 억지이며, 트집잡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5일부터 1면과 4면, 5면에 걸쳐 신문지면을 도배하듯이 권 의원의 일방적인 주장을 확대·재생산 했다. 6일에도 조선일보는 최장집 교수 논문을 왜곡·인용해 논란을 불러왔던 이한우기자까지 동원해 대대적으로 금성출판사 교과서를 비난했으며, 현 정부를 공격하고자 하는 의도를 사설에서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권 의원의 주장은 지난 4월 발간된 월간조선의 주장과 흡사해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이른바 '수구커넥션'을 또다시 가동해 '이념논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조선일보는 5일 사설 <'새마을' 비판하고 '천리마' 찬양하는 역사 교과서>에서 금성출판사의 역사교과서에 대해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적 시각에서 서술한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일부 좌파 성향의 학자들이 주장해온 내용을…그대로 옮겨 놓은 데 따른 것"이라고 지칭했다. 이어 "전교조를 중심으로 한 교사들이 기존의 역사교육과 북한에 대한 교과 내용을 비난해 왔다"며 "그런 인식의 결과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북한체제에 편향된 교육내용으로 나타난다면 반역사적 정치교육이자 사상 개조작업에 지나지 않는다"고 엉뚱하게 전교조를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또 "역사 교육을 학생들의 머릿속에 좌파적 이념을 심으려는 정치투쟁, 이념투쟁의 도구로 삼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 운운하며 '색깔론'을 거론했다.
6일 사설 <역사 교과서 편향 따지지 않으면 뭘 따지나>에서는 되레 권 의원의 주장에 대한 비판을 '역색깔론'으로 몰아붙이며 참여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조선은 "본질적인 문제만 거론하면 색깔론이라고 뒤집어씌우는 것이 집권세력의 상용 수법"이라며 "역색깔론이 정권 방어의 만능 무기라도 되는 것처럼 휘두르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백번 양보해서 모두가 권 의원 주장대로는 아니었다'고 해도 이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여당의원들은 "'역색깔론'이나 들먹이며" 이를 비판하기에 앞서 "자신들이 먼저 고민했어야 할 일"이라는 자가당착적 주장까지 펼쳤다.
동아일보는 5일 사설 <편향적 역사교과서로는 미래 없다>에서 "금성출판사 교과서가 반미 친북적으로 편향된 서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국정감사에서 나왔다"며 "유독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부정적 부분을, 북한에 대해서는 긍정적 부분을 부각시킨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이 나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겠는가"라고 주장했다. 동아는 "편향된 이념에 따른 잘못된 역사를 가르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며 "안병영 교육부 장관도 뒤늦게 역사교과서의 편향성을 인정했다면 하루빨리 검토하고 수정해야 마땅하다"며 안 장관이 편향성을 시인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조선·동아와 달리 이 문제를 간단하게 보도했으나, 6일 조선·동아의 입장을 따라가는 사설을 실었다. 사설 <편향된 역사교과서 즉각 수정하라>에서 중앙은 권 의원이 국감에서 주장했던 내용을 인용한 후 "역사학계에서도 논란 중인 사안을 정설인 양 교과서에 수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특정 이념을 바탕으로 한 역사교육은 국가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역사를 피지배층의 관점에서 보는 민중사관, 한반도의 분단 책임을 미국에 두는 수정주의사관 등 특정 역사관이 지배하는 교과서는 교과서가 될 수 없다"며 "교과서검정위원회를 열어 교과서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해 잘못된 부분은 재집필을 요구하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겨레신문은 권 의원과 일부 신문이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갖고 '이념공세'로 국감을 얼룩지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6일 사설 <첫날부터 이념공세 얼룩진 국감>에서 "누가 봐도 객관적인 서술들에 대해 친북 좌파적 내용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냉전수구 세력들은 중요한 국면마다 이를 이용해 이성적 토론을 이념논쟁으로 치환함으로써 편을 가르는 수법으로 기득권을 지켜왔다"며 "과거청산, 역사바로세우기,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각종 개혁을 막기위해 국감에서까지 이념공세를 펴고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겨레는 "이는 민주와 인권, 평화를 향해 나아가는 시대의 대세와 동떨어진 것"이라며 "기득권 세력은 이성을 찾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우리는 특정 사실을 발췌하는 식의 이 같은 왜곡수법을 여러 차례 보아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난 98년 최장집 교수의 논문에 대한 조선일보의 왜곡보도이다. 특히 권 의원의 주장이 월간조선 4월호와 흡사하다는 점에서 이번 교과서 논란 역시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의 이른바 '조-한동맹'의 합작품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거둘수가 없다.
그간 우리 사회의 중요한 현안에 대해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는 '핑퐁식 주고받기'를 통해 '이념논쟁의 장'으로 몰고가며 갈등을 부추겨왔다. 조선일보가 국감관련 보도 첫날부터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과 박진 의원 등의 '이념공세'를 1면부터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나선 것 역시 이 같은 의혹을 뒷받침한다.
지금 조선일보는 한나라당과의 이른바 '수구커넥션'을 동원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일련의 개혁정책을 오직 자신들 기업경영을 위해 훼방놓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조선일보의 이기적 '상술'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하루 속히 조선일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진정한 보수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라. 그 길만이 한나라당이 소멸하지 않는 길이다.
2004년 10월 6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