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_
「'량강도 폭발사고' 관련 신문보도」에 대한 민언련 논평(2004.9.13)
등록 2013.08.1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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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측보도 하기 전에 취재부터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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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9일 북 량강도 김형직군에서 대규모 폭발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정동영 장관은 12일 기자 브리핑에서 "북한 지역에 폭발사고 징후가 있다는 보고가 있었고 확인 중에 있다"고 밝혔으나, 폭발의 원인이나 피해 규모 등에 대해 아직까지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13일 대부분의 언론은 1면 머리기사로 량강도 폭발소식을 전하며, 폭발의 원인을 핵 실험설 단순 사고 폭발설 북한 지휘부 내부 암투설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북한 정부의 자작극설 등 여러 가지로 추측했다. 심지어 일부 신문은 미 정가에 떠돈다는 이른바 '10월 핵실험설'과 뉴욕타임즈의 '북한 핵실험 준비설'까지 연결시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면과 3면에서 량강도 폭발사건에 대한 갖가지 추측을 보도한데 이어, 4면 머리기사 <북 10월 핵실험설 현실성 있나 없나/October Surprise>에서는 "북한의 미국을 향한 충격요법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이 미 대선을 앞두고 핵실험 등 충격적 행동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이른바 '10월의 충격설'까지 언급하면서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사설 <북은 양강도 폭발 진상 공개해야>에서는 "군사적인 용도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하는 한편 일각의 주장을 빌어 '핵실험 관련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조선은 이 사설에서 "우리 정부의 움직임을 보면서 과연 북한 내부 움직임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는 있는 것인지, 주변국들과 협조는 제대로 되는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번 폭발과 관련해 NSC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비난했다.


중앙일보도 량강도 폭발에 대한 각종 추측을 보도하며 '북 핵실험설'을 교묘하게 부각시키는 한편, 정부당국의 '정보입수 능력'을 질타했다.
중앙은 2면 <"북 핵실험 준비 징후 포착">에서 미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 준비를 보고받았다는 뉴욕타임즈 보도를 인용하면서 "핵 실험에 성공할 경우 북한은 전 세계에서 여덟 번째 핵 보유국이 된다"는 등의 섣부른 발언까지 실었다. 3면 <북한 창건 기념일 전날 무슨일이…>에서도 "폭발이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다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진 핵실험이 아니라고 최종 판단을 내리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일부 핵전문가들의 주장을 실었다. 그러나 다른 기사에서는 '핵실험설'보다는 열차사고나 미사일 등 군수기지 폭발설 등에 무게를 실었다.
사설 <'양강도 폭발사고' 진상 무엇인가>는 정부가 3일 전에 정보를 입수했음에도 량강도 폭발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없다는 점을 들어 "이런 정부 태도는 폭발과 관련된 핵심 정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미국과의 정보 공유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라고 질타했다. 2면 <"해외 민간위성 사진 판독해 감지">에서도 '정보당국 일각'의 발언을 인용해 '한미간 정보교환 채널이 충분히 가동되지 않고 있어 더 긴장하고 있다'며 "통상적으로 미측은 북한 관련 상황이 발생하면…진행 분석자료와 정보를 한국 측에 제공하는데 이번에는 분석 정보를 제대로 넘겨주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동아일보는 양강도 폭발사건 관련 기사에서 '핵실험 의혹은 희박하다'면서 '10월 충격설'에 대해서는 2면 하2단 기사로 간단하게 보도했으며, 뉴욕타임즈 관련 기사 역시 1면 하2단 단순보도했다. 그러나 동아일보 역시 핵협상에서 우위를 선정하기 위한 의도적 사고 가능성 단순사고 가능성-군수공장의 무기고 폭발이나 미사일 사고 등으로 추정했다.


한겨레신문도 1면 머리기사 <북 양강도서 대규모 폭발>, 3면 <폭발당일 미사일 발사실험 움직임> 등에서 핵 실험설은 "급속도로 힘을 잃고 있다"고 보도했으며, 군수공장 폭발, 미사일 폭발, 철도사고, 북한 체제 반발세력의 개입 등 각종 가능성을 추측했다.


경향신문은 3면 <'지진파'탐지로 첫 징후 포착>에서 '지진파의 원인이 폭발사고 때문인지, 위성사진의 구름이 뭉게구름인지 대형 산불로 인한 먼지구름인지 알 수 없다'는 일각의 의견을 실는 등 '폭발사건'을 기정사실화하고 사태의 원인에 대해 추측을 남발한 다른 신문들에 비해 조심스러운 보도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2면<'한반도 위기설' 미에 만연>, 4면<미사일·군시설 사고에 '무게'>등의 보도에서는 다른 신문과 마찬가지로 량강도 폭발에 대한 각종 추측을 보도했다.


북의 량강도 폭발사건과 관련해 아직까지 정확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13일 BBC인터넷판은 북의 백남순 외무성 발언을 인용해 '수력발전소 건설을 위한 폭발'이었다는 소식을 전했으며, 지난 5월 7일 북한이 량강도 지역에 삼수발전소를 착공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CBS보도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정부의 발표가 있자마자 '폭발사고'를 기정사실화하고 온갖 추측으로 지면을 메웠다. 이들 신문은 사고가 일어난 날짜가 북한 창건 기념일인 9.9절이라는 점에 착안해 북한내 반체제세력에 의한 '테러 가능성'을 추정하는 한편, '미사일 및 군수공장 폭발사고', 룡천참사와 같은 단순 열차 폭발사고 등의 여러 가능성도 점쳤다. 더 나아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10월 충격설'과 뉴욕타임즈의 '북한 핵실험 준비설'을 부각해, 이번 량강도 폭발사건과 '북핵 실험설'을 연관짓기까지 했다.
우리는 그간 여러 차례 언론의 지나친 앞서나가기 보도 및 추측보도가 '오보'를 양산해 왔음을 지적해 왔다. 불과 몇 개월 전 북한 룡천역 폭발사고 당시 나왔던 언론의 보도들이 상당부분 오보로 드러나지 않았는가. 심지어 '북한 내 반김정일 세력의 테러설'에 대한 조선일보의 추측보도가 외신에 의해 보도되고, 이것이 국내에 다시 소개되는 웃지못할 사건까지 있었다.
게다가 지금 한반도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가. 지금 한반도는 남한에서 순수한 학문적 목적으로 진행했던 극소량의 우라늄 농축실험조차 '핵'문제와 연결돼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언론이 '한반도 핵 보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일본과 미국 언론 및 미 정치권 내의 소문을 무차별적으로 인용해 양강도 폭발사고를 핵실험과 연관짓는 것은 섣부른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추측부터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충분한 취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을 중심으로 보도하는 것이 순서다. 더구나 한반도의 안위와 직결되는 '핵'문제와의 관련성을 보도하려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취재가 용이하지 않은 북한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해서 '아니면 말고'식으로 보도하는 행태야 말로 천박한 상업주의이자 선정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언론이 보다 신중한 태도를 보여주기 바라며, 한반도가 이번 사건으로 또다시 쓸데없는 논란을 겪지 않도록 북한도 이번 사건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다. <끝>

 


2004년 9월 13일


(사)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